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무쇠달마을]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희방사역 품고 새 도약 꿈꾼다
[영주 무쇠달마을]역사 뒤안길로 사라진 희방사역 품고 새 도약 꿈꾼다
  • 배수경
  • 승인 2021.08.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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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달협동조합, 열차카라반 운영
무쇠달다방의 바리스타는 이장님
물물교환 매개 ‘무쇠솥’ 인기 명물
마을 레스토랑으로 바뀐 구판장
‘다자구야 할매’ 설화 담긴 죽령길
옛 향수 부르는 민박집도 눈길
풍기 북쪽 소백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무쇠달마을에서는 희방사 옛길과 죽령 옛길, 그리고 소백산 3자락길 등 걷기 좋은 세 개의 길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아래쪽으로 보이는 철로와 희방사역은 지난해 12월 중앙선 복선화로 폐선이 되어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역사 옆으로는 기차모양으로 줄지어 서있는 카라반이 있다.
풍기 북쪽 소백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무쇠달마을에서는 희방사 옛길과 죽령 옛길, 그리고 소백산 3자락길 등 걷기 좋은 세 개의 길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아래쪽으로 보이는 철로와 희방사역은 지난해 12월 중앙선 복선화로 폐선이 되어 이제는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역사 옆으로는 기차모양으로 줄지어 서있는 카라반이 있다.

 

2021 경상북도 마을이야기, 영주 무쇠달마을

신라 선덕여왕 12년(서기 643년) 소백산에서 도를 닦고 있던 두운 스님은 비녀가 목에 걸려 죽을 뻔한 호랑이를 구해준다. 호랑이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인지 어느날 서라벌 호장 유석의 딸을 스님의 처소 앞에 물어놓는다. 두운 스님이 크게 노해 호랑이를 꾸짖은 후 그녀를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내게 된다. 죽은 줄 알았던 딸을 되찾은 유석은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스님이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소백산 자락에 암자를 하나 짓고, 그 암자로 향하는 길에 무쇠다리를 놓았다. 그 암자가 기쁠 희(喜)자에 두운 스님이 참선하던 방을 상징하는 방(方)자를 딴 ‘희방사’라고 전해진다.

희방사로 가는 길목에 놓여진 무쇠다리가 있던 마을,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무쇠달마을이다. 무쇠다리가 무쇠달로 바뀌고 수철리가 되었다. 수철리의 옛 지명도 무쇠다리를 뜻하는 수철교(水鐵橋)리였다고 한다. 무쇠달 마을은 풍기 북쪽 소백산 자락 희방사역을 중심에 두고 자리잡고 있다. 철길이 마을을 가로질러 지나고 있는 마을에서는 세 개의 이름난 길을 만날 수 있다. 희방사 옛길과 1900년의 역사를 지닌 죽령 옛길, 그리고 소백산 12자락길 중 3자락길이 여기서 시작된다.
 

하루에 네번 희방사 역 앞에 서던 기차는 2021년 12월을 끝으로 더 이상 마을을 지나가지 않는다.
하루에 네번 희방사 역 앞에 서던 기차는 2021년 12월을 끝으로 더 이상 마을을 지나가지 않는다.

 

1942년 문을 연 희방사역은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해 5만여명의 승객이 오고 갈 정도로 활기찬 역이었으나 어느새 하루 네 번 무궁화호 기차가 서고 이용객도 몇 명뿐인 조용한 역이 되었다. 그동안 희방사역은 소백산과 가장 가까운 기차역이라 서울에서 첫차를 타고 내려온 등산객들의 발길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2011년 한국 관광의 별 생태관광자원 부문에 선정된 ‘소백산 자락길’과 우리 나라 최초의 길 문화재로 명승 제 30호로 지정된 ‘죽령 옛길’ 등 다양한 코스의 길을 따라 각자의 취향과 체력에 맞게 등산이나 트래킹을 하고 오후 서너시경 마을 식당에서 막걸리 한잔과 간단한 안주로 요기를 한 후 막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당일치기 코스는 제법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앙선 복선화로 인해 지난해 12월 이 곳을 지나는 구간이 폐선이 되면서 희방사역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된다.

