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일생의 연인’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일생의 연인’
  • 승인 2021.09.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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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리스토리 결혼정보회사 대표 교육학 박사
'20대에는 서로 좋아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 실망하며 살고, 40대에는 서로 체념하며 살고, 50대에는 서로 가여워서 살고, 60대에는 서로 없어서는 안돼서 살고, 70대에는 서로 고마워서 산다.'라는 말이 있다. 아흔이 넘은 부모님의 일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이제는 서로 측은지심으로 사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에 부모님이 다투시던 기억이 난다.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시고 사람을 좋아하셨다. 가끔씩 늦은 밤에 동료들과 함께 불시 방문을 해서 술상을 차리게 해 엄마를 당혹스럽게 했다. 다음날, 부부싸움으로 집안 분위기는 냉랭했고, 우리 사 남매는 부모님 눈치 보기에 바빴다. 아버지는 미안함을 보상이라도 하듯 일주일은 제시간에 퇴근하셨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던가.' 아버지의 밥상에는 흰쌀밥에 계란찜과 생선구이 한 마리가 올랐다. 때로는 금슬 좋은 부부로, 때로는 금방이라도 사단이 날 듯한 부부싸움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했던 부모님의 젊은 날이었다.

두 분은 서로의 가치관이나 사고가 많이 달랐다. 아버지는 낙천적이고, 이상적이셨다. TV에서 불쌍한 아이를 보면, 전화해서 후원도 하시고, 이웃에 형편이 어려운 노인이 있으면 돼지고기라도 몇 근 사서 건네주신다. 엄마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재산 없이 교직자의 아내로 근검절약하며 자식 넷을 대학까지 보내셨다. 생활력이 강하고 검소함이 몸에 배셨다. 어릴 때 엄마 따라 시장에 가면 몇 푼 되지도 않는 야채 가격까지 흥정을 하시곤 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엄마가 현실적이고 알뜰형이라면, 아버지는 이상적이고 경제관념이 약했다. 음식의 취향도 두 분이 너무 다르다. 엄마는 기름기 없는 담백한 살코기를 좋아하신다. 반면에 아버지는 지방질이 있는 육류를 좋아하신다. 생선도 어두육미라 하시면서 대가리와 꼬리 부분을 드신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고기나 생선의 맛난 부분을 모른다며 혀를 차신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된 부모님은 서로를 아끼며 챙기시기에 바쁘다. 노년의 부부는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헤아린다. 언제부터인가 엄마의 잔소리가 사라지고 아버지의 엄마에 대한 불평이 사라졌다.

얼마 전에 평소에 서로 존중하며 지내던 지인과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되었다. 서로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던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떠났다. 자연 속에서 힐링하고 맛난 거 먹고 예쁜 카페에서 여자들끼리 편하게 수다나 떨고 올 계획이었다. 현지에서 모든 것을 조달하는 것이 평소 나의 여행 스타일이었다. 일정을 조율하느라 계산을 해보니 점심식사 시간이 맞지 않아 군고구마와 떡, 간단한 과일을 챙겼다. 상대를 배려한답시고 안하던 짓을 궁상맞게 한 것이다. 한 끼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대로 챙겨 먹고 조식과 석식을 대체로 간단히 해결하는 나의 식습관 탓도 있다. 아뿔싸, 그녀는 삼시 세 끼를 제때에 챙겨 먹는 스타일이었고, 간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간식을 식사 대신 준비한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당황했다. 버킷리스트로 매월 여행을 가기 위해 홈쇼핑에서 저렴한 호캉스 티켓을 대량으로 구입한 것이 또 실수였다. 2박3일의 일정이라 호텔에서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숙박은 청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또 서로 달랐다. 그녀는 오랜만의 여행이라 최상의 멋진 여행을 기대했으리라. 가격 대비 호텔이 노후가 되어서 실망을 한 것이다. 미리 숙박에 대한 인포메이션을 그녀에게 준 여행이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떠난 것이었다.
결국 남은 하루 일정의 호텔을 바꾸고, 소주 한잔하면서 속내를 털며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첫날은 내 스케줄대로, 다음날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일정을 잡았다. 같은 또래의 여성이지만, 음식 취향도 생각도 서로 달랐다. 새로운 경험과 다양한 생각을 우리는 이해하고 서로 인정했다. 참 아름다운 경험이었고, 상대를 배려하는 시간들의 소중함이었다. 서로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여행이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삶의 내공에서 터득하는 지혜와 넓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아량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물며 칠십 년을 같이 지낸 부부는 얼마나 많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며 여기까지 왔을까. 며칠 전, 아버지의 말씀에 가슴이 먹먹했다. "요즘 엄마가 자주 아프고 해서 내가 위기의식을 느껴, 너희 엄마가 먼저 가면 어떻게 살까."
그렇게 담대했던 아버지의 의연한 자태는 사라지고, 백발 성성한 구순 노인이 눈시울을 붉히는 모습에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부모님은 이제 일생의 마지막 연인으로 서로의 눈이 되고 날개가 되는 전설의 새 아름다운 비익조 인지도 모른다. 가을이 더 깊어가기 전에 부모님을 모시고 제주도로 멋진 호캉스 여행을 계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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