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음식 세계로] (30) 삼계탕, 동북공정에도 세계는 ‘한국 치킨 수프’라 한다
[대구음식 세계로] (30) 삼계탕, 동북공정에도 세계는 ‘한국 치킨 수프’라 한다
  • 김종현
  • 승인 2021.09.0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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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름철 보양식
동양의학 ‘열은 열로 다스린다’
독성 제거·나쁜 기운 배출 효과
동의보감 ‘오골계수닭탕’ 기록
중국선 겨울철 강장제로 섭취
한반도의 인삼
BC 2070년 전후 자생 추측
진평왕 때 입조했다던 기록
신라, 752년 日에 약재 전달/韓·中 문헌서 다양한 흔적
치킨수프
치킨수프. 세계인의 소울푸드(soul food)인 삼계탕이다.
그림 이대영

한반도에서 인삼의 자생은 BC 2070년 전후였던 삼황오제 때로 소급된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기원전 100년 이전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양나라 ‘남조도사(南朝道士)’라는 별칭을 가졌던 도홍경(陶弘景, 456~ 536)이 쓴 ‘명의별록(名醫別錄)’에서 “삼(蔘)은 백제(百濟)산을 소중히 여기는데 외형상 가늘고 단단하며 희다. 기운과 맛은 상당(上黨)산보다 박하다. 다음으로는 고려(高麗)산을 쓰는데 고려는 바로 요동이다. 외형은 크며 허하고 연해 백제산보다 못하다. 실제로 쓰기에는 모두가 상당산만 못하다.”라고 기록되었다.

사실 상당삼은 중국고전의서에서 살펴보면 인삼이 아니라 만삼(蔓蔘)이었다. 만삼을 일명 당삼(黨蔘), 혹은 양유(羊乳)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처럼 무조건 삼이라고 하지 않고, 현삼(玄蔘, 심회초 혹은 능소초), 고삼(苦蔘, 너삼), 단삼(丹蔘, 奔馬草), 사삼(沙蔘, 잔대) 및 인삼(人蔘)으로 세분했다.

한반도 인삼이 중국왕실과 귀족들에게 귀중한 약제로 사용되었다. 신당서(新唐書)에 621(진평왕43)년 7월에 사신을 파견하여 당나라에 입조했다는 기록이 있고, 구당서(舊唐書)에서 따르면 입당 때 신라방물로 금, 은, 조하주, 인삼 등을 진공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新羅本紀)에 “왕은 사신을 대 당나라 고조에게 방물로 조공을 했다(王遣使大唐朝貢方物).”는 기록이 있다. 뒤이어 723(성덕왕22)년 4월에 사신을 파견하여 당 조정에 들어 올 때에 우황, 인삼, 조하주, 금, 은 등을 진공했다. 당나라 빈공과에 장원급제해 당나라 고급관리를 지냈던 최치원(崔致遠, 857~900)의 ‘계원필경(桂園筆耕)’에선 생일날 상관에게 진상했던 물목(獻生日物狀)에 신라방물인 인삼이 들어있었다. 이는 우리나라의 인삼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이어 신라가 일본에 수출했던 752년 물목(買新羅物解)에서도 60여종의 약제가 일본(동대사정창원)에 전달되었는데 그 가운데 인삼이 기록되어 있다. 인삼사(人蔘史)에 대해서는 1934년부터 1940년까지 조선총독부 전매국의 지원으로 일본인 경찰서장 출신이며 민속학자였던 이마무라 토모(いまむら とも 1870~1943)가 펴낸 7권의 연구총서를 참고할 수 있다.

