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년 전 불을 발견한 인류, 처음으로 날것을 익혀먹다
40만년 전 불을 발견한 인류, 처음으로 날것을 익혀먹다
  • 김종현
  • 승인 2021.07.0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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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22) 흙구덩이에서 불로 익히기가 요리의 시초
낙뢰 등 불의 발생 눈 여겨보다
자연현상임을 눈치채고 이용 시도
마른 나무나 부싯돌 비벼 불 붙여
토기 굽거나 요리 하는 법 터득
추위 막고 밤 밝혀 활동시간 연장
맹수나 해충으로부터 생명 보호
생식에서 벗어나 각종 질병 예방
불 이용한 화전 경작 등에 활용
불가마
불가마, 불구덩이 솥(earth oven)에서 요리가 시작됐다. 그림 이대영

고려시대 충렬왕(忠烈王, 재위 1274 ~ 1298) 때 민부상서(民部尙書)와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역임했던 추적(秋適, 1246~1317)은 1305년에 중국고전에서 심신수양에 좋은 금과옥조의 명구(名句)를 모아 ‘명심보감(明心寶鑑)’을 편찬했다. 송나라 제10대 고종황제(趙德基, 재위 1127~1162)의 지시사항인 ‘한 점의 불티가 온 세상의 숲을 다 태울 수 있다(一星之火, 能燒萬頃之薪)’라는 구절이 그 책에 나온다.

오늘날 우주물리학에서 볼 때 우주먼지가 빅뱅을 거쳐서 지구별이 생겼다. 지구별은 ‘동지팥죽’ 끓듯이 60억년 정도 부글거리다가 차츰 겉에서부터 거죽이 굳어졌다. 이런 천지창조과정을 성서창세기(Genesis, Bible)에서는 6일로 축약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중심의 마그마는 ‘대장간의 불꽃(blacksmith’s flame)’처럼 화산폭발(volcanic eruption)로 지구촌의 온 세상을 태웠다.

지구상 인류가 불을 발견한 계기는 ‘익숙함에서 생긴 신뢰’를 기반으로 했다. 화산폭발로 마그마가 흘러내림, 별동별(流星)의 지구충돌, 천둥과 번개가 벼락으로 떨어짐, 마른 나무들의 마찰, 굴러떨어지는 돌덩이의 충돌 등에 의한 불이 발생하는 것을 수백 번이고 눈여겨봤다. 처음에는 신(神)으로 봤으나 일반적인 자연현상이라는 사실로 눈치를 채고부터 이용할 생각을 했다. 그리스 신화에선 “화산폭발은 대장장이 신들이 전쟁을 위해서 무기를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영리한 인간들은 화산폭발의 현상을 보고, i) 대장장치(풀무, 숯가마 등)를 개발했고, ii) 야금술(열처리, 단금, 연금 등)까지 익혔다. 뿐만 아니라 마른나무의 마찰 혹은 돌의 충돌에서 iii) 마른나무 가지를 맞대놓고 비비기(부싯나무, 燧木), 돌과 쇠붙이의 마찰(부싯돌, 燧石) 등으로 불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운석이 떨어져 파인 곳에서 iv) 최초로 운석쇠붙이를 녹여서 칼 등의 무기는 물론이고 토기까지 굽는 방법을 터득했다.

고고학적으로 불(Fire, 火)은 중(中)오르도비스 지질시기(Middle Ordovician period)의 화석에 의하면 4천7백만 년 전 화산폭발, 유성의 추락, 숲속 나무의 마찰에 의한 자연발화에서 불을 발견했다. 후(後)실루리아지질시기(Late Silurian fossil)에 불에 의해 지구의 13%가 타버린 황야가 나타난 것은 4천20백만 년 전이었다. 최초 사용은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160만년 ~ 25만 년 전)가 살았던 142만 년 전이다. 이들이 살았던 아프리카 유적으로는 13 군데가 남아있다. 가장 이른 곳, 케냐 체소완자(Chesowanja, Kenya)에선 짐승 뼈, 완도완 석기, 불에 탄 진흙과 동시에 50여개의 불 탄 진흙조각의 배열이 나왔는데 화로(earth oven)로 추정된다. 이렇게 시작되어 6~7십만 년 전부터 초목을 이용해서 불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40만 년 전부터 인류는 불을 다루어, i) 추위로부터 보온을 했으며, 동시에 밤의 어두움을 밝혀서 활동시간을 연장, ii) 맹수나 해충으로부터 생명을 보호, iii) 생식(生食)에서 익혀먹음(火食)으로써 질병을 줄이고 더욱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iv) 생활필수품을 토기, 청동기까지 불을 이용해 제조할 수 있었고 무기까지 생산했다. 보다 높은 열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태워 숯을 생산했다. 이를 사용해 보다 단단한 철제무기까지 생산했다. 10만 년 전부터 날 것을 익히는 요리를 하게 되었다. 종교적 목적, 심지어 고문과 처형의 방법으로도 사용했다. 불을 이용한 화전(火田) 경작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산업발전에도 기여했다.

