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활극 ‘심청’…판소리·뮤지컬 합작 최초 시도
현대판 활극 ‘심청’…판소리·뮤지컬 합작 최초 시도
  • 황인옥
  • 승인 2021.06.06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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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가 공연예술계 새 활력 불어넣을 것” 극찬
효심 깊은 현대적 여성 심청
소녀 제물로 받는 용왕 질책
결혼 거절·장군 역할로 설정
장르별 특징 최대한 살리되
국악·대중음악 반반씩 배치
함께 노래할 땐 신선함 2배
공연감독 “판소리는 韓 뮤지컬”
소리꾼 “신선하고 흥미로워”
뮤지컬 배우 “끝내기 아쉬워”
활극 ‘심청’ 공연 모습(큰 사진). 구지영 작곡가겸 예술감독과 손호석 극작가겸 연출가가 의기투합해 활극 ‘심청’을 무대에 올라 2회 공연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호평을 받았다.

지난 28일과 29일 무대에 오른 활극 ‘심청’ 공연에 대구 각계의 문화 전문가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여느 공연과 달리 일반인 관객들 사이에 연극계와 국악계는 물론이고 무용계와 서양음악 등 그야말로 다양한 분야의 공연전문가들이 활극 ‘심청’을 관람하기 위해 객석을 채웠다. 이들 전문가 그룹의 구미를 당긴 것은 장르 간 협업. 활극 ‘심청’은 전통 판소리 ‘심청전’을 판소리와 뮤지컬의 합작을 시도한 현대판 ‘심청전’으로 꾸려졌다.

무용과 뮤지컬, 미술과 음악, 국악과 클래식 음악 등 타 장르와의 협업이 일상이 된지 오래여서, 단지 장르간의 협업만으로 활극 ‘심청’에 공연 전문가들의 관심이 쏟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퓨전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국악이 타 장르와 협업을 시도한지는 오래됐다. 새로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활극 ‘심청’이 공연계의 호기심을 건드린 지점은 따로 있다. ‘판소리’와 ‘뮤지컬’이라는 이색적인 만남 때문이다. 지금까지 이 두 장르간의 협업은 시도된 바가 없었다.

활극 ‘심청’의 대본과 연출을 맡았던 손호석은 “다양한 장르의 전문가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그만큼 이번 공연을 새로운 시도로 받아들이지 않나 싶다”고 평가했다.

사실 “국악이 진부하다”는 고정관념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몇 년 됐다. 얼터너티브 팝 밴드인 이날치밴드가 판소리와 팝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판소리를 대중음악으로 재해석하고, 그들의 새로운 음악이 대중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국악의 새로운 가능성은 크게 조명됐다. 이날치밴드가 공연계와 광고계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누비며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현상이 “의외다” 싶으면서도, 국악과 가요의 만남에 “신선하다”는 인식도 최근에 국악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국악의 혁신에 세상이 환호한 이유는 딱 하나다. 진부하다고 인식되었던 국악이 현대인의 감수성과 함께 가면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음악으로 다가왔다는 것. 청년들까지 환호할 정도로 국악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전통국악에서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엿본 결과다.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활극 ‘심청’은 공연예술계에 던진 새로운 화두였다. “전통판소리에 뮤지컬을 버무려 판소리와 뮤지컬이 모두에게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판소리의 독특한 진행방식인 1인극의 요소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소리꾼 김진아와 뮤지컬배우 이민주가 한 무대에서 각자 속한 장르를 노래하기도 하고, 서로의 장르를 바꾸어 노래하며 장르간 협업이 이끄는 풍요를 만끽하게 했다. 어떤 장면에서는 두 명이 서로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에서 판소리도 뮤지컬도 아닌, 전혀 새로운 장르로 다가왔다.

활극 ‘심청’은 판소리의 기반으로 했지만 판소리와 뮤지컬의 지분을 정확히 반 반씩 배분하면서 어느 한 장르의 쏠림 현상을 방지했다. 소리꾼과 뮤지컬 배우 2명이 각자 장르의 1인극을 책임졌고, 각 장르가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은 유지했다. 자칫 1인극이 빠질 수 있는 단조로움은 라이브밴드의 역동성이 보완했다. 밴드 역시 전통국악기 연주자와 대중음악 연주자가 정확히 반반 배치하며 낯섦과 익숙함 그리고 신선함이라는 3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손호석 연출가는 “판소리에서 창극으로 가면서 소리가 분창됐다. 그러면서 판소리 본래의 재미를 퇴색시켰다는 평가도 있다”며 “활극 ‘심청’에서는 1인극의 매력을 극대화하면서 다인극의 매력까지 추가하려고 노력했다”며 연출 의도를 밝혔다.

이번 공연은 구지영과 손호석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국악과 뮤지컬의 만남을 간헐적으로 시도하며 역량을 쌓은 결과 가능할 수 있었다. 이들은 오랫동안 다양한 작품에서 협업을 시도했고, 둘 모두 공연의 소재나 형식, 음악 등 다양한 지점에서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인 행보를 걸어온 공통분모로 엮여있다. 지금까지 이들은 뮤지컬 ‘제비장군전’이나 연극 ‘제비전’, 소리극 ‘봄의 염원’ 등의 작품에서 국악과 타장르와의 협업을 시도한 바 있다.