중국 문헌으로 우리나라의 인삼이 나오는 기록으로는 도홍경의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注)’와 ‘명의별록(名醫別錄)’이 있다. 양나라 역사서 ‘양서((梁書)’ 본기(本紀)에서도 무제시대(武帝時代) 백제의 인삼, 수(隋, 581~619)나라 관정(灌頂)이 편찬한 ‘국청백록(國淸百錄)’ 혹은 ‘국정백록(國定百錄)’, 660년경 장초금(張楚金, 출생미상~689)이 저술한 ‘한원(翰苑)’의 고려기(高麗記), 송나라 서긍(徐兢, 1091~1153)이 1123년 그렸다는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인삼에 관한 많은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성덕왕, 소성왕, 경문왕 때에 당나라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인삼을 진공한 기록이 있다. 799(소성왕1)년 7월 기록엔 “길이가 9척이나 되는 거대한 인삼을 발견해 너무 신기해서 당나라에 진상을 했더니 덕종이 인삼이 아니라고 반납했다.” 당 숙종(肅宗) 때에 이순(李珣, 855~930)이 지은 ‘해약본초(海藥本草)에 고려인삼이 나온다.

◇코리아(Korea)란 고려인삼(Korea Ginseng)에서

KBS 방송국 대하드라마 ‘태조왕건’ 193회 왕건이 견훤(甄萱)의 아버지 아자개(阿玆蓋)에게 박술희(朴述熙)를 통해 서찰을 보냈다. 마침 그 어른은 와병중에 있었고 아들 견훤이 500년 묵은 산삼을 보냈었다. 그런데 왕건은 박술희를 통해서 천년 묵은 산삼을 보냈다. 그 천종산삼(天種山蔘)을 삶아 먹고 기운을 회복하자말자 아자개는 왕건을 찾아갔고 알현했다. 당시 동양에서 특히 산삼은 신이 내리는 영험한 약초(仙藥)였다.

6·25전쟁 이후에도 어른들로부터 “산삼은 산신령님이 효성이나 치성이 지극해야 점지해 준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어린아이들은 “누구는 산삼 먹고, 너는 인삼 먹으며, 나는 무 먹었다.”라는 말을 했다. 어른들도 빠닥빠닥하게 힘깨나 쓰는 사람을 보고 “산삼 먹은 놈의 물건 같다.”고 표현했다.

인삼(人蔘, ginseng)을 영어로 ‘진셍(ginseng)’이라고 하는데 어원을 살펴보면, 중국 복건성(福建省), 대만, 홍콩, 마카오 등에서 사용한 민남어(Hokkien Chinese)의 ‘진심(人蔘, jin-sim)’이란 말에서 기원했다. 중국어 표준어(普通話)로는 런센(人蔘), 런(人, person)과 선(蔘, plant root)으로 발음을 했는데 이런 표기는 식물뿌리가 사람모양을 닮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

식물분류학 종명(botanical genus name)은 라틴어로 ‘파나세아(panacea)’로 의미는 ‘만병통치(all-healing)’다. 이렇게 표기를 한 린네우스(Carl Linnaeus)는 중국의학에서 ‘근육이완 등’에 통용되는 약이라는 점을 의식했다. AD 196년 중국 최초약물학술서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 Shen Nong Pharmacopoeia)’에 약초로 인삼이 최초로 기록돼 있었다. 1596년 이시진(李時進)의 ‘본초강목에서 우수한 강장제(有病治病,superior tonic)”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인삼전매사업은 1606(선조39)년부터인데 호조삼상(戶曹蔘商)에서 허가된 상인 전인(廛人)으로 인삼무역에 종사하게 했다. 1686(숙종12)년 금삼사목(禁蔘事目)이란 규정을 정해 엄격하게 밀무역을 규제했다. 1797(정조21)년 인삼절목(人蔘節目)을 반포해 인삼경작(人蔘耕作) 등에 일반규칙을 제정했다. 1810년에 개성(開城)에다 홍삼생산과 수출을 위한 증포소(蒸包所)를 설치했다. 1876(고종13)년 개항이후 1894년 개혁조치로 포삼규칙(包蔘規則)을 국법으로 제정했다. 그 업무는 탁지부(度支部)에서 관장했다. 종삼회사(種蔘會社)까지 설립해 전매관리를 했다가 갑오내각으로 인해 붕괴되었다. 1898년 이용익(李容翊)의 인삼정책으로 왕실재정확충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1899년 8월에 농상공부(農商工部)에 삼정사(蔘政社)를 설립 운영했다. 1910년 10월 조선총독부는 전매국을 설치해 담배, 소금, 인삼, 아편, 마약류를 전매사업으로 하면서 재정원천을 장악했다.

