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문101 류지헌展…전통회화와 유리조각의 독특한 만남
갤러리 문101 류지헌展…전통회화와 유리조각의 독특한 만남
  • 황인옥
  • 승인 2021.06.16 21:2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색유리 자르고 남은 파편 활용
기존 방식 깨고 역순으로 작업
형상 먼저 올린 후 표면 덮어
빛의 움직임 따라 풍부한 발색
류지헌작-대지의노래
류지헌 작 ‘대지의 노래’

류지헌작-사계
류지헌 작 ‘사계’

날카로운 유리조각은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칠 만큼 두려움의 대상인데, 류지헌 작가는 유리파편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그는 색과 형상을 올린 캔버스 표면 위를 유리파편으로 빼곡하게 채워가며 자신만의 조형성을 구축해 가고 있다. 일말의 너그러움도 허용하지 않을 태세로 날카로움을 곧추세우고 노려보는 유리조각이 두려울 법도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완성하기 위한 필요 불가결한 오브제로 인식하며 유리조각의 날카로움을 한껏 즐긴다.

작가는 “유리조각이 잘라졌을 때는 날카롭지만 다시 모아 놓으면 부드러워진다. 이 얼마나 드라마틱한 변신인가?”라며 유리조각에 대한 편견에 맞섰다.

유리조각을 오브제로 활용해 구축한 독특한 회화를 선보이는 류지헌 개인전이 갤러리 문101(MOON101)에서 열리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제작한 초창기 작품부터 회화와 유리조각의 만남을 시도한 신작까지,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명한다. 류 작가의 작업세계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 할 재료는 유리다. 그는 작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리를 재료이자 이론적 토대로 삼아왔다. 초창기에는 여러 가지 색유리 조각으로 그림이나 무늬를 짜 맞춘 스테인드글라스에 집중했다. 빛의 양과 시간 그리고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중세유럽의 종교건축물에 주로 활용됐다. 신과 인간이 빚은 가장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스테인드글라스가 각광받았다.

류 작가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종교보다 예술적인 색채가 더 짙게 배어있다. 종교적인 색채는 휘발되어 잔상으로만 남아있고, 개성있는 조형어법으로의 기능에 집중한다. 그는 음악을 감상하며 떠오르는 이미지를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한다. 간혹 성당 등의 종교건축물이나, 주택이나 사무실 등의 개인 공간의 창에 설치하며 예술성과 실용성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는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와 아스트라 피아졸라의 사계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8점을 소개한다. 비발디의 사계는 회색 계열의 4작품, 피아졸라의 사계는 청색 계열의 4작품으로 구현했다. 창이 아닌 벽에 거는 작품으로 제작된 만큼 태양빛 대신 스테인드글라스 뒷면에는 조명을 장착했다. “두 작곡가의 서로 다른 ‘사계’를 대나무가 바람에 흩날리는 형상으로 표현해 보았다.”

유리조각을 오브제로 활용한 신작은 스테인드글라스로부터 촉발됐다. 색유리를 형상에 맞게 자르고 남은 유리조각들을 보면서 불현듯 “파편이 주인공이 못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쓸모없던 유리조각의 환골탈태가 시작됐다.

신작 ‘대지의 노래’는 회화에 유리조각을 개입시켜 제작했다. 먼저 캔버스 바탕에 색과 형상을 올려 회화를 구축하고, 그 위에 투명한 유리조각들을 붙인다. 유리조각들을 붙여 만든 표면은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기 전의 캔버스 표면과 동일하게 인식된다.

캔버스에 형상을 올리는 방식과, 형상을 올리고 캔버스의 역할을 하는 표면을 제작하는 방식은 전통회화에서 보면 역순이다.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는 그림을 그리고 표면을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의외의 방식을 통해 ‘회화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유리를 통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회화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되었다.”

그 옛날 석공들은 자신들이 부처를 조각하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있는 부처가 그들의 손을 빌려 세상으로 드러난다는 인식을 했다고 전해진다. 류 작가가 회화를 대하는 태도를 굳이 분석한다면 그 옛날 석공들의 인식과 일치한다. 그는 새하얀 캔버스 속에 이미 형상이 있다는 믿음으로 회화에 접근한다. “캔버스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 형상이 보였다가 사라지고는 한다.”

작품 ‘대지의 노래’는 류 작가가 석공의 마음으로 캔버스 속에서 찾은 결실이다. 유리조각으로 마감된 표면 아래의 형상이 유리조각 위로 존재감을 밀어 올리는 듯 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하얀 캔버스 속에 잠재되어 있는 형상이 캔버스 위로 밀려 오른다”는 믿음으로 역순으로 제작해 얻은 결과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화화의 실체가 ‘색’이냐 ‘마티에르’냐?”에 대한 질문과 맞닿는다. “회화의 실체는 결국 캔버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캔버스가 없다면 우리는 그림을 그릴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그림의 시작과 끝은 캔버스인 셈이다. 작가는 캔버스가 내재적으로 품고 있는 형상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다.”

흔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면 액자를 만들고 유리를 끼운다. 작가는 끼우는 유리를 애초에 오브제로 유리조각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그 결과 작품의 깊이감은 배가 됐다. 유리액자를 끼운 기존의 방식과 비교불가일 정도로 빛이 이동에 따라 발색은 그야말로 다양하게 드러난다.

“캔버스가 어떤 질문을 하는지를 유리를 붙이면서 알게 됐다. 하얀 캔버스 속에 이미 이야기가 다 있었듯이 유리를 통해 원래 있었던 것을 찾아보고 싶었다. 채색한 표면 위에 붙이니 유리가 회화에 더 밀착된 느낌이 들었다.” 깨진 유리로 자신만의 회화를 구축하며 삶과 죽음, 이성과 감성 등의 경계를 경험해보는 류지헌 개인전은 19일까지.

황인옥기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