불(fire)을 이용한 토기(토기, earth-ware) 제작은 BC 2만9천년에서 BC 2만5천년 전인 신석기시대부터 시작했다. 최초 씨앗을 뿌린 건 BC 1만3천년 전 이스라엘 하이파 나투프(Natuf, Haifa, Israel) 여인이 귀리와 보리를 거주지(흙집) 부근에 뿌렸다. BC 6천5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요르단 서안(西岸) 예리코(Jericho, BC 9천년경 도시)에서 최초 농경목축이 시작되었고, BC 6천년경 이집트도 농경지대가 늘어났다. BC 5천년경 오리엔트(Orient) 지방에서 신석기시대에 접어들었다. 인류 최초로 맥주를 양조한 흔적으로 1만3천년 전 나투프(Natuf, Israel)에서 삼혈(三穴) 맷돌과 땅속 발효조(醱酵槽)가 발견되었다.

◇ 불구덩이 솥(earth oven)에서 요리가 시작

1960년 이전 시골에서 쇠풀 뜯으러 산이나 개울에 갔다가 끼니때가 되어 배가 고파오면, 먹을거리를 마련하고자 감자서리를 한다. 남의 전답의 감자를 훔쳐오면 잔돌로 탑을 쌓고 나뭇가지를 모아 불로 돌탑을 달군 뒤에 그곳에다가 생감자를 넣는다. 그 위에 풀이나 나뭇잎으로 밀봉하고 흙을 덮어 2시간 정도 뜸을 들인다. 이렇게 삶아서 먹는 걸 땅 꾸지(땅 구이), 돌 꾸지(돌 구이) 혹은 감자꾸지라고 했다.

경상도에선 ‘궂(꾸지)’이라고 하나 강원도에서는‘굿(구시)’이라고 한다. 동네 어른들도 땅에다가 구덩이를 파서 불을 때어 달군 돌무지로 대마(삼)나 닥나무를 삶아 공동으로 작업하는 ‘길쌈’ 혹은 ‘닥쌈’을 했다. 강원도나 경북산악지대의 ‘삼궂(굿)’ 혹은 ‘닥궂(굿)’은 1970년까지도 해왔다. 굿(꾸지)작업을 할 수 있게 불을 때고, 뜸을 들이는 흙구덩이(불구덩이)를 가마(窯)라고 했다. 가마는 불을 때는 ‘불집(아궁이)’, 불이 지나가는 길 ‘불목(火逕)’, 삼이나 닥 같은 삶을 물건이 쌓아 지는 ‘몰아놓는 곳(‘㎞ 湯槽)’으로 구성된다.

선사시대에도 우리 조상들은 이렇게 먹거리를 마련했다. 즉 i) 움푹하게 땅을 파서 불을 피우는데 사용하거나, 혹은 ii) 돌을 쌓아서 움푹하게 만들어 모닥불로 돌을 달구어 놓았다가 음식을 굽(찌)는 작업을 했다.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흔적으로 1940년 남아공(South Africa), 쿠루만 구릉지(Kuruman Hills)의 원더워크 동굴(Wonderwerk Cave)의 지층을 조사하다가 제10호 지층에서 100만~40만 년 전에 불을 사용한 증거로 변성된 돌(지층) 등이 발견되었다.