◇세계인의 소울푸드, 삼계탕

삼계탕의 기원이 중국일까? 천만에. ‘실체적 지성으로 세계에 승리(リアルな 知性で 世界に勝つ)’를 슬로건으로 하는 일본잡지사 제이피 프레스(Japan Business Press)에 2021년 4월 2일 다나카 미란(田中美蘭)이 “삼계탕이 중국기원이라는 데 격노한 한국인의 반중감정”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이 있다. “중국 바이두(百度百科) 사이트에는 ‘삼계탕은 중국에서 옛날부터 전승된 광동요리였는데 한국에 전해지면서 한국요리로 자리잡았다’고 돼 있다”고 했다.

또 김치, 한복, 삼계탕 등을 같은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보고 있다며, 320억 원이나 들여서 제작한 ‘조선구마사(朝鮮驅魔師)’까지 도중하차시킴은 뒷맛이 개운치 않다고 중국지원 사격을 했다. 다행히도 오늘 현재까지 자유백과(自由百科)와 위키완드(Wikiwand)에서는 “한반도 전통적인 유명요리 가운데 하나로, 어린 닭을 골라서 뱃속에 찹쌀 이외에도 붉은 대초, 생강, 약쑥과 인삼을 넣고, 장시간 푹 고아서 만든다. 먹을 때에 파 송송, 소금과 고춧가루를 솔솔 쳐서 먹는다.”고 첫머리를 소개하고 있다.

사실, 세계인이 가장 즐겨 찾는 영문 위키페디아(Wikipedia) 검색사이트 ‘치킨수프’에서는 ‘삼계탕, 한국 닭고기 수프(Samgyetang, a Korean chicken soup)’라고 재료와 효능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닭백숙까지 곁들여 안내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은 삼계탕 먹는 시기(절후)가 다르다. 중국은 겨울철에 다양한 약재를 넣고 강장제로 먹는 반면 한국에서는 삼복더위 때 발한을 통해 체내 안 좋은 걸 배설하도록 먹었다는 데 차이가 있다. 신농본초경에서 닭고기를 섭취하면 “정신이 맑게 뚫린다(通神).”고 했으며, 후대의 의학자들도 “닭고기를 먹으로써 사람들이 총명하고 지혜로워졌다(食之令人聰慧).”고 적었다.

우리나라는 삼복더위를 잘 이겨냄으로써 여름철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가졌다. 더위를 이기고자 복달임(烹伏暑者)이라는 음식을 먹었다. 동양의학의 2대 비결인 i) 열(더위)을 열(더움)로 다스리기(以熱治熱)와 ii) 독을 다른 독성물질로 제거(以毒除毒)하는 묘수를 찾았다. 1613년에 관찬된 동의보감에서도 오골계수탉탕(烏雄鷄湯)의 효과를 “독성을 제거하고, 배와 마음속 나쁜 기운을 배출한다(無毒, 除心腹惡氣).”로 봤다. 국왕이나 대신들은 용봉탕(龍鳳湯, 물고기+ 닭), 양반들은 민어탕(民魚湯), 일반서민들은 개장국(狗醬)을 먹거나 그것도 못 먹은 사람들은 계삼탕(鷄參湯) 혹은 팥죽으로 복달임을 했다.

조선 정조(正祖) 때 1849년 홍석모(洪錫謨, 1781~1857)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엔 “개장국을 먹음으로서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쳐 허함을 보신했다”고, 농가월령가에서도 “황구의 고기가 사람을 보한다.”고 노래했다. 개장국을 못 먹는 사람들은 계삼탕으로 삼복더위를 이겨내었다. 복날 개장국은 사마천의 사기에 BC 677년에 복날 제사를 지내고, 성내 개를 잡아 충재를 막았다(殺狗四門, 以御蟲災)는 기록에 나온다. 이를 계기로 이후 복날 개잡는 풍습이 행해졌다. 또한 붉은 팥으로 죽을 써서 무더운 복중에 팥죽을 먹음으로써 악귀를 아 건강을 유지했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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