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로 세계경제 장악한 中…그래서 china라 불리더라
도자기로 세계경제 장악한 中…그래서 china라 불리더라
  • 김종현
  • 승인 2021.07.1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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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24) 밥맛을 만드는 밥그릇
china 어원
고대 페르시아어에 ‘chin’
이는 산스크리트어 cina서 기원
영어에 사용된 시기는 16세기
china = 도자기 China = 중국
도자기
도자기가 나라명이 된 중국. 그림 이대영

◇도자기(china)가 중국 나라이름이 된 사연

지구촌에 대변혁을 초래했던 교역(交易)과 원정(遠征)을 살펴보면 i) 담비 길(marten road, BC 2,000~BC 100), ii) 비단 길(silk road, BC 100~ AD700), iii) 몽고원정 길(Mongolian conquest road, 1206~1368) , iv) 도자기 길(china road, 1,000 ~ 1600) , v) 노예교역 길(slave trade road, 1,500~ 1800), vi) 향신기호품 교역 길(coffee and tea, 1,400~18,000) vii) 반도체 길(semiconductor road, 1950~현재) 등으로 편의상 구분할 수 있다.

중국이 세계대제국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당(唐)제국의 비단과 송·명·청(宋明淸)제국의 도자기가 세계경제를 좌우할 정도였다. 단적으로 옛 도자기의 경매가격을 보면, 199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조선백자 ‘철화백자운용문호(鐵花白磁雲龍文壺)’는 841만7천500 $(당시환율로 79억원)에 낙찰되었으며, 2010년 런던 베인브리지 경매장(Bainbridges Auctions, London)에 중국 청나라 건륭제 백자 ‘길경유여문투각호(吉慶有余透刻壺)’는 4천300만 파운드(973억5500만원)에 낙찰되었다.

지구촌에 토기는 BC 3000년 경 이집트 나일강 진흙을 이용해 토기가 만들어졌고, BC 2000년 경 가마를 이용해서 토기를 빚었다는 벽화가 있다. 그러나 노천소성으로 600~800°C 온도에서는 방수성 토기를 굽지 못했다. 이를 극복하고자 보다 고온을 얻을 방법으로 i) 마른 땔감(火木, 왕겨 혹은 볏짚)에서, 숯(木炭), 기름(石油), 석탄(石炭) 등의 새로운 연료를 찾았고, ii) 굽기에서도 노천소성(600~800℃), 노천덮개소성(1천℃), 움(터)가마(露天窯,1천100℃), 지하(반)가마(竪穴窯, 1천120℃), 오름(계단)가마(登窯, 1천250℃), 오름살창가마(登火窓窯, 1천350℃)를 개발, iii) 유약에 있어 유유(琉釉), 회우(灰釉), 회청유(回靑釉,cobalt), 연유(鉛釉) 등, iv) 일반진흙, 황토, 페르시아 석영토, 중국 경덕진 고령산(景德鎭高嶺山)의 고령토(高嶺土, Koalin) 등 새로운 태토(胎土)를 모색했다. v) 굽는 온도에서 있어 1천000℃ 이상에서 유화현상(琉化現象,vitrification)으로 방수가 되었다. 1천250℃ 이상에서 도화현상(陶化現象, pottery phenomenon)이 발생했다.

영국 산업혁명 때 쇠뼈가루를 첨가한 우골도자기(bone china)로 1천100℃ 이상에도 도화현상(陶化現象)을 발생시키는 기법을 개발했다. vi) 불질꾼(火夫)의 기술로는 상감청자 등의 비취청색을 만들기 위해 살창(窯邊火窓)으로 산소공급을 조정해 산화번조(酸化燔造) 혹은 환원번조(還元燔造)기법을 활용했다. vii) 도(토)기 제작기술의 시대적 흐름은 이집트→ 중동(페르시아, 터키)→ 중국(한국)→ 유럽(독일, 프랑스 및 영국)→ 일본 순으로 전파되었다.

오늘날 영어 ‘차이나’는 소문자론 ‘도자기(china)’이고, 대문자로는 ‘중국(China)’이다. 영어에 차이나(china)가 사용된 것은 16세기로 포르투갈어, 말레이어 및 페르시아에서 사용되었으며, 기원을 소급하면 고대인도어 산스크리트(Sanskrit)에 차이나(china)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다.

포르투갈의 작가 두아르테 바르보사(Duarte Barbosa, 1480~1521)의 1516년 저서에서 페르시아어 ‘친(Chin)’이란 말이 나오고, 이는 산스크리트어 ‘시나(cina)’에서 기원하고 있다. BC 5세기 힌두교 3대 서사시인 마하바라타와 BC 2세기‘마누법전(Laws of Manu)’에 나온다. 1665년 마르티노 마르타니(Martino Martini, 1614~1661)는 차이나(china)가 BC 221년부터 BC 206년까지의 진시황 제국(秦始皇帝國)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산스크리트어에 도자기란 말이 있었지만 이를 중국과 연결시킨 것이다.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제가 타계하자 영생을 위해 BC 246년, 340만 명을 동원해 생전의 영광을 재현하는 지하왕궁(350m×46m)을 건설했다. 내부에 4개 갱도에 8천여명의 병사, 130개의 전차, 520점의 말을 흙으로 굽고자 1천여명의 도기장(陶器匠)을 동원했다. 이를 통해서 도자기 기술은 후한(後漢) → 당(唐)나라→ 송(宋)나라→원(元)나라→ 명(明)나라→청(淸)나라까지 도자기제국으로 세계경제를 장악해 대제국이 되었다.

