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겸손하십니까
당신은 겸손하십니까
  • 여인호
  • 승인 2021.09.27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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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김영호 이리 나와. 훈련 중에 왜 자꾸 실실 웃는 거야.”대구교대 1학년 때 RNTC(학군하사관 후보생) 군사 훈련을 받던 중에 지금은 고인이 된 교관에게 지적을 받은 것입니다. 그 교관은 영호가 건방지다며 교대를 졸업할 때까지 알게 모르게 부담을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영호는 웃지 않았습니다.

“너, 이리 나와. 훈련 태도가 불량하다. 내일 아침까지 반성문 20장 써서 제출해.” 대구교대 1학년 여름방학 때 50사단에서 RNTC 병영훈련을 받던 중에 소대장이 한 말입니다. 밤새워 16절 시험지 20장에 반성문 겸 소설을 써서 제출하니, 몇 장 읽어보다가 안마를 하라는 것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 맹세코 영호는 설렁설렁 훈련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영호 선생님은 장교 출신도 아니면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다니네.” 1999년 교대부초에 전입했을 때 선배 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모두가 바쁜 교대부초에서 막 전입한 교사가 조금은 느긋하면서도 빳빳하게 걷는 게 보기 불편했었나 봅니다. 다른 학교에 근무하면서도 직간접적으로 좀 뻣뻣하다는 말을 제법 들었습니다. 말을 붙이기가 어렵고 건방져 보인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왜 이런 일들이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태도와 자세가 겸손하지 않은 게 문제입니다. 영호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다음의 세 가지 이유로 변명을 해 봅니다.

첫째는 영호의 자세 때문입니다. 선고(先考)께서는 고된 농사일에 약주를 드셔도 항상 꼿꼿하게 걸으셨습니다. 특히 영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일부러라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선고의 말씀을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영호가 고개를 들고 어깨와 허리를 펴고 걷는 것은 선고의 영향입니다. 자세뿐만 아니라 치밀하고 깐깐한 성격도 선고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둘째는 영호가 말이 적은 까닭입니다. 예전에는 대화를 할 때도 주로 듣기만 했습니다. 말이 어눌해서이기도 합니다. 어느 자리에서는 앞에 앉은 동기 여선생님이 재미없다면서 말 좀 하라고 채근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말이 적으면 말로 실수할 일은 없지만, 소통과 공감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부쩍 말이 많아졌습니다. 말은 많아도 탈이고 적어도 걱정이니 적당하게 중용을 지키는 게 어렵습니다.

셋째는 영호의 키 때문입니다. 영호의 키는 180센티미터 이상입니다. 서서 이야기를 나누면 대부분 영호는 상대방을 내려다보고 상대방은 영호를 올려다보게 됩니다. 올려다보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조금 상할 수도 있습니다. 10여 년 전에 배드민턴 동호회에서 두 다리를 벌리고 무릎을 조금 굽혀서 키가 아주 작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었더니, 그 여성회원은 두고두고 영호를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무릎을 굽히거나 꿇어앉기도 합니다.

교대부초의 비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수업을 하는 학교’입니다. 언뜻 생각하면 아주 건방진 비전입니다. 하지만 이 비전은 상대적인 것도 아니고, 다른 학교와 비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 한 분의 마음가짐입니다. 자기 자신의 절대적인 기준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도 나름대로 자신이 좋은 수업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호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좋은 수업을 했습니다. 오늘은 영호의 생애에서 가장 좋은 수업을 한 날입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수업을 했습니다. 내일은 영호의 생애에서 가장 좋은 수업을 한 날이 되겠지요. 어떤 날은 수업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두 걸음 더 나가기 위한 한 걸음 물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런 마음으로 자신만의 가장 좋은 수업을 만들어 가는 것이 교대부초의 아주 겸손(?)한 비전입니다.

그래서 영호는 교대부초 선생님들에게 겸손, 열정, 실력을 갖출 것을 당부합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고 뒤에 세우며 자기의 존재를 상대화하여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 배치하는 것으로 관계론의 최고 형태이다.”(신영복의 ‘담론’에서) 열정은 일에 대한 자세와 태도이자 실천의 문제입니다. 겸손과 열정이 손바닥과 손등처럼 항상 함께 붙어 다니면 좋겠습니다. 누구나 겸손과 열정으로 절차탁마를 한다면 시나브로 실력은 그 사람의 그림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영호는 교대부초 교직원들과 소통과 공감의 공간인 ‘교대부초 절차탁마’ 시리즈에서 ‘대구교육대학교대구부설초등학교 제일머슴(교장) 김영호 드림’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합니다. 제일머슴은 상머슴이라는 의미입니다. 21세기에 머슴이라는 용어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만큼 교직원들을 섬기고 배려하며 솔선수범으로 영호 자신을 낮추겠다는 의도입니다. 자문자답해 봅니다. “영호야, 너는 얼마나 겸손하니?” “글쎄, 아직은 좀 …….” 당신은 얼마나 겸손한지 자문자답해 보시지요? “나는 얼마나 겸손한가?” “나는 ……!”

김영호 <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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