무쇠달 마을은 80여가구 9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이 마을 토박이며 주로 사과농사를 짓는다. 여느 시골마을과 마찬가지로 평균 연령이 65세를 넘길 정도라 이 상태로라면 10년 정도가 지나면 마을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도 있다. 주민들은 이런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마을 기업인 ‘무쇠달협동조합’을 만들고 마을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한다.

희방사역사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무쇠달다방. 바리스타는 마을이장이다.
희방사역사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무쇠달다방. 바리스타는 마을이장이다.

 

2017년에 시작된 협동조합은 처음에는 마을 주민들만 참여했으나 지금은 풍기읍과 영주 시민들에게까지 확대를 해 현재는 45명의 조합원이 함께 하고 있다. 협동조합에서는 희방사역사 옆 열차카라반과 무쇠달마을식당, 무쇠달다방을 운영한다. 기찻길 옆에 마치 열차처럼 나란히 줄지어 선 카라반은 여행의 운치를 더해주기에 충분하다. 역사 한켠에 있는 무쇠달다방의 바리스타는 마을이장이다. 이곳은 마을주민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하고 관광객들에게는 여행안내소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은 무조건 불우이웃돕기를 한다.

무쇠달다방에 놓여있는 무쇠솥은 물물교환 장터가 된다.
무쇠달다방에 놓여있는 무쇠솥은 물물교환 장터가 된다.

 

이곳에는 재미있는 물건이 하나 눈에 띈다. 바로 장난감이나 소품 등 자질구레한 물건이 가득한 무쇠솥이다. 일종의 물물교환 장터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가되 자신의 물건 중 하나로 다시 무쇠솥을 채워놓고 가야 되는 것이 유일한 규칙이다. SNS에 인증사진을 남김으로써 내 물건의 행방을 알 수 있도록 한다. 마을을 찾은 외국인들과 어린이에게 특히 인기있는 장소다.

마을 구판장을 허물고 새로 짓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마을 식당으로 변신시켰다.
마을 구판장을 허물고 새로 짓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마을 식당으로 변신시켰다.

 

무쇠달 마을은 되도록 옛 것을 지키면서 새로운 발전 방향을 모색한다. 마을회관 앞에 있던 ‘구판장’도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마을식당으로 변신시켰다. 그곳에서는 무쇠달 돈까스, 버섯덮밥, 산채 비빔밥 등 마을에서 나는 신선한 재료로 마련한 식사를 맛볼 수 있다.

오래 전 역에서 내려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객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을 민박집은 간판만 남아있다.
오래 전 역에서 내려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객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을 민박집은 간판만 남아있다.

오래 전 역에서 내려 낯선 곳에 도착한 여행객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을 민박집에는 ‘매운탕· 민박·담배’라고 쓰인 작은 낡은 간판만이 남아 있다. 벽면에 그려진 달과 고양이 그림은 마을을 찾는 이들의 단골 포토존이 된다.

새롭게 지은 마을회관은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하다고 자부한다. 1층은 어르신들이 쓰시기 편하게 경로당으로 사용하고 2층은 편백나무로 실내를 꾸미고 게스트하우스로 이용을 한다. 게스트하우스 청소 등 관리는 부녀회에서 맡고 수익금으로 어르신들께 식사를 대접한다.

군데 군데 소박한 벽화가 눈에 띄고 야생화가 가득한 정겨운 골목길이 인상적인 무쇠달 마을은 2019년 농협에서 주최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촌마을 가꾸기 경진대회’에서 전국 400여개 마을이 참가한 가운데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5월 말 열리는 소백산 철쭉제기간에는 수철리 야생화축제를 연다. 축제 때는 산골음악회와 디퓨져 만들기, 에코백 체험, 양초, 야생화 쿠키만들기 등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해 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철길로 인해 생긴  굴다리를 지나가면 무쇠다리옛터가 나온다
철길로 인해 생긴 굴다리를 지나가면 무쇠다리옛터가 나온다

 

시원스럽게 흐르는 희방천을 따라가다보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굴다리가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면 마을의 유래가 담긴 무쇠다리 옛 터로 갈 수 있다. 굴다리 아래 터널은 원래는 반은 사람이, 반은 물이 지나는 길이었으나 지금은 조명도 달고 차도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철길로 인해 마을이 둘로 나눠지면서 건너편에 있는 농지를 가려면 큰 길로 빙 둘러서 가야했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서 마을의 옛 모습을 담은 사진전시회도 가졌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는 무쇠다리는 지금은 1m남짓한 자그마한 다리모양으로만 남아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되는 무쇠다리는 사라지고 지금은 1m남짓한 자그마한 다리모양으로만 남아있다.

