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자네의 용기가 바로 정답이야
[백정우의 줌인아웃]자네의 용기가 바로 정답이야
  • 백정우
  • 승인 2021.06.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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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줌인아웃
‘래더 49’스틸컷.

지난 한주를 달군 뉴스는 경기도 인터넷쇼핑몰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던 소방대장의 안타까운 희생 소식이었다. 여기서 방점은 소방대장의 안타까운 희생에 찍혀야 한다. 화재 현장에 먼저 들어가고 대원을 다 내보낸 후에야 나오려던 소방대장은 길을 잃어 화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간절한 구조 염원에도 불구하고 산화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대형 화재가 있을 때마다 소방관의 영웅적 희생과 헌신에 온 나라가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다. 한편 처우와 복지에 관한 날선 비판도 뒤따랐다. 화마와 싸우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고귀한 직업, 소방관에 대한 일반적이고 통상적인 개념(가장 게으른 관념일 수도 있다)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방관을 소재로 한 영화는 영웅적 행위를 앞세우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화재진압과 인명구조라는 본연의 업무를 전경화 했다는 것. 반면 다른 길을 가는 영화도 있다. 화재 진압도중 건물잔해에 갇혀 순직한 볼티모어 소방서49 구조대원 잭 모리슨의 이야기를 그린 <래더 49>가 그렇다. 영화는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겪을 수 있는 모든 사건 사고를 (고립된 현재의) 잭 모리슨 시점으로 소환하며 플래시백으로 오간다.

‘래더 49’가 유사 소재 영화와 다른 점은 한 인물의 삶을 전경으로 하되 소방관들의 사투와 고뇌를 후경에 놓고 균형을 유지한다는데 있다. 감독의 의중은 오프닝부터 드러난다. 즉 시작 5분 안에 캐릭터 소개와 기본 플롯을 전시하는 대개의 영화들과는 달리 ‘래더 49’는 영화가 시작되고 무려 10분 45초 동안, 현장 출동에서 잭 모리슨이 잔해에 고립되는 지점까지를 뚝심 있게 보여준다. 케네디 서장의 필사적인 구출작전에도 불구하고 잭은 건물통제실에서 생을 마감한다. 동료 대원의 희생을 막기 위한 잭의 결단이다. 나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환상을 깨는 대신 이타적 삶이 올라갈 수 있는 최정상을 추구한 ‘래더 49’의 방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잭 모리슨의 짧지만 인상적인 시간을 영웅적 행위로 채색하지 않은 것, 극적 구출이라는 영화적 결말이 아닌 안타까운 희생을 선택한 감독의 의도는 정당한 것이었다.

지친 몸을 콘크리트 바닥에 눕힌 채 그을음 뒤집어쓴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찰나의 휴식 끝에 다시 사지로 들어가 생명을 들쳐 메고 나오는 초인적 행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러니까 소방관이 어떤 존재인지, 소방관에게 우리가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는지를 충분히 환기시켜 주려는 것. 곧 엔딩을 장식한 케네디 서장의 추도사는 세상 모든 소방관에 대한 헌사이다.

“잭은 사람들을 돕고 싶어 소방관이 됐습니다. 얼마나 많은 집들과 생명들이 잭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는지 누구 아는 사람 있습니까? 잭은 그런 이유로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잭에게 건네는 우정어린 감사와 다짐. “사람들은 묻곤 하지. 소방관들은 어떻게 불타는 건물 속으로 뛰어들 수 있냐고. 모든 사람들이 도망쳐 나오는 곳으로 말이야. 잭, 자넨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면서 몸소 그 질문에 대답했어. 자네의 용기가 바로 정답이야.” 삼가, 화재현장에서 순직한 경기도 119구조대 소방대장의 명복을 빕니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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