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디자인 기행] 흙의 무한 변주, 만질 때마다 달라지는 결과물, 그래서 특별하답니다
[일상 속 디자인 기행] 흙의 무한 변주, 만질 때마다 달라지는 결과물, 그래서 특별하답니다
  • 류지희
  • 승인 2021.09.0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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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말고 재활용
색안료 섞인 흙은 재사용 못해
굳기 전 귀걸이·트레이로 제작
의도하지 않는 색상 신비로워
올해 3월 18일부터 8월 22일까지 6개월 동안 전시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인스에서 이헌정 작가의 '흙의 일상(Daily Life Clay)' 기획전시 모습.
올해 3월 18일부터 8월 22일까지 6개월 동안 전시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인스에서 이헌정 작가의 '흙의 일상(Daily Life Clay)' 기획전시 모습.

 

디지털화니 뭐니 해도 여전히 전 세계의 3분의 1의 사람들이 흙으로 집을 짓고, 흙집에 살고 있다. 이는 제3세계나 아프리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4대 문명의 발상지로 여행을 다녀보면 그 나라의 기후와 문화, 사회적인 환경이 흙이라는 매개체 속에 녹아들어 인류와 함께 역사를 살아오고 있음을 알 수있다.

신재생 소재들과 같이 미래와 현재를 대체할 만한 혁신적인 소재들도 많지만, 흙이 지니고 있는 그 자체의 고유한 매력과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 과거 10년 전 까지만해도 동네 놀이터에는 흙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 양동이에 물을 싣어날라 흙에다 붓고 조물조물 섞어서 흙집을 지었다. 흙그릇을 만들어 친구들과 소꿉놀이도 펼치곤 했다. 주변에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꺽어 데코레이션을 하고, 모래밭에 흘리고간 장난감 총알들이나 소품들을 주워모아 데코레이션을 하며 상상력을 기르고 오감놀이를 했다. 우리는 그렇게 놀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너무나 힘들어졌다. 아니 거의 없다. 대형마트 어린이 코너에 가면 판매하는 인공흙놀이 장난감으로 정서를 대신한다. 그것 마저도 집안 한 켠에 마련된 작은 공간에서 혼자 혹은 한 두명의 친구들과 노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요즘의 아이들은 과연 우리가 흙이라는 소재를 떠올리면 드는 친근하고 따스하고 감성을 느낄 수 있을까.
 

이헌정 작품 ‘아트 퍼니처’
전통적 방식으로 도자기 제작
흙과 불 만나 발생하는 우연성
날 것 그대로 작업에 적극 반영

올해 3월 ‘흙의 일상’이라는 타이틀로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인스에서 이헌정 작가의 기획 전시가 오픈되었다. 지난 22일자로 폐막을 앞두고 전시를 찾은 필자는 펑소 관심을 두고 있던 나무나 흙과 같은 친환경 소재를 매우 흥미롭게 접하고 왔다. 본 전시는 인류 문명의 시작부터 일상생활에 널리 활용되었던 흙을 가지고 일상의 풍경을 구현하고 있었다. 다양한 예술의 영역을 오가는 작가의 즉흥과 상상이 풍경에 더해져 흙의 무한 변주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였다.

이헌정작가-흙의일상
이헌정 작가의 ‘흙의 일상’ 전시물 중 흙의 특성을 매력적으로 활용한 도자기 작품.

그 중에서도 특히 조각이면서 동시에 실용적인 기능을 갖춘 아트 퍼니처(Art Furniture)작업이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흘러내린 듯한 유약의 흔적, 매끈하면서도 어딘가 투박해보이는 벌어진 틈이 그의 작품 특징이다. 가마를 이용한 전통 방식으로 도자를 굽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생기는 우연적인 요소들이 작품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듯 하다. 자유롭고 유기적인 작가만의 감성이 느껴진다. 백토로 제작된 도자기 작품도 있었지만, 사이즈가 큰 조각품인 인물상과 동물상은 마치 동굴속 종유석들에 색색의 물감이 뿌려져 흘러내리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흙이 가지고 있는 유기적인 특성도 뜨거운 열이 가해지면 굳혀진다. 이를 유약의 흘러내림 형상으로 보완하여 매력을 살렸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전시장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 속 여러 곳에서 이런 작품들을 자주 만나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귀걸이디자인
펀딩사이트에서 젊은 세대층에 사랑을 받고 있는 귀걸이 디자인이다.

