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손갤러리, 샌정 개인전
우손갤러리, 샌정 개인전
  • 황인옥
  • 승인 2021.07.04 21: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색빛 풍경을 관통한 ‘깨달음의 순간’
“본질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어려워, 찰나적으로 포착할 뿐”
한계 가진 인간 세계는 회색, 지향점은 기하학적 형상으로
순수추상 추구하되 ‘정신성 기반’ 동양 수묵화적 요소 차용
동양-서양·배경-형상 등 대비로 형이상학 가치인 조화 구현
샌정작무제
샌정 작 무제.

샌정작무제-2
샌정 작 무제.

회색빛 배경 위에 선이나 면으로 구축한 기하학적 패턴들이 매혹적이다. 화면 전반에 걸쳐 조성된 바탕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지분으로 구축된 기하학적 패턴이지만, 회색빛 배경과 대비되는 밝은 색조가 뿜어내는 고고한 기운은 사방을 삼키고도 남을 넉넉함으로 다가온다. 샌정 작가가 절제의 미감으로 그려낸 풍경이다.

그림의 대상이 ‘풍경’이라고 했을 때,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풍경의 단골 소재로 흔히 등장하는 산이나 들 또는 도심의 빌딩 숲을 발견하기 어려울 뿐더러, 풍경이라고 표현한 기하학적 도상에서 흔히 떠올리는 풍경의 모습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념적인 풍경”이라는 작가의 설명이 더해지면, “집적된 정신성의 표상으로 기하학적 도상만한 것도 없겠다”는 수긍과 함께 의문은 한 순간에 잦아든다.

◇ ‘본질의 세계’인 ‘바깥 세계’를 향한 여정

우손갤러리 개인전 개막식에 모습을 드러낸 샌정은 자신의 예술세계가 “정신적 사유가 머무는 최고의 단계인 형이상학의 세계”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전시에는 샌정의 정신이 머무는 형이상학의 경지가 회화로 표현된 작품 35점을 소개하고 있다.

샌정은 현실 너머에 존재한다고 믿는 ‘형이상학’을 사유와 예술의 주제로 삼아왔다. 그 흔한 인간이나 사회, 자연 등의 현실세계나 가시적인 소재는 그의 관심 밖이었다. 작가가 정의 내리는 예술은 보다 거시적인 세계에 대한 추구이고, 그 철학에 따라 본질의 세계인 우주로 의식의 지평을 넓히는데 작가적 역량을 발휘해왔다. 샌정은 자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바깥세계’, 즉 ‘본질의 세계’라고 칭했다.

따지고 보면 본질에 대한 앎은 인간이면 누구나 느끼는 갈증이다. 불완전한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이, 완전무결한 본질의 세계를 갈구하는 것은 본능이다. 샌정은 본질에 대한 사유를 예술가의 숙명으로 자각하고, 자신의 위치를 안과 바깥의 경계지점에 놓는다. 그리고는 경계에 난 창으로 바깥세계를 관조한다. 그의 사유가 깊이를 더해갈수록, 그는 본질에 한 발자국씩 가까워지고 있다.

이른바 ‘바깥 세계’에 대한 관심은 어린 시절의 경험들과 무관치 않다. 그는 어린시절 자연에서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경험했다. 그것은 논리 이전의 본능적인 경험이었고, 그의 감수성은 자연의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자양분으로 싹을 틔워갔다. 그때 그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감성들이 작가로 활동하면서 ‘바깥 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토대가 되었다.

샌정은 순간순간 그가 본 바깥세계를 풍경으로 그려낸다. 하지만 그의 풍경은 안개에 쌓여있다. 그가 그리는 풍경이 ‘본질의 세계’임을 직시하면, 안개에 휩싸인 대기감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물론 밝은 색채의 기하학적 도상들에서 감추고 싶어도 감추어지지 않는 극강의 고요를 발견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흐릿함의 연속이다. 흔히 범할 수 있는 “본질의 공간은 찬란할 것”이라는 생각을 비껴가는 분위기다.

이에 대해 샌정은 “실존의 인간이 금단의 세계를 ‘완전하게 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자신은 “깨달음의 순간순간 드러나는 바깥세계의 편린들을 찰나적으로 포착할 뿐”임을 인정했다. 바깥 세계를 향하고 있지만 인간이 가지는 한계를 인정하고, 그 위치를 흐릿한 안개로 표현해 냈다는 이야기였다.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본질을 사유를 통해 탐색하지만, 인간인 나로서는 그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의 예술은 미술사의 흐름과 궤적을 같이해왔다. 의식적으로 미술사의 사조들을 수용하려는 태도를 취하며 작업을 발전시켜왔다. 정제된 정사각형, 직사각형, 원형 그리고 선 등은 1910-20년대의 보편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기하학적 추상의 숭고한 이념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특히 낭만주의에 대한 믿음이 강렬했다. 낭만주의는 개성이나 주관, 비합리성, 상상력, 초월성 등을 강조한 미술사조인데, 샌정은 낭만주의의 기조 아래 자신만의 낭만주의를 새롭게 정의 내리려는 태도를 취했다.