이번 작품의 예술감독과 작곡 그리고 음악감독을 병행한 구지영은 “평소 뮤지컬 공연을 무대에 올리면서 ‘뮤지컬의 원조는 서양인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원조인 뮤지컬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때 판소리가 우리만의 뮤지컬이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당시 가져던 의문이 ‘활극’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음”을 밝혔다.

국악과의 협업에 익숙한 구지영과 손호석이지만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다 아는 전통판소리 ‘심청전’을, 그것도 새로운 시도로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일 수 있다. “지금껏 접하지 않았던 신선함”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안 한만 못한 공연”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영리했다. ‘심청전’의 주제인 ‘효’의 의미를 현대인의 윤리의식에 맞게 각색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여기에 ‘심청전’에서 설명되지 않아 의문으로 남았던 지점에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추가하고, 조선시대 사회통념을 현대사회의 통념으로 바꾸는 작업도 빠트리지 않았다.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서도 목숨을 잃지 않았던 의문은 심청을 인간세계로 내려온 것으로 사왕모의 딸로 설정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특히 심청을 주체성이 강한 현대여성의 이미지로 재탄생시킨 것은, 현대인의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손 극작가겸 연출가는 “전통 ‘심청전’의 심청은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 용기있는 심청이지만, 시대의 통념에 순응하는 소녀이기도 했다”며 “이번 작품에서는 심청을 현대사회의 여성으로 각색했다”고 밝혔다. 순응보다 자기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묘사한 것.

이번 작품에서 심청은 인당수에 팔려갔지만 소녀들을 제물로 받고있는 용왕님을 호되게 질책하고, 용궁에서 왕궁으로 흘러와서도 왕의 청혼을 거절하고 왕을 돕는 장군으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호방한 여성으로 그려냈다.

손 연출가는 “효를 현대의 관념에서 재해석하고, 심청을 양성평등자로 그렸다”고 소개했다. 이른바 “심청전의 현대적인 재해석”이다.

판소리가 극을 이끌어가고 뮤지컬이 흐름을 타는 구성으로 극이 진행되는 만큼 전통 판소리를 어떤 음악으로 새롭게 선보이느냐가 이번 공연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였다. 구 예술감독은 판소리가 우리나라 뮤지컬의 원조라는 생각으로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고, 이번 작품에서 구지영의 판소리를 선보였다.

무엇보다 작곡 과정에 소리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것은 신의 한수였다. 그녀의 음악들이 판소리 ‘심청전’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 예술감독은 “판소리는 뮤지컬과 또 다른 장르여서 곡 쓰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국악인들과 소통하면서 최대한 판소리 느낌에 다가가려 했다”고 밝혔다.

“공연의 분위기를 쾌활하고 진취적으로 끌고 가고 싶어 소리꾼과 뮤지컬 배우의 역할을 섞기도하고, 음악적으로 섞기도 하고, 보컬적으로 섞기도 했다.”

모르긴 해도 가장 혼란스러웠던 참여자는 이번 공연의 주역으로 등장한 소리꾼 김진아와 뮤지컬 배우 이민주였을 것이다. 서로 다른 장르의 연주자들이 한 무대에서 2인 다역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소화해야 하고, 상대 배우의 장르까지 노래해야 하는 지점은 적잖이 당황스러운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무대 위 두 배우는 스스럼이 없었고, 그들 스스로 기껍게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공연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소리꾼 김진아는 “활극 ‘심청’은 입에 익은 전통 ‘심청전’과 너무 달랐다. 마치 가나다라마바사를 거꾸로 읽는 느낌이었다”며 활극 심청을 연기하며 느낀 당혹감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혹감이 즐거움으로 변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녀는 이미 ‘심청전’ 완창 공연을 선보인 소리꾼이다.

“연기도 해야 하고, 조명이나 악기를 찾아 들어가야하는 등 판소리와 너무 달라 힘들고 어색했다. 소리도 입에 잘 안 붙었다. 그러나 신선했고 그래서 흥미로웠다. 연습하는 매일 매일이 재미있었다.”

뮤지컬 배우 이민주의 당혹감은 더했다. 뮤지컬과 너무나 다른 판소리와의 콜라보레이션은 그녀에게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신선했다”며 이번 무대에 오른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민주는 “제일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이것을 어떻게 하지?’하며 고민했던 것이 공연날짜가 다가오자 끝난다는 것이 너무 아쉽게 다가왔다. 그만큼 새로운 시도였고, 재미있는 도전이었다.”

신선하기는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2일간에 걸쳐 2회 무대에 오른 공연은 만석을 기록했고, 관객 몰입도는 최상이었다. 관객들은 입을 모아 “ 2회 공연이라는 점이 아쉽다”며 “그만큼 재미있고, 신선했다”는 평을 남겼다. 무엇보다 공연계 전문가들은 “판소리가 공연예술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이 높게 평가될 수 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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