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디자인 기행]글자에 생기 불어넣은 ‘캘리그라피’…어느새 일상 곳곳에
[일상 속 디자인 기행]글자에 생기 불어넣은 ‘캘리그라피’…어느새 일상 곳곳에
  • 류지희
  • 승인 2021.07.15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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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예술 예쁘기만 한게 아냐, 선이 만들어내는 삶과의 연결고리
그림보다 솔직하고 직관적
간판·공연포스터 등 활용
모양·색 종류도 다양해져
재미있고 친숙한 취미로
감정 담는 감성공학의 한 영역
단순히 글자 그리는 행위 너머
전통서예 변주된 문화로 자리
한글의 아름다움 뽐낼 도구로
캘리그라피
캘리그라피는 손그림 작업과 태블릿으로 하는 그래픽 작업이 있으며, 사용 도구들은 펜촉(브러시)의 모양과 색상, 사용 방식 등이 매우 다양하다.

글자에도 감정이 있다. 그리고 그 감정도 계산이 가능한 감성공학의 한 영역이라는 사실을 캘리그라피라는 글을 그리면서 깨닫는다. 사람의 신경 세포들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듯이 세계의 언어들이 오직 선들로 이루어지는 시간, 캘리그라피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 연결되어 있는 고리들을 연구하다 보면 그 것을 이루는 하나하나가 얼마나 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글자 하나에 어여쁨과 미움과 슬픔과 쓸쓸함들이 차곡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이 예술과 디자인을 말하는 경계가 되기도 한다. 예술은 작가의 마음 속 언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다소 난해하고 복잡하고 기괴할 지라도 그 것 자체로 존중 받는다. 작가의 세상 속으로 우리가 먼저 성큼 발을 들여놓고 보아야 하는 일이니깐. 그러나 디자인은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호감도와 만족도가 높은 장르이기 때문에 모호한 관념론이나 추상적인 것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감정의 희노애락이 잘 전달되기 위해서는 계산과 의도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목적에 맞게 활용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같은 캘리그라피라도 예술이냐 디자인이냐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 캘리그라피는 1차적으로는 문자이니 세계 공용의 약속이며, 2차적으로는 그림이니 예술로써의 외형적 아름다움이 충족되어야 하니 예술과 디자인을 모두 담고 있는 장르라 볼 수 있겠다.

BTS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가 떠오른다. 전세계 팬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 중 하나인데, 하나의 아름다운 시가 되기 위해 그를 이루는 작고 소소한 요소 요소들이 얼마나 진심을 다해 모였겠는가를 되뇌어보게 한다. 캘리 역시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이 아주 쉬운 서체들도 있지만 아주 아주 복잡한 부분의 서체들로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어릴 적 우리들은 작은 것에도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신기해 하였으며 감사할 줄 알았고, 슬픔과 미움 그 온갖 감정들에 서툴렀지만 단 하나 솔직함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 가면서 그러한 솔직함은 쑥쓰러움이 되고 더 나아가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감정조절 장애나 우울증과 같은 감정의 실타래들로 인한 마음의 병이 많이 생겨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인지 ‘그림’은 성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취미활동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림은 마음 속에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의 시각언어로 표현해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치유효과가 있다. 작품이 다소 난해하고 자극적이고 혹은 빈 여백 투성이의 정체불명이라 하더라도 괜찮다. 그렇담, 문자를 그리는 캘리그라피는? 그림보다도 더 솔직하고 직관적이다. 다시 말해 문자는 약속이기 때문에 추상적일 수 없으니 커뮤니케이션에는 더욱 용이한 예술이라 하겠다. 벼루와 먹을 갈고 화선지에 붓으로 농담을 조절하던 예전의 서예를 그리는 방식과 많이 달라졌다. 붓펜 형식으로 된 캐릴그라피 전용펜의 모양과 색의 종류만 해도 엄청 다양해졌다. 심지어는 태블릿PC에서는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브러쉬의 모양과 농담을 조절하며 그래픽으로 표현하는 데에도 자유로워졌다.

 

거리의 간판을 보면 캘리그라피(문자예술)의 과거와 현재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거리의 간판을 보면 캘리그라피(문자예술)의 과거와 현재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렇게 접근 방식이 다양해진 것이 캘리그리피 열풍이 식지않고 뜨거운 이유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캘리그라피는 미술가들 사이에서도 그 장르의 팩트성에 대한 반문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전국 곳곳에 캘리그라피 클래스가 여전히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고, 더구나 성인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문 밖으로만 나서도 간판이나 전시 공연 포스터 그리고 음식점과 휴드폰가게 광고물만 보아도 캘리그라피는 우리의 일상과 아주 많이 친숙해져 있다. 일상용어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문자 예술의 시대에 캘리그라피라는 장르의 활성화는 문자예술에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실 캘리그라피는 붓으로 쓰는 서예문화를 외국에서 부르는 단어였다. 디지털문화에 대한 현대인들의 피로도와 아날로그 감성의 부재로 인한 메마름에 단비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한문이나 영문도 가능하지만 한글이 대부분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데, 위대한 한글 보유국으로서의 자랑스러움을 캘리그라피 작업을 하며 더욱 느끼고 있다. 결합과 분리가 가능한 자음과 모음의 구조와 확장성은 세계문자예술대회에서 독보적 1위를 차지하면서 증명이 된 바 있다. 실제로 작업을 해보면 같은 ‘가’자라 하더라도 수천 수만 가지의 디자인으로 확장될 수 있다. 자음과 모음의 각 모양과 크기 각도 그리고 비율의 베리에이션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디자인을 개발해낼 수 있으니 정말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캘리그라피 열풍 이전부터 서예문화는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계승돼 오고 있다.
캘리그라피 열풍 이전부터 서예문화는 과거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지속적으로 유지되며 계승돼 오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예’문화를 꾸준히 발전시키고 계승해 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서예인들의 노고와 애정에 감사하게 된다. 단, 그런 노력과 가치에 비해 역사적으로 서예문화상의 큰 획을 그을만한 두드러진 사건이 없었다는 것에 아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화는 변화하며 발전하는 것이니 현재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캘리그라피 문화를 단순히 글자를 예쁘게 그리는 행위가 아닌 우리의 전통으로부터 이어져 온 문맥의 하나라 여기어도 좋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그 문화를 전설처럼, 역사처럼 우러러보는 것을 너머 현재의 시간 속에서도 우리가 익숙히 향유하고 있다는 것일 테니.

캘리그라피 로고를 제작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 생동감과 움직임 자체는 떨림과 불안함과 연결되어 있는 행위이구나 하는. 그러나 역으로 그러한 불안함과 떨림 속에서 일상과 맞닿은 아름다움이 생겨난다는 것이 우리네 삶과 참으로 닮아있다는 생각에 괜스레 므흣한 마음이 들었다. 안정감이란 살아있는 동안 어쩌면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다시 이 칼럼글의 첫 머리로 돌아가 얘기해보자면,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문자들의 아름다움을 보며 삶을 깨우치고 있다 말할 수 있겠다. 연결 또 연결하며 우리의 마음도, 관계도, 경제도 스러지지 않게 스스로를 지탱하고 서로를 지지해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선이 글을 만들고 그 글에서 인생을 배운다.

 

 

류지희<디자이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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