웃는얼굴아트센터 김민수 ‘원더랜드를 찾아서’展
웃는얼굴아트센터 김민수 ‘원더랜드를 찾아서’展
  • 황인옥
  • 승인 2021.05.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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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부귀영화를 바라는 내 염원은 끝없을 것”
전통 변주한 ‘新책가도’
민화 단골인 모란꽃 현대적 해석
데님을 캔버스 삼아 ‘팝아트’화
스타벅스 등 현대도상 그린 적도
무속 도상의 변신 ‘영웅부적’
민화 향한 낡은 인식에 변화 유도
부처·슈퍼맨·용 등 귀엽게 표현
복 기원하는 부적의 본질 유지
김민수작품2
책가도 (희망).

김민수작품
불루도자기 부귀영화(인연).

김민수 작가

붉은 배경에 용으로 장식된 화병을 화면 중심에 배치하고, 모란 꽃송이들을 소담하게 꽂았다. 모란꽃 위에는 암수 두 마리 새가 정답게 지저귀고, 화병 주위에는 나비들이 평화롭게 날고 있다. 서양화에서 보면 정물화지만 김민수 작가에게는 ‘화조도’다. 전통화조도를 현대인의 감성으로 통찰했다는 측면에서 ‘신화조도’다.

전통 책가도를 비튼 ‘신책가도’에서는 작가 특유의 발랄함이 더욱 빛을 발한다. 청바지 천으로 활용되는 별이 프린트된 데님을 캔버스 삼아 그녀의 분신인 단지인형 캐릭터를 3층 석탑처럼 쌓거나, 용이 그려진 항아리에 황금과 진주가 넘치도록 그려 넣었다. 전통 민화의 단골 소재인 모란꽃도 현대의 미감으로 재해석하고, 책가도의 주인공격인 책들의 표지도 화려하게 표현했다. 전통책가도의 재료나 도상(圖像)들이 전통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최근 개막한 웃는얼굴아트센터 김민수(사진) 개인전에 걸린 최신작인 ‘신화조도’나 ‘신책가도’는 전통 민화에서 보면 파격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작가는 “전통의 확장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형식적인 파격은 현대인의 정서에 부합하기 위한 선택이었을지언정, 전통 민화가 지향하는 구복(求福)의 정신은 오롯이 지켜간다는 의미였다.

“표현 기법이나 도상(圖像)에서 현대인의 감수성을 적극 수용하더라도,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부귀영화를 향한 본연의 정신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좋은 기운을 불러들여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염원은 무속신앙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손쉬우면서도 널리 활용된 방식이 부적이었다. 화조도나 책가도는 기능적인 측면에서 보면 부적의 예술적 표현에 해당된다. 다양한 도상들을 매개로 가족의 복을 기원하고 장수를 염원했다.

김민수의 작품은 일종의 부적이다. 전통 민화의 형식을 빌려 사람들의 부귀영화를 기원한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전통 민화인 화조도나 책가도로 방향을 튼 것은 몸속에서 꿈틀대는 무속의 기운 때문이었다. “전통민화에는 부귀영화를 염원했던 선조들의 정신이 절제와 품격으로 표현되어 있다. 나 역시 사귀를 쫓고 경사를 맞이하는 벽사진경(酸邪進慶)의 역할을 기대하며 부적같은 그림을 그리게 됐다.”

미술작가로 작업을 시작할 시점부터 전통신앙과 토속문화를 작업의 기반으로 삼게 된 배경을 따라가면 그녀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있다. 두 어른이 즐겨 입었던 한복이나 그들이 취미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던 자수들에서 부귀영화에 대한 도상들을 어렵지 않게 접했다. 그녀는 “어린 나이였지만 어쩐지 그때 본 도상들이 싫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기억 속 도상들은 작업을 시작하던 초기에 의식 밑바닥으로부터 생생하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 민화와 역사공부를 본격화하며 부적같은 작업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오리엔탈 문명이 내 취향이었다. 기물 하나를 사도 그런 스타일을 샀다. 그림도 자연스럽게 오리엔탈로 갔다.”

작업 초기에는 구복에 대한 의미보다 형상에 더 관심이 갔다. 어린 나이여서 민화 속 의미보다 형상이 주는 호기심에 더 끌렸던 것. 이 시기에 꽃이나 호랑이 등 민화 속 전통 도상들과 함께 스타벅스 커피나 초콜렛 등 현대 도상들을 추가하며 신책가도를 창작해갔다. 책가도의 현대적인 미감으로의 변신이었다.

유쾌 발랄한 외형에 대한 관심이 의미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린시절 병약했던 그녀에게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벽사의 도상들이 그려진 한복을 입혔고, 그런 기억들이 민화의 본질인 기원의 의미로 빨려들게 했다. 부귀영화에 대한 염원을 자기 스타일의 부적으로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

이 시기에 ‘영웅부적’ 연작이 탄생했다. 만화영화 속 영웅 캐릭터들과 다양한 민족들의 영웅과 종교의 성인과 신들과 민화 속 도상들을 한 화면에 빼곡하게 채웠다. 이른바 ‘슈퍼 히어로’의 등장이다. 그녀는 “원더랜드의 출현”이라고 언급했다. 과거에 부귀영화를 관장하던 신들을 현대의 만화 속 영웅이나 히어로로 대체하며 부적에 시대성을 담아냈다.

