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인정
  • 승인 2021.07.12 20: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순란 주부
사람에게는 대부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홍희는 사람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잘 지내는 것을 좋아하고, 실제로 잘 지내고 있지만 가끔 무미건조함을 느낄 때가 있다. 친절상을 받거나 업무적으로 우수하여 인센티브를 받거나 상을 받으면 행복하다. 스스로 대견하고 기쁨으로 뇌가 충만해짐을 느낀다. 남이 받으면 축하해주지만 시기질투하지는 않고 자신도 열심히 해서 받아봐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노력한다. 우수사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작년에 처음 시도할 때는 제출하는데 의의를 두었다. 올해는 최소 장려상이 목표였다. 밤늦게까지 야근을 하면서도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것이 뇌를 활성화시켰다. 몸은 힘들었지만 기분은 좋았다. 몰두하는 즐거움과 상을 받는다는 상상이 시간을 채웠다. 마무리를 했을 때의 뿌듯함, 제출할 때의 후련함은 상을 받은 것 만큼 짜릿했다. 자신이 뭔가 하나를 해냈다는 만족감. 나중에 상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상을 받았을 때 생기는 자존감. 남들의 축하의 또다른 이름인 시기질투. 일상적인 업무에서 얻을 수 없는 여러 가지 긍정적 정서가 시간을 채우니 따분하지 않았다.

결과는 '꽝'이었다. 이틀을 안타까움으로 원인을 분석했다. 결론은 우수사례로 적절하지 않은 대상자였다. 써 내기를 바라는 팀장의 눈빛에 적합한 사람이 아님에도 써 낸 결과였다. 최선을 다한 과정은 칭찬받을 만했고 방식을 터득했기에 얻는 것도 있었다. 다시 일상적인 업무로 돌아왔을 때 뇌의 어떤 회로에 불이 꺼진 것을 느꼈다. 자신이 스스로 인정할만한 일을 하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이 다분히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대로 인정하기 싫은 것도 있다. ('인정받기 싫다'는 말은 잘 쓰지 않는 것 같고, '인정하기 싫다는 말은 잘 쓰이는 말이다.) 자신의 단점, 부족한 부분, 부정적인 부분을 이미 자신도 알고 있는데 남이 말하면, 굳이 들추어내는 상대방의 의도가 미워서 인정하기 싫어지고, 그 앞에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쿨하게 인정해도 되지만, 굳이 들추어내서 말하는 예의 없는 상대방에게 쿨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백신 1차 접종을 하고 2차 접종을 앞두고 있어 2차 접종을 하고 면회오라는 요양원 원장의 당부가 있어서 2개월 넘게 엄마를 보러 가지 못했다. 대구에 있는 시어머니는 주간보호센터로 면회를 가도 전혀 꺼리지는 기색없이 면회를 시켜주는데, 인원도 많지 않은데 왜 그리 면회를 겁내는지 모르겠다. 의성에는 확진자 발생자는 거의 없는데 말이다. 두 달이 넘으니 꿈에 아버지까지 나온다. 큰 수박을 사서 남편과 갔다. 엄마는 요양사 두 분의 부축을 받고 엉덩이를 뒤로 빼고 나왔다. 의자를 한 손으로 잡고 엉덩이를 붙이고 면회 온 사람을 보았다. 별로 반가운 기색이 없다.

엄마의 무덤덤한 성격을 알기에 섭하지 않다. 막내라 젖을 많이 못 먹어서 그런지 아직까지 엄마 젖을 느끼고 싶다. 자신이 보고 싶어서 왔기에 엄마 얼굴을 보면 된다. 얼굴은 밝고 살이 있어보였다. 다행히 잘 드신다고 한다. 대소변도 가려서 부축을 받지만 기저귀에 싸지 않고 화장실을 간다. 다행이다. 보고 싶은데 볼 수 있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충분하다. 엄마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요양보호사가 자꾸 엄마에게 질문을 한다.
"어르신, 이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겠나? 이름이 뭐냐? 누고? 딸이재? 딸 맞재? 막내 딸 아이가? "
안 그래도 된다고, 괜찮다고, 말하지 마시라도 자꾸 손을 흔들어도, 언성을 높여도 묻고 또 묻는다.
반복하는 질문이 성가신지 흘깃 쳐다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엄마는 말했다.
"모른다"
알아도 모른척하고 싶었고, 굳이 알고 싶지 않았고, 그렇다고 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홍희는 엄마를 알고, 홍희의 엄마인 것은 변함이 없고, 엄마는 홍희 앞에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혼자 속으로 되뇌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도 홍희는눈물이 흐른다. 굳이 인정하기 싫은 것을 왜 들추어내는 것인가? 왜 그 대답을 귀로 듣도록 하는지 요양보호사가 야속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