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것들의 귀환, 누군가의 20대가 온다
오래된 것들의 귀환, 누군가의 20대가 온다
  • 승인 2021.09.13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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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경 한국애드 대표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20대 사진 올리기가 페이스북을 휩쓸었다. 그리 가깝지 않은 사이라도 20대 사진의 풋풋함을 보면 자연스럽게 '좋아요'를 누른다. 복잡한 오늘의 이야기 대신 풋풋하던 그 시절의 사진 덕분에 올린 이도 보는 이도 잠시 추억에 잠기는 여유가 생겼다. 혹자는 누군가의 20대 사진은 그 사람의 현재 배경이나 사상, 사회적 지위, 관계 등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그를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때문에 생각이 다르고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흔쾌히 '좋아요'를 누르거나 입에 발린 칭찬 한마디를 서슴없이 남길 수 있다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관대함을 불러오는 누군가의 리즈시절, 20대 사진의 힘이다.

세기말을 이끌었던 Y2K 감성도 다시 소환됐다. 몇 해 전 40~50대가 1970년대 문화에 열광하며 시작된 '뉴트로(Newtro; new와 retro의 합성어)'에 MZ세대의 추억이 더해졌다. 바로 Y2K의 귀환이다. 2000년대는 MZ세대가 '직접 경험'한 시절이다. 각종 미디어에서는 2000년대를 맹렬히 재활용하고 있다. 음원차트를 뒤집은 MBC <놀면 뭐하니?>의 MSG 워너비가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지형도도 바뀌었다. 종방한 지 오래인 <무한도전>과 <거침없이 하이킥>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EBS <딩동댕 유치원>의 성장 버전인 <딩동댕 대학>이 딩동댕 유치원을 보고 자란 20대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식음료 시장도 빠르게 추억에 응답하고 있다. 2019년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 출시로 시작된 식음료 시장의 뉴트로는 '할매니얼(밀레니얼 세대와 할매 입맛을 합친 말)'로 진화했다. 2000년대 상품들이 이 옛 옷을 그대로 입고 등장한 데 이어 소위 할매 입맛으로 알려진 검은깨, 쑥, 인절미 등을 활용한 제품도 출시됐다. 쫀드기, 달고나, 뻥튀기가 다시 판매대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통 먹거리를 재해석한 아이스크림도 등장했다. '소 한 마리를 살렸다'는 카피로 재소환된 조미료 '미원'도 다시 한번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패션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때 유행했던 벨벳 트레이닝복이 재소환되어 인플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을 장식하고, 서태지와 아이들로 대표된 브랜드이자 송승헌, 소지섭을 완성시킨 '스톰'도 리런칭 준비를 하고 있다. 청청패션의 대표 주자 Lee는 16년 만에 귀한 해 홍대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오픈했고, '부자가 함께 입는 리(Lee)티셔츠'는 이미 40만 장이 판매됐다. 이렇게 패션업계에서는 2000년대를 풍미했던 브랜드들의 라이센스 재계약이 이어지고 있으며 새로운 제품으로 MZ의 마음을 겨냥했다.

IT업계도 빠지지 않는다. 2000년대 초반 국민 SNS라 불렸던 '싸이월드'가 부활을 예고했다. 새로 시작할 '싸이월드Z'는 과거 데이터의 복구 작업을 마치고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탈바꿈을 시작했다. 그시절 대표 아이템 '도토리'는 암호화폐로 대체될 예정이다. 2012년 서비스를 종료했던 국민 메신저 '버디버디'도 재오픈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당시 버디버디의 주 이용자였던 중고생들이 30~40대로 성장해 이미 카카오톡의 주 이용자가 된 상황에서 버디버디의 승부수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이렇게, 산업 전반을 휩쓸고 있는 누군가의 20대를 소재로 한 '뉴트로 마케팅'의 본질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의 공유다. 하지만 단순히 과거의 경험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로웬덜은 '과거는 외국이다(The Past is the Foreign Country)'라고 했다. 가보지 않은 외국은 동경의 대상이고, 가본 외국의 경험은 새로운 추억이다. 결국은 경험에 대한 동경과 기억이 가치가 된다는 말이다. 게다가 우리는 구글과 유튜브 덕분에 수많은 과거의 흔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가 경험한 과거가 고스란히 구글과 유튜브 안에 남아있어 경험을 기억하기는 쉽다는 말이다. '뉴트로(newtro)'에서 '레트로(retro)'가 아니라 '뉴(new)'에 더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쉽게 소구되는 과거는 생명이 짧다. 때문에 뉴트로는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이어야 한다. 앞뒤 재지 않는 현재의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과거의 흔적이자 새로운 과거가 바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뉴트로의 본질이다. 과거의 영화로움을 그대로 가져와 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공감을 입어야 진정한 뉴트로가 된다. 오늘의 나이 듦으로 그의 20대가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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