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렬, 부산 데이트 갤러리 개인전
윤상렬, 부산 데이트 갤러리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21.05.3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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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발견한 두려움이란 감정
샤프심 도구 삼아 작업으로 승화
가느다란 심, 두려움 표현에 적절
초기엔 화면에 샤프심 붙이다가
‘침묵 연작 1부’부터 직접 선 긋기
0.3㎜~0.9㎜ 사이 선들의 반복
컴퓨터로 출력한 직선 겹치기도
지난해 ‘침묵 연작 2부’ 첫 선
공간감 줄이고 불투명함 강조
내면 밝아지면서 회화성 물씬
데이트갤러리-윤상렬전시작-침묵
데이트갤러리 윤상렬 전시작 ‘침묵’ 연작

발아래가 천 길 낭떠러지임을 아는 경우와 그저 작은 개울 위를 지나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심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의 경우 극도의 두려움과 신중함으로 한 발자욱씩 내딛겠지만, 후자는 평정심으로 나아간다. 물론 후자 역시 건너면서 상황 판단이 되면 두려움이 엄습하겠지만, 출발선에서의 두 사람의 마음 상태를 극과 극으로 나누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윤상렬 작가는 일찍부터 ‘작가란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작가의 길로 들어선 케이스다. ‘작가는 어떠해야’ 하며, ‘작가의 삶이 어떠한지’를 가족 구성원들을 통해 구구절절 지켜보며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 분야에서 명문가의 일원이다. 작가로 활동했던 가족들 중에는 한국단색화 계열의 거목도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의 삶도 녹록하지 않았음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일찍부터 작가가 얼마나 힘든 길임을 알았다. 경제적인 어려움, 좋은 작업에 대한 열망에 대한 고뇌가 얼마나 큰 것인지 늘 보면서 성장했다.”
 

◇ ‘두려움’이라는 개인극복프로젝트로부터 작업 출발

작가의 길로 들어서기도 전에 작가 삶의 본질부터 먼저 꿰뚫을 수 있었던 환경은 그에게 꽃길일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건너려는 다리 아래가 천 길 낭떠러지임을 일찍 간파했고,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 또한 천근만근일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묻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힘든 길임을 알았다면, 피할 수도 있지 않았느냐”고.

그러나 그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누리는 지극한 행복”을 윗대 어른들로부터 보고 들었다. 그 역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감정 상태인 ‘근원적인 행복의 길’에 이르고 싶었다. 천 길 낭떠러지 위의 다리를 무사히 건넜을 때의 희열감과 성취감과는 비견할 수 없는, 창작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을 뿌리치고 싶지 않았다.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밀도와 시간은 그를 오래토록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어떤 작업을 할 것인가?’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와 맞물렸고, 그는 작품과 작가의 삶이 일치하는 작업을 희망했다. 작가의 삶과 작품이 따로 노는 이율배반은 작가로서 그가 가장 경계하는 지점이다. 작가의 삶이 곧 작품인 경우만이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진실한 작가로 살고 싶었다.”

진정성 있는 작업을 위한 출발선으로 그가 지목한 것은 정체성 찾기였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부터 먼저 밝혀야 작품과 작가의 삶이 일치하는 작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때 기억 속에서 파노라마처럼 몇 컷의 장면들이 스쳐갔다. 거목이라는 큰 그늘을 앞에 두고 있는 자신의 위치, 개인적인 가정사, 그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들이 그것이었다. 이 기억들은 모두 ‘두려움’과 관련됐다. 그가 파헤친 윤상렬의 실체는 ‘두려움’이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자 했을 때 두려움에 갇힌 나 자신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작업의 뿌리에 두려움이 자리하게 되었다.”

