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인아웃]안녕, 서울극장
[백정우의 줌인아웃]안녕, 서울극장
  • 백정우
  • 승인 2021.07.0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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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극장전경
다음달 31일, 42년의 역사를 끝으로 문을 닫는 서울극장 전경.

중학생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2개의 극장이 있었다. 하나는 재개봉관이고 다른 하나는 동시상영관이었다. 재개봉관의 주인은 영화배우 신영균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혹시나 극장 주인을 볼까 싶어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흘끔거렸다. 신영균은 끝내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스무 살 시절의 극장은 도피처이자 이상과 현실의 격전장이었다. 아찔한 금발미녀들의 풍만한 육체가 스크린에 전시될 때 “전두환은 물러가라!”는 구호는 “섹시 글래머여 내게로 오라”로 바뀌었고, 나는 판타지 세계로 아득하게 침잠했다. 하루 종일 최루탄에 혹사당한 가슴과 머리와 얼굴을 식히기에 영화관만한 장소가 없었다. 동시상영관일수록 좋았고 변두리로 갈수록 아늑했다. 최신 개봉작을 때맞춰 보기 위해선 시내로 나가야했다. 괜찮은 한국영화와 배창호 감독 작품은 명보극장이 전담했고, 70mm 대형영화는 대한극장에서 볼 수 있었으며 ‘서편제’를 보기 위해선 단성사에 가야했다. 스카라극장은 음향시설이 압권이었고, ‘접속’은 피카디리 극장을 명소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인디아나 존스’를 보기 위해 매표 대열에서 2시간을 기다린 그해 여름, 서울극장을 나는 잊지 못한다.

서울극장이 8월 31일자로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79년 개관 이래 42년 만의 일이다. 단성사와 피카디리가 간판을 내린 와중에도 고군분투하며 종로 3가를 지킨 마지막 영화관이었다. 나는 서울극장 폐관소식을 접하는 즉시,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1971년에 만든 ‘마지막 영화관’을 떠올렸다. 50년대와의 작별을 고하는 법에 관해 70년대의 고민을 담은 의미심장한 영화 ‘마지막 영화관’에서 개발에 밀려 정체성을 잃어버린 텍사스 소읍의 이야기는 시대의 진보와 도시발전이 사람들을 어떻게 허무와 체념의 일상으로 몰아넣는지를 보여준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극장 쇼가 벌어지고 은막의 스타들이 당대의 패션리더로 문화를 선도하던 그 시절, 극장은 서민들의 낙원이었고 영화는 그들이 꿈꾸는 세상과 만나는 해방구였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 여기에 도착한 모든 영화가 빛바랜 추억으로 사람들 뇌리에 자리하는 건 이 때문이다.

롤랑 바르트는 영화관의 어둠 이전에 거리의 어둠이 있다면서 밤의 경험이 영화 체험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한가로움과 자유로움과 도시의 익명성과 황혼의 몽상으로서의 어둠이 영화관의 에로티시즘을 자극한다고 본 것이다. ‘서울극장’ 또한 시민의 고단한 삶을 털어내고 안식과 위로를 선사하는 해방구이자 어둠 속 낯선 이와의 만남이 주는 에로티시즘의 공간으로 존재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영화는 개별적으로 기억되는 법이 없다. 영화를 같이 본 사람과 그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이 하나로 합쳐져 영화에 대한 기록이 되고 끝내 추억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극장 폐관을 ‘한 시대의 폐막’ 같은 감상적 언술로 표현한다는 건 한 세기에 혼신을 바친 이들에 대한 값싼 헌사일지도 모른다. 공간은 사라져도 추억은 남을 것이고, 그곳과 함께한 기억과 공기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전언, 같은 시간·공간에서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은 함께 숨 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백정우ㆍ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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