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는 멈추지 않는다”
“거미는 멈추지 않는다”
  • 승인 2021.08.2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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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필자의 집에는 거미가 많다. 거미는 쉴 틈 없이 거미줄을 만든다. 감나무에도 만들고, 장미 넝쿨 가시 사이에도 만들고, 심지어 닭장의 그물 틈 사이에도 만든다. 참 대단한 녀석이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에 나가보면 어제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거미줄도 보인다. 그러면 나는 빗자루를 들고 다니며 거미줄을 걷어내기 시작한다.
내가 그럴 때마다 거미는 잽싸게 몸을 숨기거나 바닥으로 떨어지곤 한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애써 만든 자신의 집을 한 번에 와장창 허물었으니 내가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전의가 상실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일 뿐, 한나절이 지나기 전에 다시 같은 자리에 거미줄이 쳐져있다. 분명 같은 녀석의 소행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해 본다. 집요한 녀석.
인간인 나는 오기가 생긴다. 거미줄에 매달려있는 거미의 눈을 째려보며 한 번 더 거미줄을 허물어 낸다. 하지만 이런 나를 비웃듯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자리에 거미줄이 쳐져 있다. 이제는 내가 포기를 하고 만다. 그래도 마당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창가에 붙은 거미줄은 수시로 걷어낼 필요가 있다. 안 그러면 창가 너머로 보이는 자연이 그다지 예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개강 준비를 하며 책상 앞에 앉았는데 창밖으로 엉덩이에서 열심히 거미줄을 뽑고 있는 거미를 발견했다. 너무 열심히 집을 만들고 있어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설계 도면도 없고, 아니 어디서 배운 적도 없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예쁜 모양으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이내 부끄러운 감정에 사로잡힌다. 인간인 내가 살아온 삶의 태도가 미물인 그 녀석이 살아가는 태도보다 못한 것 같아서 말이다.
얼마 전 필자에겐 안 좋은 일이 하나 발생했다. 생각지도 못한 꽤 큰 금전적 손실이 발생할 사건이 하나 발생 되었다. 필자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안 그래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큰돈이 지출되어야 할 상황이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 보려고 사방팔방 쫓아다니고, 이 사람 저 사람 손을 써봤지만 끝내 일은 해결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금전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도 마음 아프지만, 일상의 안정적인 리듬이 깨져 버렸다. 열심히 해오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삶이 뒤죽박죽 되어 버렸다. 꼬박 3주간 그 일과 관련하여 에너지를 쏟았더니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친 상태가 되어 버렸다. 결과는 처음 상황 그대로 변함이 없고, 에너지 낭비만 심하게 되었다. 특히 해결 과정에서 사람에게 상처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느 한 사람에게 느낀 섭섭함, 인간적인 모욕감 등으로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일상생활이 잘되지 않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나?'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심신이 지쳐 있는 가운데 개학이 다가오니 어쩔 수 없이 강의는 준비해야 하는 터라 책상에 앉았는데 창밖 너머로 얼마 전 걷어낸 그곳에서 열심히 거미줄을 뽑아내어 집을 짓고 있는 거미를 보게 된 것이다. 때로는 거미를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는다. 거미가 보여준 '집요함'. '끈기', '일상의 반복', '그래도 다시 한번'의 정신이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게 했다. 고마운 녀석.
살다 보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 발생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넘어져 울기 바쁘다. 다친 상처를 치유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결국은 트라우마로 남아 우리 삶을 갉아먹었던 날이 많았다. 거미를 보며 참으로 부끄러움에 사로잡힌다. 사람은 부끄러운 것을 알아야 변하나 보다. 거미를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 후 힘들었던 3주간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미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오늘도 거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허물어진 집터에서 거미줄을 치고 있다. 변명하지도 않고, 좌절하지도 않고 다시 자기의 일을 해나간다.
우리도 그러해야겠다. 아니 나부터 그러해야겠다. 넘어질 순간이 오더라도, 오래 울지도 말고, 포기도 하지 말고, 넘어진 그곳에서 툭툭 털고 일어나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출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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