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전화번호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 많은 전화번호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 승인 2021.06.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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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한국애드 대표

지난 금요일 서울지검 수사과라며 전화가 왔다. TV에서 많이 보던 어눌한 목소리가 아닌 유창한 서울 억양이었다. 익히 많이 들어본 문장이었지만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갔다. 보이스피싱임을 알아차리고도 '이 전화를 어떻게 끊어야 하나?' 고민했다.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알고서 전화한 것이니 여차하면 계속 전화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운전 중이라는 핑계를 대어 전화를 끊었고 번호를 차단했다. 발신 번호야 또 바뀌어서 오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간 SNS에서 많이 보고 들었던 보이스피싱의 사례였지만 정작 당사자가 되니 살짝 당황스럽긴 했다는 것이 솔직한 경험담이다. 이렇게 직접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온갖 마케팅 관련 전화도 수없이 걸려온다. 하루에 최소 10통은 마케팅 전화를 받고 이 번호를 차단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간 문자도 쏟아졌다. 카드사와 유사한 쇼핑몰 이름으로 카드승인이 되었다며 본인 결제가 아닌 경우 보호센터에 문의하라며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얼핏 보면 내 카드번호가 유출되었나 싶어 놀라기 일쑤다. 다시 차근차근 살펴보면 카드승인 문자는 카드사에서 보내주는 것으로 카드사 대표번호가 발신 번호다. 게다가 '본인 결제가 맞다 아니다'의 내용은 카드승인 문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본인 결제가 아닌 경우 문의를 해야 하는 전화번호도 카드사 대표번호인데, 문자에는 070번호가 적혀있었다. 결국, 이 문자 역시 보이스피싱의 형식 중 하나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번화나 문자가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다. 한때 대형 은행, 카드사, 쇼핑몰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문제가 된 이후로 개인정보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할 때도, 온라인 결제를 할 때나 온라인 사이트 회원가입을 할 때조차 개인정보 제공에 대해 꼼꼼히 따져 읽고 마케팅 동의나 제3자 제공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살폈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행사나 모임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으니 명함을 교환하는 일도 적다. 그 덕분에 그동안 보이스피싱이나 마케팅관련 전화를 거의 받지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최근 들어 보이스피싱이라니. 그것도 이름을 명확하게 알고 전화를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서 내 이름과 전화번호가 유출된 건지 곱씹어 보게 되었고 코로나19 이후 음식점을 방문할 때마다 적고 있는 출입자 명부가 떠올랐다. 올해부터는 이름 대신 사는 지역과 전화번호만 적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름과 전화번호를 꼬박꼬박 남겼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주 5일은 매일 점심을 음식점에서 먹었으니 한 달에 최소 20건의 내 개인정보가 남겨진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QR코드로 인증하는 식당이 늘어 가능하면 QR코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작은 가게이거나 QR 체크인이 되지 않는 식당도 많아 여전히 수기로 작성을 한다.

SNS를 돌아보니 코로나19 사태 이후 출입자 명부 작성에 따른 개인정보 유출이 논란이 되고 있었다. 최근 들어 스팸과 보이스피싱이 늘었다는 커뮤니티 글도 많았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손님인 척하며 출입자 명부를 휴대전화로 촬영한 20대 남성도 있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코로나 명부를 보고 연락했다'는 남성이 남자친구가 있느냐고 묻거나 술을 사준다고 했다며 불안감을 호소하는 글들마저 있었다.

이렇게 종이에 직접 개인정보를 쓰는 수기 출입명부의 경우, 업주나 직원뿐만 아니라 다른 방문객에게까지 개인정보가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매일 작성되는 수많은 개인정보에 대한 관리 또한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QR코드로 인증된 자료는 4주 뒤에 자동으로 폐기가 되지만 수기로 작성된 출입명부의 보관과 폐기는 전적으로 해당 음식점(또는 다중이용시설)에 맡기고 있으니 이 수기명부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출입명부 작성을 하지 않으면 개인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작성이 강제되어 있다. 그렇다면 작성된 출입명부에 대한 관리도 보다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모두가 동참하고 있는 출입명부 작성이 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관리 역시 더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QR코드로 인증을 하면 이런 우려 없이 간편하다. 하지만 QR인증이 불편한 노인이나, QR인증 시스템을 도입하지 못한 식당에서는 수기명부를 작성할 수밖에 없다. 그 많은 전화번호가 범죄에 악용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또한 정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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