작가의 길로 접어든 초기에는 구라도 마음이 바빠진다. 좋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은 욕망이 간절해지는 시기이기 때문. 하지만 그는 이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작업을 손에서 놓고 외도를 시작했다. 직업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10년간 그가 거친 직업군이 무려 7가지였을 만큼, 그의 외도는 맹렬했다. 무대세트와 환경조각에 관심을 두고 해외유학 길에 오르는가 하면, 귀국 후 섬유공장을 운영하고 라이트패널 회사에서 연구와 홍보 일을 했다. 이후 가구디자이너에서 공간디자이너까지 섭렵했다. “다른 일을 해보지 않고 작가로만 살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직업인에서 다시 본원인 예술로 복귀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다. 어떻게 보면 작업과 멀어졌던 10년을 “무모했다” 질책할 수 있겠지만, 그에게 외도는 치밀한 계획의 산물이었다. 공통분모가 없을 것 같은 그가 몸담았던 직업군들에는 하나의 맥락에서 유사성을 가졌는데, 바로 그가 좋아하는 종목들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 모든 경험들이 작업에 활용되고 있다. 이 점에서 작업을 떠나 있던 시간들이 작업과 완전히 분리되었다 말할 수 없지 않겠나?”

데이트갤러리 윤상렬 전시작 '침묵' 연작
데이트갤러리 윤상렬 전시작 '침묵' 연작

◇ 작가의 정체성이 샤프심과 선긋기로 드러나

작업은 작가 자신의 개인극복프로젝트로 시작됐다. 그의 삶에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감정상태였던 ‘두려움’을 기반으로 ‘진실과 거짓의 근원’을 탐구하겠다며 시작됐다. 작업의 기반으로 삼은 ‘두려움’의 징표들은 시간차를 두고 조금씩 드러났다. 

어릴 적 삶의 기억에서부터 사회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과 현상, 관념이 두려움의 총체적이고 축적된 기표들로 드러났다. 그 결과물로 자연스레 긁적거린 흔적 또는 잔상인 '먼지(Dust drawing)', 집중적으로 붙여 형상화된 '다중징표(Optical evidence)', 그리고 반복적 긋기로 쌓여진 겹의 결정체인 '침묵(Silence)'으로 이어졌다.

직업전선에서 예술로 회귀하고 발표한 첫 작업은 ‘다중징표(Optical evidence)’ 연작이었다. 작업은 그가 다양한 직업들을 경험할 때 접했던 조명과 샤프심을 집중적으로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중징표’ 연작은 과녁을 상징하는 기호를 중심으로 극도의 긴장감을 나타내는 가는 직선형태의 선과 선이 만나면서 원형을 이루어, 기하학적 선율의 움직임으로 시각적 착각을 만들어내는 옵아트(Op Art : 망막의 미술, 지각적 추상)형식을 띄었다. “나는 이것을 대상에 대한 긍정적(진실) 부정적(거짓)면에 대한 시각적 효과를 읽어내고자 했다.”

2010년부터 시작한 작업이 ‘침묵(Silence)’ 연작이었다. ‘옵티컬(Optical)’ 연작에서 화면에 샤프심을 붙였다면, ‘침묵(Silence)’ 연작에서는 붙이는 대신 샤프심으로 0.3mm에서 0.9mm 사이의 직선들을 직접 그었다. 예리한 선들은 수평이나 수직선의 형태로 드러났다. 선(線)형 회화였다.

샤프심을 붙였거나 샤프심으로 그었거나 ‘예리함’이라는 측면에서 통일감이 유지됐다. 그에게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은 ‘두려움’을 표현하는데 예리한 가는 직선만큼 제격인 표상도 없었을 것이다. “손과 디지털, 감성과 이성이 긋고 긋는 과정에서 섬광처럼 번득인다. 겹쳐서 긋는 선들 속에서 시간의 순환이 자리한다.”

‘샤프심을 이용한 반복된 선’은 ‘침묵(Silence)’ 연작에서 진화의 폭이 더욱 넓어진다. 디지털 매체와의 병행이 시도됐다. 손으로 그은 직선 위에 디지털 프린트로 다양한 굵기의 극히 섬세한 직선들을 출력한 필름이나 아크릴을 중첩시키고, 그 위에 유리 액자처럼 유리를 끼운 박스의 형태로 만들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병행으로 주제의 강도는 한층 짙어졌고, 깊이감 또한 더욱 두터워졌다.”

