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팔조, 정은혜 도예전
갤러리 팔조, 정은혜 도예전
  • 황인옥
  • 승인 2021.07.26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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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은 가축, 몸은 반려동물
천진한 표정 살려 현실 풍자
“다양성 인정해야 건강한 세상”
정은혜작-연좌시위
정은혜 작 ‘연좌시위’

소와 돼지와 닭 수십 마리가 좌선하는 모습으로 시위를 하고 있다. 얼굴은 소와 돼지와 닭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몸통은 강아지의 형상과 겹쳐있다. 정은혜 작가가 흙으로 빚고 불에 구운 동물들이다. 인간의 영양 섭취나 미식의 대상이라고 상상 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럽게 표현됐다.

소와 돼지와 닭은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 인간이 사육하는 동물들이다. 하지만 축산산업의 대상으로만 인식되는 동물들이 작가에게는 인간이 사랑을 다해 키우는 강아지와 다를 바 없는 생명체로 인식된다. 작가는 육류산업의 상품으로 키워지는 동물들을 인간과 다르지 않은 생명체임을 소와 돼지와 닭의 형상을 통해 외친다.

“시위중인 동물들이 합장하고 있는 오른손은 소의 손이고, 왼손은 개의 손이다. 이런 형태를 통해 모든 생명체의 가치는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현대도예 작가 정은혜 개인전이 갤러리 팔조에서 최근 개막했다. 동물들의 좌선 시위 현장을 구현한 신작인 ‘연좌시위’와 강아지와 돼지가 몸을 기대고 누워있는 작품인 ‘뭉치와 코코’ 등을 소개하고 있다.

작가가 소나 돼지, 닭 등의 동물들을 흙을 덧붙여 입체적인 형상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대학원 재학 시절부터다. 당시 그녀는 뭉치라는 반려견을 키우기 시작했고, 뭉치와의 동거 1년이 지난 즈음에 입체적인 동물 형상들을 작업의 중심으로 가져오게 됐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한 작가가 달항아리나 차도구보다 동물 형상에 관심을 둔 것은 사회적인 발언을 하기 위함이었다. 뭉치를 키우면서 동물들을 오락이나 실험 등의 도구로 인식하는 현상들이 눈에 들어왔고, 이후 인간의 먹거리로 취급받는 동물들의 고통까지 인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술가로서 마땅히 사회적인 발언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차올랐다.

“그들도 반려견이나 반려묘처럼 생명체로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세상에 외치고 싶어졌다. “생명체가 아닌 먹거리로 취급받는 동물들의 고통에 눈감고 싶지 않았고,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동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독특하다. 그녀는 동물을 ‘놓치는 존재’와 ‘놓치고 싶지 않은 존재’로 구분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존재’는 강아지나 고양이 등 인간이 가족으로 여기는 반려동물들이며, ‘놓치는 존재’는 식품으로 전락해 사육되는 인간의 관심 밖에 놓여진 동물들이다.

이 분류법에 의해 동물들의 운명은 반려동물과 먹거리라는 극적인 대비로 치닫는다. 전자든 후자든 생명체임에 분명한데 인간에 의해 어떤 동물은 생명체가 아닌 식품으로 여기고, 어떤 동물은 가족처럼 사랑을 다해 보살핀다. 작가는 이처럼 극명하게 갈리는 동물들의 운명을 대비시키며 사람들의 의식을 건드린다. “그들도 반려동물과 다르지 않은 생명체다. 그들에게 생명체가 누리는 권리를 돌려주자”는 이야기를 ‘놓치는 존재’와 ‘놓치고 싶지 않은 존재’라는 프레임으로 말하고자 한다.

“작년에 경기도 화성에 있는 도살장을 찾았다. 트럭에 실려오는 동물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나지막히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빨리 작업해서 너희들의 상황을 변화시켜 줄께’라고”

설치작품 ‘연좌시위’는 풍자적으로 풀었다. 인간의 욕망을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유머러스한 면모도 빠트리지 않는다. 풍자적인 요소는 동물들의 형상에서 묻어난다. 평šœ 수명 15년 이상의 동물들이 소는 사육한지 2년, 돼지는 6개월, 닭은 3주 만에 도축 당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천진난만한 표정과 강아지 형상의 몸통을 겹쳐서 친근하게 표현한다.

“천진난만함 속에 비통함을 은유적으로 넣어 소통력은 높이고 메시지는 강화하려 했다.”

작품 ‘뭉치와 코코’는 보다 직설적이다. 반려견인 뭉치와 돼지나 닭이 서로 몸을 포개어 평화롭게 누워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존재’와 ‘놓치는 존재’는 인간이 만든 분류이며, 애초에 생명을 가진 동물들은 생명체로서 동일하게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똑같이 존중받아야 마땅한데, 인간의 욕망으로 어떤 생명체는 생명이 없는 것처럼 취급받는다. 이제는 욕망을 멈추어야 할 때다.”

흙을 빚어 올려서 형태를 만들고 유약을 입혀 불에 굽는 과정을 통해 작품이 제작된다. 눈동자나 입술, 동물들이 입고 있는 옷 등에서 질감과 색채가 다채롭게 부여된다. 이때 몇 차례의 굽는 과정이 추가된다. 작가는 흙이 주는 힘을 언급했다. “흙을 만지고 동물들을 만들면서 치유의 힘을 경험했다. 나의 경험들이 세상으로 퍼져 나가 우리 사회, 나아가 동물들까지 상처가 치유되기를 희망한다.”

직접 만나본 작가는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애틋함이 각별했다. 그녀 역시 성장기에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로 살았다. 한 부모 가정이라는 사실만으로 차별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쌍둥이로 태어난 작가는 쌍둥이를 별나게 바라보는 시선에도 불편함을 느껴야 했다. 우리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낮은 인식에 그녀의 성장기는 상처로 얼룩졌다.

“성장기에 편견을 경험해서 그런지 약자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온다. 동물에 이어 소외된 존재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체작품도 해 보고 싶다. 대상은 달라지겠지만 약자에 대한 편견을 타파하자는 메시지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먹거리로 취급받는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임”을 분명히 했다. 유전자 조작 옥수수 등의 사료를 먹은 사육된 동물이 인간의 식탁에 오르게 되고, 유전자 조작의 폐해는 결국 인간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구조라는 것.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외면하지 말자는 이야기와 같다는 논리였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인간의 삶도 건강해지고, 다양성을 인정할 때 우리의 삶도 풍요로워 진다. 결국 나는 동물을 통해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전시는 9월 5일까지. 문의 054-373-6802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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