지난해, 한 펀딩사이트에서 신규브랜드 런칭을 통해 알려진 리사이클링 도자기 악세서리도 인기다. 2020 펜톤컬러 도자기귀걸이 프로젝트는 작업을 하다가 남게되는 흙을 재사용하여 만든 트랜디하고 착한 친황경디자인이다. 이때 사용한 흙은 색 안료를 배합하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재사용이 불가능하다. 즉 폐기물이 되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워 버려진 흑 조각을 마르기 전에 다시 반죽하여 마블링 도자기귀걸이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해가 진 하늘 어스름을 표현한 귀걸이 ‘클래식 블루’(Classic Blue)는 안정적인 질감과 감각적인 펜톤컬러 색감으로 희소성을 추구하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디자인제품이다. 반죽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마블링의 무늬는 어느 것 하나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각각이 비슷한 듯하면서도 오묘하게 다른 모습을 가진다. 심지어 양쪽 귀걸이의 무늬도 짝짝이로 착용하게 되지만 그 것이 되려 매력적인 요소 사랑받고 있다.
 

플레이트도자기디자인
흙을 전통적인 것으로부터 재해석해 현대적인 디자인으로 제작한 플레이트 도자기.
 

인테리어 마감재로 사용
감성 촉진시키고 심신 치유
분위기 있는 공간 연출에 딱
시각·후각적 감각까지 터치

비슷한 사례로 펀딩사이트에서 후원진행 중인 ‘파인애플 플레이트’도 마찬가지다. 공방에서 원데이클레스가 끝나고 난 다음 수업에는 사용할 수 없는 여러 색이 섞인 흙들이 200kg씩 쌓여있다고 한다. 이를 접시로 만들어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킨 오브제타입의 플레이트이다. 의도 하지 않는 여러 색감들로 섞여 만들어진 마블링이 너무 예뻐 음식을 올려놓기 아깝기까지 하다.

소소한 악세사리와 제품, 조형 뿐만 아니라 인테리어공간에도 흙의 천연기능을 접목시킨 디자인이 있다. 황토와 흙에 허브를 첨가하여 만들어진 천연 원료이다. 일명 흙마감재는 일반 콘트리트 환경에서 자라난 요즘 아이들의 정서와 건강에 유용한 기능으로 사람의 감성을 촉진하고, 부드러운 촉감으로 심신의 치유효과가 있다. 빈티지풍의 시멘트소재가 트랜드인 현대적인 감성을 반영하여 거칠고 독특한 표면질감을 연출할 수 있도록 디자인시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짙은 황토색감과 베이지톤의 밝은 흙색의 자연스러운 색상이 갤러리 공간의 분위기와 예술성을 구현시킬 수 있어 매력적인 벽면마감재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미장 흙손이나 톱날 흙손, 스크래퍼 등으로 하나하나 표면의 질감을 수작업으로 시공진행하여 건조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자연스러운 흙의 균열이 예술성을 담게 된다. 건조된 후에는 은은한 향이 베어나와 시각적뿐만이 아니라 후각적인 감각까지도 디자인되어 진다.

이렇듯 흙과 나무의 감성을 빌어 우리 삶에 실용성과 정서를 더해주는 디자인은 대량생산품에 질들여져 실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는 즐거움의 요소가 되고 있다. 삶의 익숙한 요소들이지만 작가와 디자이너의 손으로부터 전혀 새로운 것들이 탄생된다. 상상력과 실험성으로 완성된 작품들은 때로는 향수에 젖는 감수성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초현실적인 광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우리는 그 것들로 하여금 조형, 제품, 건축, 공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소재에는 그 시대 문화와 환경이 반영되어 있어 있으며, 오랜시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흙과 나무는 우리네 사람역시 자연의 일부분으로써 함께 살아숨쉬고 공존함을 느끼는 긴밀함 연대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류지희 <디자이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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