 

굴다리를 지나면 왼쪽에 아름드리 고목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무쇠다리 쉼터가 나온다. 무쇠 다리가 있던 자리는 철도가 놓이며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지금은 예전의 다리를 재현한 1m 남짓한 자그마한 다리가 놓여있을 뿐이다.

희방천 위를 지나가는 '다자구야 다리','들자구야 다리' 같은 다리지만 걸어가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희방천 위를 지나가는 '다자구야 다리','들자구야 다리' 같은 다리지만 걸어가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죽령은 오랜 세월동안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관문 역할을 했다. 이번에는 꼭 급제하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과거길에 오른 선비도, 봇짐을 멘 보부상들도 모두 이 길을 지나가야만 했다. 지나가던 과객들은 죽령의 주막에서 하룻밤을 유하기도 했을 것이다. 산세가 깊고 험해 산적도 많이 출몰했다고 한다. 산자락 굽이굽이 쌓인 사연들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산적에게 아들을 잃은 ‘다자구야 들자구야’ 할머니 설화도 그 중 한가지다. 산적들이 다 자면 ‘다자구야’, 아직 깨어있으면 ‘들자구야’라고 말하기로 관군과 짜고 아들을 찾는 척하며 산적들의 소굴로 들어간 할머니의 기지로 관군들은 산적을 소탕할 수 있었다. 이런 옛 이야기를 바탕으로 마을 위쪽 희방천 위에 새로 놓은 나무다리 이름은 ‘다자구야 다리’,‘들자구야 다리’라 부른다. 다리는 하나지만 걸어가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다리 중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면 ‘다자구야’‘들자구야’라고 인사를 나눠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동안은 산속 마을이지만 기차역이 바로 앞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던 마을은 코로나로 인해 1차 위기를 겪고 최근 철로가 폐선이 되면서 또다시 2차 위기를 만나게 된다.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와 역사를 이용해 관광객들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해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 중이다.

김교윤·배수경기자

 

<우리 마을은>

여광웅 이장
여광웅 이장

 

여광웅 이장 
 
"희방사역이 문을 닫으며 이제는 정말 산골마을이 되었지만 어떻게 하면 활기찬 마을로 거듭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풍기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부터 타지에서 생활했던 여광웅 이장(53)은 22년전 이곳으로 내려왔다. 처음에는 그냥 좀 쉴 생각으로 내려왔지만 아예 정착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7년째  이장을 맡고 있는 그는 1인 3,4역을 하느라 늘 바쁘다. 무쇠달 다방에서는 바리스타로, 요즘은 사흘에 한번 마을 방역도 직접 한다. 

그는 마을이 가진 지리적, 역사적 자산에 집중한다. "옛날 과거를 보러다니던 죽령 옛길은 단순히 걷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이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 중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정승도 있었을거예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발굴해서 과거길, 장원급제길 등 다양하게 스토리텔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마을 곳곳에 보이던 장승에도 QR코드를 넣어 길을 걷는 관광객들이 마을의 유래에 대해서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기차가 서지 않게 되면서 이 마을에 꼭 와야되는 이유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폐역과 철길 주변에 소상공인과 개인공방을 초대해 희방사역 플리마켓을 열면 어떨까 구상중이다.

"코로나가 끝난 이후를 지금부터 미리 준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지요." 
이를 위해 틈만 나면 마을 주민들과 함께 요즘의 관광트렌드에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가볼만한 곳>

희방폭포
희방폭포

희방폭포

무쇠달 마을의 유래와도 관련이 있는 희방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 되었다.  희방사로 오르는 길에 만나게 되는 희방폭포는 해발 700m에 자리잡고 있으며 영남 제 1폭포로 손꼽힌다.

물 낙차가 무려 28m로 소백산 연화봉에서 시작된 물길이 울창한 숲속 절벽 아래로 시원스럽게 떨어진다. 조선시대 학자 서거정이 '천혜몽유처(天惠夢遊處), 꿈속에서 노니는 천혜의 곳'이라고 극찬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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