아날로그과 디지털의 협공으로 구축된 화면에 예기치 않은 검은빛이 넘실댔다. 사실 이 빛은 두려움의 겹침으로 얻은 결과다. 아날로그 방식이든 디지털 방식이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작업 과정에 두려움의 흔적들은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두려움의 흔적은 아날로그 작업에서는 작가의 몸으로부터 전해졌다. 그가 직접 만든 대형 제도판을 종이 위에 놓고 선을 그으면 몸의 감각으로 인해 미세하게 아래 위 떨림의 파장이 전달되고, 그 파장은 쌓여지는 선들에 고스란히 축적됐다.  디지털 프린트 역시 8년간 24군데의 업체들과 테스트와 제작을 반복할 정도로 예민한 작업이다. 그 예민함 속에 두려움의 실체가 배태 되어갔다. 이 모든 예민함은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 지극한 두려움이 '빛'이라는 효과로 연결되었다.

“검은빛은 17년간 도심 지하에서 작업하면서 본능적으로 갈구한 결과인지 모른다. 결국 작업은 나의 삶을 따라가기 마련이니까...”

그에게 올해는 전환의 시기다. ‘침묵’ 연작 1부를 완결짓고 ‘침묵’연작 2부를 시작했다. 지난해 기존의 작품과 결이 다른 새로운 시작인 ‘A little lower A little higher(조금 낮게 조금 높게)’을 파주 갤러리소소(gallerySoSo)에서 알렸지만, 하나를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전시는 올해 비슷한 시기에 대구와 부산에서 진행하고 있다.
 

갤러리 굿스페이스 윤상렬 전시작 '침묵' 연작
갤러리 굿스페이스 윤상렬 전시작 '침묵' 연작

최근 전시가 끝난 대구 갤러리 굿스페이스(gallery GOODSPACE)에는 ‘침묵’ 구작을 새롭게 재구성한 17개의시리즈 ‘A little A little(조금 조금)’을, 현재 진행 중인 부산 해운대구 데이트 갤러리(DATE gallery) 전시에는 ‘침묵’ 신작 ‘A little darker A little brighter(조금 어둡게, 조금 밝게)’을 걸었다.

샤프심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수없이 선을 긋는 과정은 동일하지만, 화면의 도랑 사이에 선의 공간감을 줄이고 불투명함을 강조한 점에서 신작과 구작은 차별화된다. 어두운 기운에 약간의 밝은 기운이 스며있는 신작은 드로잉 기법에서 좀 더 회화적 감성으로의 변화에 해당된다.

그가 “지난 십년간 선긋기를 통해 내면 속 두려움이 많이 해소되었다”며 “조금은 밝아진 내면 상태가 밝은 빛이 스며나는 회화적인 화면으로 이동하게 했다”고 밝혔다.

◇ 철저하게 작가로 살기를 염원

작품이 지시하는 대상은 오직 ‘작가 자신’뿐이다. 자신과 작품을 동일시하는 태도는 진실한 작업에 대한 염원으로부터 출발했다. 작업 과정에 적용되는 엄격한 규칙은 진정성을 향한 완고함의 표현인데, 그에게 ‘진정성’은 좋은 작업을 향한 첫걸음에 해당된다. 샤프심이라는 소재를 찾는데만 무려 4년을 보냈을 만큼 ‘작업의 자기화’에 매달린 것 또한 ‘진정성’을 향한 열망과 관련됐다.

급진적인 변화보다 한 걸음씩 진화하고, 잘 팔리는 작가로 사는 것 또한 경계하는 윤상렬. 외부로부터의 유혹에 흔들릴 경우 ‘작업이 병든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그이기에 ‘진정성’있는 작가로 살기를 염원한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 하나는 가지고 간다. “언젠가는 악을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살아온 발자국이 바르면 좋은 작품이 나온다는 믿음으로 화살처럼 흔들림없이 진정성 있는 작업을 계속해 나가고 싶다.” 윤상렬의 데이트 갤러리 ‘A little darker A little brighter(조금 어둡게 조금 밝게)’전은 6월 5일까지.

황인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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