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안남숙갤러리, 한국미술대전 특선 안남숙 작가 상설전
청도 안남숙갤러리, 한국미술대전 특선 안남숙 작가 상설전
  • 황인옥
  • 승인 2021.07.2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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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극사실 화풍 변화 시도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수묵화의 도구 한지·먹 매료
채색 더해 서양화 느낌 전달
동양사상 ‘공존’ 의미 기반
생명력의 대명사 꽃 화폭에
안남숙작-행운의꽃-생의찬미
안남숙 작 ‘행운의 꽃-생의 찬미’

주변 인물들을 극사실화로 표현하던 화가 안남숙의 작품세계가 변한 시점은 13년 전. “계속해서 성장하는 화가로 살고 싶다”며 미국행을 결심할 때부터, 그의 그림은 변화를 예고했다. 작업 환경의 변화는 그 어떤 요인보다 작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당시 그녀가 미국으로 활동 무대를 옮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남편의 캐나다계 사업 파트너와의 계약이 있었다. 그가 “미국에서 3년간 그린 그림 중 수작들을 선택해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오고 그 후속조치로 연봉 5억 계약을 맺으면서, 그녀의 미국 활동 조건은 완벽하게 갖춰졌다. 계약에 충실하기 위해 미국에서 쉼 없이 그림을 그려야 하는 환경이 조성된 것.

애초에 미국행을 결심했을 때, 그간의 작업을 백지상태로 돌리고 완전히 새로운 작업세계를 열어보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품었었다. 그 계획에 따라 곧바로 작품 구상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경북대학교 예술대학에 서양화로 수석입학하고 동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안 작가가 작업에서 내 디딜 수 있는 보폭은 넓었다. 그동안 집중했던 서양회화와는 조금은 결이 다른 작업을 하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자연스럽게 한국화적인 요소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미국 활동 시기에 오히려 한국화적 요소가 짙어진 배경에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극사실화를 그렸을 때 “초현실주의 아류 같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던 기억을 떠올렸고, 한국의 정체성이 묻어나는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게는 동양화와 서양화라는 구분이 의미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경계를 허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죠.”

일단은 캔버스를 버리고 화선지로 돌아섰다. 대학원에서 익숙하게 다루어왔던 재료여서 재료에 대한 실험과정은 건너뛸 수 있었다. 캔버스에서 화선지로의 변화는 물감의 변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흡수하는 성질을 가진 화선지에 서양물감은 부합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먹이나 동양화 물감이 대안이 되었다.

흔히 동양화의 양대 산맥은 수묵화와 채색화다. 수묵화는 문인들이 여기(餘技)로 그리는 먹 위주의 그림이고, 채색화는 탱화나 민화 등 화공들이 그리는 색채를 기반으로 하는 그림이다. 안 작가는 80년대 생겨난 신조어인 채묵화를 떠올렸다. 수묵 위에 채색을 겸비한 당시로서는 새로운 방식의 그림이었다.

안 작가는 채묵화를 그대로 수용하기보다 한 번 비트는 식으로 활용했다. 수묵의 재료를 쓰면서 채색에서 서양화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화선지에 먹과 채색의 혼용이었지만 멀리서 보면 유화나 아크릴화처럼 보이도록 그렸어요. 미국에서 퍼포먼스로 그런 그림을 선보였더니 ‘어떻게 얇디얇은 종이에 그렇게 힘 있는 기운을 담아낼 수 있나’며 ‘매직(magic)’이라며 감탄해마지 않았어요.”

대표작은 ‘행운의 꽃’ 연작이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을 소재로 근원적인 아름다움과 생명력, 더 나아가 꽃의 상징인 행운에 대한 염원을 담아냈다. 특히 안 작가는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아름다운 기운을 널리 세상에 퍼트리는 꽃의 삶을 인간의 삶에 비유하는데 열정을 할애한다.

그녀는 “꽃은 마지못해 피지도 않으며, 시기질투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피어난다”며 “누가 보든 보지 않든 꽃을 피우는 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믿으며 붉거나 노란 꽃들을 격정적으로 피워내며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물들인다”며 꽃 예찬론을 펼쳤다. 그러면서 “꽃은 그 자체로 행운이다.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그 기쁨이 행복으로 이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꽃이나 산 등의 자연은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들며 조화롭게 표현된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작가의 심상에서 재해석되고 재구성된 자연이 화면에서 하모니를 이룬다. 꽃의 윤곽은 일필휘지로 드라마틱하게 표현되는데, ‘장미’나 ‘백합’이라는 꽃의 정확한 형태는 부여하지 않고 그저 꽃이라는 상징성만 표현한다. “재료는 동양의 한지와 물감을 사용하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었어요. 한마디로 제 그림은 동서양의 경계를 허물며 서로 조화 상생하는 그림이죠.”

작업의 이론적 토대는 동양사상이다. 꽃에 꽃술을 그리고, 꽃 주변에는 나비를 그리는데, 그 속에는 동양의 우주관을 관통한다. 꽃이 대우주라면 꽃술은 12간지를 의미한다. 꽃술은 곧 인간의 마음에 대한 비유다. 마음 속 내기가 폭발하고, 바깥의 외기가 만나 증폭되면서 기운이 폭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저 자신(꽃)이 열정으로 행운(나비)이 날아오고, 온 세상(배경)이 아름다워지는 세상을 표현했어요.”

그녀의 우주관에는 동양 사상에서 드러나는 공존(共存)과 상생(相生)의 의미도 포함된다. 그 대표작이 ‘청산’ 연작이다. 작은 개체 속에 큰 우주를 품고 있는 형상으로 산과 나뭇잎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우주가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동양사상을 꽃과 꽃술이나 산과 나뭇잎의 관계를 통해 비유했어요. 나비가 꽃을 따지만 꽃을 헤하지 않고 더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상생조화의 관계를 인간세계에 염원했지요.”

올해는 그녀에게 경사가 겹쳤다. 청도와 서울에 새롭게 공간을 마련하고,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문인화 부문에 특선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대한민국 미술대전 비구상 부문에서 특선에 이어 날아든 또 하나의 경사다. “2년 연속 수상을 자축하는 부채전을 최근에 서울과 청도, 대구 공간에서 열었어요.”

안 작가는 경북 성주군 금수면 면장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였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미술대학에 진학하기까지 힘든 여정을 거쳐 왔다. 비록 부친의 반대가 심했어도 한 순간도 그림을 손에서 놓아 본 적은 없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고, 과감하게 미국으로 날아간 여정들은 모두 그림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그녀의 열정은 지난해 더 큰 보폭을 띠게 했다. 조선시대 3대 화가 중 한 명인 오원 장승업의 직계 3대 제자인 아천 김영철의 영정화 전수자로 선정되어 대구와 서울을 오가며 영정화에 매진하고 있다. 오원의 1대 제자는 심전 안중식과 소림 조석진, 2대 제자는 이당 김은호, 3대 제자는 아천 김영철이며 금천 안남숙은 4대 제자로 맥을 잇게 됐다.

“큰 붓과 세필은 극과 극이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을 통했죠. 수행하는 마음으로 영정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영정화는 나의 그림에 내공이 좀 더 깊어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안남숙 작가의 상설전시는 청도 안남숙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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