당시는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도자기가 지구촌을 장악했다. 이를 본 일본은 조선도공을 확보하고자 ‘분로쿠게이초노에키(1592~ 1599)’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조선인 도공을 잡아가서 도기산업의 기반을 다졌다. 한편 생포한 조선 사람은 도공이외엔 조선노(朝鮮奴)로 세계시장(나가사키, 마카오 등)에 ‘조총 1정에 조선노 6명( 6분의1)’이라는 헐값에 팔았다.

우리나라는 1975년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발굴된 ‘흙으로 구은 숟가락(土窯匙)’의 제작연대를 BC 5000년까지 소급하기에 그 이전에 토기를 구웠다고 할 수 있다. 고조선 이전엔 노천소성이나 노천덮개소성으로 토기를 생산했으며, 청동기 시대에 들어선 고조선 이후에는 불구덩이 (움)가마(基窯)를 사용해서 방수성이 있는 토기를 제작했으며, 청동밥그릇까지 제작했다. 고구려 광개토왕의 호우는 대표적인 청동밥그릇(靑銅飯盂)이다.

2~3세기경 정치권력이 형성됨에 따라 전업적 토기생산 체계(專業的土器生産體系)가 갖춰져 반(半)지하식 가마를 도입했다. 숯을 사용해 1천100℃~1천200℃까지 고온의 불질작업이 가능했다. 유리유약(琉璃釉藥)을 사용해 유화현상(琉化現象)이 있는 도자기인 도질토기(陶質土器)의 대량생산이 시작되었다. 4세기 말 이후에 낙동강 동안지역(新羅土器: 대구, 성주 포함)과 낙동강 서안지역(伽倻土器)으로 양분 생산되었다. 신라에서는 도자기와 기와의 국책사업을 위해 당나라의 관요제(官窯制)를 벤치마킹해 와기전(瓦器典)이란 담당행정기관을 만들었다. 경덕왕(景德王)은 한때 ‘도등국(陶登局)’이라고 개칭했다가 다시 복구했다. 이때 즉 6세기경 낙동강 동안(東岸) 달구벌(玉山) 신라가마터가 반지하식 가마인 것으로 봐서 1천100℃의 고온으로 방수성이 확보된 팽이형 토기를 생산했다고 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서는 오름살창가마(登火窓窯)를 사용해서 청자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담당기관인 사옹원(司饔院)을 설치하여 송나라의 음각기법(陰刻技法)을 받아들여 새로운‘상감기법(象嵌技法)’을 개발했다. 나아가 비취색이란 독창적인 착색에도 성공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따르면 공전(工典) 소속의 사옹원(司饔院)에서 대부분의 도공을 관장하면서 조선백자(朝鮮白磁)를 만들었다. 대명제국에 도전은 못 했지만 일본은 조선의 도자기 기술을 탈취하기 위해 조선도공 만인 확보전(朝鮮陶工萬人確保戰)인 임진왜란(壬辰倭亂, ぶんろくけいちょうのえき)을 감행했다.

◇인간을 닮아 강아지까지 밥그릇싸움을

애완동물을 데리고 공원을 산책해보면 배변이 아닌데도 나무에다가 오줌을 지려가면서 영역(territory)을 표시한다. 사람도 자신의 영역을 두고 텃세(territorial advantage)를 부린다. 조직폭력배들은 새끼줄을 쳐놓고 배타적 경계선을 긋거나, 최근 로마(Roma),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등의 국제도시에선 낙서예술(graffiti) 혹은 낙서그림(dasanzz)을 이용해 성역을 표시한다. 특히 조직폭력배가 새끼줄을 쳐놓고 성역을 표시하는 걸 일본어론 나와바리(なわばり)인데 영어론 영역(territory)이다.

일반인에게도 이와 같이 자신의 몫을 챙기는 영역경계선을 긋는 행위가 있는데 완곡적인 표현으로 “밥그릇을 챙긴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오늘날만의 문제가 아니다. 1960년대 시골에 강아지를 다른 집에서 1마리씩 2마리를 사오면, 자신만 먹고자 우열가리기로 밥그릇싸움(turf war)을 반드시 한다. 물론 집에 키우던 강아지에게 아예 우선을 인정해주는 텃세(territorial advantage)가 있다. 최근 동서양을 막론하고 밥그릇싸움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공지능(AI)에도 밥그릇싸움이 심각하다.

인공지능이 불러올 혁신분야는 i) 현재의 유망직종인 법률가, 의사 및 교수 등 복잡하고 전문적인 분야에서 가장 먼저 대두된다. 이는 다른 분야보다 경제적 파급효과(economic ripple effect)가 가장 크기 때문이다. ii) 단순히 반복하거나 위험한 분야에도 로봇과 자동화가 대신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소방현장, 전투현장, 해저작업, 각종 극한위험작업 등에 로봇이 대용된다. iii) 창의력이 상징인 예술분야에까지 진출해 미술작품 경매장에서 인간을 능가하고 있다. 이런 분야는 인간의 철밥그릇으로 생각했지만, 이젠 인공지능까지 넘보고 있다.

글 = 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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