그는 자신의 낭만주의를 주체성에서 찾고 있다. “내가 정의내리는 낭만주의는 직관적이고 주도적인 자세에서 바깥세계를 대면하는 하나의 개인적인 드라마이며, 전투적인 입장에서 화면 안에서 무언가를 찾으려는 시각적인 드라마다.”

◇ 실존이 표현한 ‘본질의 세계’는 ‘모호성’으로

그리스의 시치프스의 신화나 이카로스의 신화가 서양미술이나 서양철학의 정수들을 집약적으로 축적해 냈다고 한다면, 샌정은 낭만주의의 틀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집약된 정신성으로 쌓아가기를 희망했다. 그는 작업 초기에 자신의 사유들을 인간, 동물, 자연 풍경 그리고 건축 양식 등의 재현적인 대상들이 포함된 구상이나 반추상의 형식으로 표출했다. 하지만 대략 2011년 부터는 지배적으로 순수추상으로 표현 양식의 변화를 모색했다.

구상에서 반추상 그리고 순수추상으로 시각적 표현들은 변화를 거듭해 왔지만, 정신성에 대한 믿음만큼은 확고부동했다. 다양한 미술사조들을 경계없이 넘나드는 가운데서도 20여년 가까이 정신성에 대한 고찰은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지켜왔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과 전공하고, “서양화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키겠다”는 결기로 독일로 건너갔지만, 그의 회화는 동양회화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외향보다 내면을 중시하거나 수묵의 흑백 구조 속에서 모노크롬을 추구하는 등의 태도에서 동양회화의 정신이 짙게 배어난다.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핏속을 떠도는 동양의 정신과 그의 내면을 부유하는 ‘바깥세계’를 향한 의자가 결합하면서 동양회화의 대기감이 그의 화면에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가 “유럽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오리혀 동양회화인 수묵화적인 요소가 점진적으로 내게 와 닿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수묵화의 대기감이 타지에서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현대미술이나 현대회화에서 그것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재정의 내릴 것인가가 관심사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것은 전혀 의도되지 않았음을 명확히 했다.

집약된 정신의 산물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은 대략 두 가지다. “지적인 논리로 중무장한 정연함으로 풀어내든가, 오히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담백하게 접근하든가”다. 극과 극 어느 방향으로 이끌리든, 결국 둘 모두 진리를 표현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전자는 논리, 후자는 본능에 더 강하게 이끌릴 뿐이다.

샌정은 후자 편에 선다. 그의 화면은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표출된다. 완결되지 않아 편안한 기하학적 표현은 어린아이의 순수와 맞닿아 있다. 그 옛날 원시벽화의 순수성과 비견될 만하다. “순수를 갈망하는 태도는 고정된 틀로부터 자유에 대한 갈망과 연결된다.”

샌정 예술의 극적 아름다움은 ‘모호성’에 있다. 거의 기본색에 근접해 기하학적 형상을 숭고하게 표현하지만 절대적 분량으로 표현된 회색 배경과 어우러지면서 모호함으로 흘러간다. ‘모호성’은 화면에서 안과 바깥, 동양과 서양, 배경과 형상 등으로 대비된다.

작가는 이 대비들을 “‘조화’와 ‘균형’을 위한 장치”라고 언급했다. 그가 가진 미적 판단들은 언제나 ‘조화’와 ‘균형’에 맞춰져 있었다. ‘균형’이나 ‘조화’야말로 ‘바깥세계’인 형이상학이 추구하는 ‘가치’라는 믿음 아래, 대비가 이끈 극적 팽팽함과 그것을 조정하는 조화가 화면 전반을 이끌어간다.

“나의 화면은 대립적인 요소들 속에서 모호함과 균형감을 가진다. 그것은 막연한 공간과 존재를 구체화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작가가 정신성을 표출하는 매체는 회화다. 그가 창을 통해 본 ‘바깥 세계’는 회화로 표현된다. 그에게 캔버스의 표면은 바깥 세계로 난 창과 다름없다. 빈 캔버스를 온종일 바라보는 일은 그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인데, 그는 캔버스 표면 너머로 바깥 세계를 관조한다.

캔버스를 바라보는 시간들 속에서 이론과 본능이 혼재되고, 충돌과 균형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 여정들이 회화라는 매체와 결합된다. 그의 회화는 그의 정신이 향한 주관의 영역이자 객관의 우주다. “내 모든 작업들은 모두가 하나의 뷰(View)이고, 생각의 창이며, 하나의 풍경이며, 심지어 하나의 세계다. 나의 회화는 창조적 양면성으로 극대화된다. 이성적이면서 감성적이고, 분석적인 동시에 서정적이다.” 전시는 9월 3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