오늘날에 비유하면 불구덩이는 요리 터(cooking pit)이고 부엌(kitchen)이다. 오늘날 용어로는‘땅 솥(earth oven)’, ‘움 가마(ground oven)’ 혹은 ‘요리 움터(cooking pit)’라고 하며, 중국(Hakka), 태평양연안(Umu), 하와이(Imu), 남미(Curanto, Cui) 및 유럽 등지에 전통적 요리방법으로 유지되고 있거나, 고고학적 유적으로 움터가 발견되고 있다.

아직도 불(땅)구덩이를 이용해서 전통음식을 만드는 이벤트를 관광자원으로 보여주고 있다. 페루 안데스 산간 원주민들이 돌을 달구어 감자, 옥수수 등을 익히는 요리방식을 케추아(Quechua)족은 ‘쿠이(Cui)’라고 하는데 우리말 ‘구지(cugi)’와 흡사하다. 또한 케추아말로 ‘파차만카(Pachamanca)’라고도 하는데 ‘파차(pacha)’란 땅(earth)이고, ‘만카(manca)’는 화덕(oven) 혹은 솥(pot)에 해당한다. 페루 안데스산정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원주민 아이마라(aimara)족은 ‘와티아(watia)’라고 부른다. 이들은 첫 수확시 반드시 대지 어머니(Pacha Mama)에게 감사를 드린다.

칠레 칠로에 섬(Isla Chiloe, Chile)이나 아르헨티나 등지에 거주하는 마푸체(Mapuche)족의 전통적인 ‘쿠란토 요리(curanto cooking)’에서 ‘쿠란토(curanto)’란 우리말 “(불에)구운돌(burned stone)”이다. 1.5m 내외의 불(움)터를 파서 불로 달군 돌에다가 해산물, 고기, 감자, 옥수수, 채소, 밀가루 전병 등을 칸칸이 날카(Nakca) 잎을 덮고 층층이 음식물을 쌓는다. 그 위에다가 흙을 덮어서 1시간 이상 뜸을 들여 음식(earth oven)을 만든다. 요사이는 흙의 음식오염을 예방하고자 흙 대신 비닐로 덮는다.

또한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연방국(Federated States of Micronesia)의 야프(Yap), 추크(Chuuk), 코스래(Kosrae) 및 폰페이(Phonpei) 등의 섬에는 얌(yam), 빵 열매(breadfruit), 생선, 돼지고기, 닭고기 등을 바나나(banana) 잎으로 싸서 땅 솥(Imu)이라는 달구어진 돌 위에 놓고 나뭇잎과 흙으로 덮어서 ‘땅 솥 요리(Imu cooking)’를 한다. 하와이에서도 추수감사축제 때는 ‘이무(imu)’를 이용해 ‘칼루아 포크 이벤트(Kalua Pork Event)’를 한다. 조금만 생각하면‘이무(imu)’란 한반도의 ‘움(불구덩이, 자궁, 싹)’에서 나온 어원임을 알 수 있다.

선사시대 한반도 사람들이 살던 움(움푹 파인 곳)은 땅속으로 약 150cm 내외 파 들어간 터(움)로, 두만강 유역과 함경북도에서 많이 발견되었는데, 1960년부터 1964년까지 함경북도 웅기 송평동(雄基松坪洞)에서 움과 온돌시설까지 출토되었다. 아직도 우리말에는 움집, 움터(仰天壙), 움막, 움파, 움불, 움집살이 등 256개의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우리말 가마에 해당하는 말에는 i) 길흉사를 기념하고자 말 대신에 사람이 매고 가는 꽃가마(輦), 상여(輿), 인력거(轝) 등이 있고, ii) 일본말 가마(かま)에 해당하는 질가마, 가마솥, 용가마, 전기밥솥(でんきがま), 무쇠가마 등이 있다. iii) 오늘날은 보기 어려운 숯가마(炭窯), 옹기가마(甕窯), 도자기 가마(磁窯), 기와 가마(瓦窯) 및 벽돌 가마(塼窯) 등이 있었다. 음식을 만들었던 불구덩이(火穴)를 개량해서 옛날에는 숯, 토기(질그릇, 장독, 오지그릇 등), 도자기(백자, 청자) 등을 생산했다. 아직도 가마를 이용해 기와 및 벽돌을 생산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는 요사이 전기(가스)가마를 이용해서 도자기, 기와 및 벽돌을 생산하고 있다.

글 =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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