“영웅들은 언제 어디서든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 해결한다. 우리 시대의 가장 기운이 쎈 영웅 캐릭터들이야말로 현대 부적의 가장 적합한 도상이 아니겠나?”

‘영웅부적’ 연작은 15번의 반복된 밑칠을 가한 후에 본 작업이 시작된다. 구복의 의미인 만큼 배경은 붉은색으로 처리하고, 그 위에 원더우먼, 슈퍼맨, 베트맨, 성모마리아, 부처, 모란, 용, 새 등의 슈퍼 해결사들을 빈틈없이 빼곡하게 선(線)드로잉으로 채운다. “‘영웅부적’에서 원 없이 도상들을 채웠던 것 같다.”

‘영웅부적’ 연작은 고행의 결과다. 수십 번의 밑칠과 수많은 세필(細筆)의 운용을 거쳐야 비로소 탄생한다. 쉬운 길을 두고 굳이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싶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정한수 떠놓고 108배를 올리듯이 치성(致誠)을 드렸던 그 옛날 어머니의 염원을 자신의 부적같은 그림 속에 담아내고 싶어했다. 팔이 끊어질 듯 이어지는 고단한 작업과정은 그녀만의 치성(致誠)법이었다. 자신의 창작행위가 누군가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작용하기를 희망한 것.

그녀는 “어떤 의미를 담은 대상을 단순히 그리기만 한다고 해 어떤 효과를 가진 부적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림이 부적의 작용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무속인들이 영적 기운을 받아 부적에 담아내듯이 나 역시 그만큼의 공을 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웃는얼굴아트센터 전시에 걸린 시작들에 변화가 감지된다. 민화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았던 ‘영웅부적’ 연작과 달리 신작들은 ‘화조도’나 ‘책가도’의 형식으로 다시 돌아왔다. 형식은 고수하되, 지금까지 작업했던 캐릭터들이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와 ‘화조도’나 ‘책가도’의 도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재료 또한 데님 천을 캔버스 대용으로 활용해 팝아트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이른바 ‘신(新)화조도’와 ‘신(新)책가도’의 탄생이다.

“데님 천에 그림을 그리고, 히어로를 등장시키면서 고루하다고 인식되던 민화가 밝아졌다. 현대인의 감수성에 좀 더 다가간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새롭게 시도한 작품에는 겹침(레이어) 방식을 적용했다. 수십번 덧칠한 배경 위에 만화 속 히어로를 그리고 다시 배경 처리를 하고, 그 위에 다시 도상을 그리는 방식으로 그림들을 겹쳐나간다. 이는 미술이 태동하던 시기의 미술의 역할에 주목한 결과다.

그녀는 “문명 이전의 인류는 수렵이나 채집의 염원을 벽화에 그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벽화가 지워지면 또 다른 후손이 그 시대에 맞는 염원을 또 다시 그렸다”며 “시간의 중첩이자 인류 역사의 겹침이었다”고 설명했다. “무속적인 도상들은 만화 캐릭터 등의 현대적인 형상으로 밝고 귀엽게 묘사했다. 그러나 원시 미술 시대의 무속적인 의미는 그대로 유지된다.”

‘영웅부적’에서 혼신을 다해 채웠다면 새롭게 구성한 신책가도나 신화조도 등의 신작 민화에서는 비워낸 흔적들이 역력하다. 그녀는 “‘영웅부적’ 연작을 할 때 주위에서 ‘왜 그렇게 빼곡하게 채우느냐? 좀 비워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며 “이제는 비워도 될 시점이 되어서 비웠다”며 그간의 변화에 담긴 사연을 풀어냈다.

“꽉 채운 후에 비워냈기 때문에 누구도 ‘덜 그렸다거나 너무 쉽게 그렸다거나 실력 없다’는 소리를 하지 못하지 않겠나? 이만큼 열심히 했으니 이제는 좀 비워내도 되겠다 싶었다.”

히어로는 입체 인형과 병행하기도 한다. 그녀는 다양한 토이 시리즈를 발표해왔다. 지점토로 시작한 토이는 나무로 깎은 꼭두인형을 거쳐, 레진 점토 인형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중국과 국내의 유명 토이 전문 제작사와 콜라보레이션하여 토이 인형을 선보이고 있다. 토이 시리즈는 토이 인형으로만 제작하기도 하지만 평면과 입체의 병행이 주를 이룬다. “토이 인형 역시 페인팅의 확장이다.”

구현방식의 변화는 다채롭지만 주제는 오직 ‘부귀영화에 대한 염원’ 하나였다. 민화에 기대었다가 현대인에게 낯선 무속화 대신 무속화를 틀어 ‘영웅부적’으로 돌아섰다가, 다시금 현대적 감각의 민화로 넘어왔지만 여전히 부귀영화를 위한 부적이라는 본질은 변함이 없다. 주제는 하나이며 구현방식은 과거의 형식을 빌려온다. 하지만 현대적인 표상들로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문은 열어 두고 있다.

그녀는 “어떤 것이든 가능하다”며 “Never endless story”를 언급했다. “누군가의 부귀영화를 빌어주기 위한 나의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김민수의 ‘Never endless story-원더랜드를 찾아서’ 전시는 웃는얼굴아트센터에서 6월 6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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