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뜻이 조반생선(朝飯生鮮)?…중화사상의 저주와 폄하
조선의 뜻이 조반생선(朝飯生鮮)?…중화사상의 저주와 폄하
  • 김종현
  • 승인 2021.10.0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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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음식 세계로> - (33) 미래 먹거리의 유전자를 찾아
남만북적·오호·흉노·반도·백잔 등
주변국가들 욕되게 호칭하는 말
상대방 깎아내려 스스로 높다 착각
오늘날 용어 ‘피그말리온 효과’ 노려
평론가 “현실 고통을 상상으로 해결
실제와 대면 회피하는 메커니즘”
조선생선
중국이 비하한 조선생선을 우리나라에선 ‘조개신선(朝開新鮮, morning-opened calm)’으로 승화시켰다. 그림 이대영

◇문자기록이 없어 출토유물에 의존해야

당나라 태종 629년부터 편찬된 양서(梁書)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엔) 문자가 없어서 나무 조각을 깎아서 의사소통의 신표(편지)로 사용했다. (양나라가 신라와) 의사소통을 해야 할 때는 백제를 중간에 통역시켜서 소통했다(無文字, 刻木爲信. 語言待百濟而後通焉).”고 했다.

신라는 대륙으로부터 문화도입에 고구려, 백제보다도 100~200년 늦었다. 따라서 7세기까지 ‘중국(梁)~백제 ~ 신라’라는 의사소통의 체계였다. 이처럼 ‘토기무늬(토소령), 목각신, 목간(한자)’이라는 과정이 있기에 우리가 토기의 무늬를 곧바로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양나라의 소통방식처럼 목각신(木刻信)을 중간통역자로 하고 한자목간과 확인하면서 빗살무늬 해독이 가능하다.

2019년 3월 1천500년 전 타임캡슐이었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라고 노래했던 구지가신화(龜旨歌神話)가 고령군 지산동고분군의 아이무덤에서 발견된 5cm 흙구이 방울(土燒鈴, clay-made bell)로 비밀코드가 풀렸다. 5세기경 5살 가량의 어린아이 시신 옆에 놓였던 흙 방울(土燒鈴)에 신화의 소재였던 구지봉, 거북, 남녀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구지가신화, 토소령(土燒鈴), 삼국유사라는 비밀코드가 얽혔기에 토제령(clay-made bell)을 열쇠로 삼국유사를 통해 확인함으로써 구지가신화(龜旨歌神話)를 풀었다. 지난해 옥산신라토기가마터에서 팽이형토기의 파편으로 추정되는 토기조각에 ▥▨▤무늬가 있었다. 무슨 의미를 우리에게 던지고 있을까.

1973년 예천 풍양의 삼강주막(三江酒幕)을 찾았다. 옛 주모(酒母)가 외상술을 주고 부엌 벽에다가 막대기를 그려 치부했던 그림(∥\∥≡×)을 봤다. 어릴 때 글을 하나도 몰랐던 어머니가 동네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안채 기둥에다가 사금파리로 돈을 빌려가는 사람 앞에서 막대기를 그려 계약서와 치부책을 대신했다.

지난 1976년 달성군 도동서원(道東書院) 뒷산 대리산(戴尼山)기슭 마을에 고려 현종 9년(1018년) 밀성군(密城郡) 구지산부곡(仇知山部曲)이란 특별기술클러스터(special technological cluster)에 전통과 산업을 지켜오면서 살아왔던 주민들이 사용했던 목각신(木刻信)을 봤다. 그림 같기도 하고 기호 같기도 했다.

목각신(木刻信)의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유사한 기호로 옮겨보면, ‘◎◎◎□>?>???≡?::?≫’모양이었다. 내용을 몰라서 마을에 계시는 문장(門長) 어른께 물었더니 “바깥사돈 간의 편지글인데, 내용은 ‘3복더위의 계절(태양열이 두 배 이상 뜨거운 복더위◎)에 문안드립니다(문안하는 입모양□, 허리 굽혀 절하는 모습>). 삼례하옵고(낫으로 풀을 베는? 예의를 갖춤>), 수탉 3마리(날이 밝아짐을 알리는 수탉모양?)와 인삼 3뿌리(석 삼三와 같은 음의 인삼표시≡)를 마련해 놓았으니 삼계탕을 끓여(음식 끓어 김이 오르는 모양?) 음복(飮福)과 소담(笑談)을 나누고자 하오니(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양::), 왕림하여 주시길 바랍니다(오고가는 모양?). 재배(두 번 허리 굽혀 절하는 모습≫)’라는 뜻이네.”라고 풀이했다.

또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515-1번지 화장사(華藏寺) 옆 바위에 새겨진 선사시대의 암각화로 2겹 2개, 3겹 3개, 4겹 1개로 도합 6개인 ◎ⓒ 동심원(同心圓, concentric circle)이 그려져 있다. 청동기시대 당시로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해(태양)에 대한 신앙을 동심원으로 표시했다고 고미술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화장사의 암각화 동심원을 기호학으로 풀이하면 “지난해도 풍년이었던(◎) 것처럼 올해도(ⓒ, 명년에도(◎) 다음 해도 풍년(◎)들게 하소서(祈過歲豊, 今明次歲, 豊饒豊歲).”라는 뜻이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면, 1995년 옥산신라가마터 발굴현장의 팽이형토기 파편에 ▥▨▤ 모양의 빗살무늬는, 일본 동대사 정창원(正倉院) 신라향찰목간(新羅鄕札木簡) 혹은 고려청자수송에 사용되었던 한자목간(漢字木簡)으로 보면, ▥은 “흐르는 물(流), 씻기(洗), 혹은 물에 담그기(泡) 등”이고, ▨는 절이기(沮), 소금치기(鹽) 혹은 햇볕에 살짝 쬐어 말리기(曝) 등, ▤은 숨을 죽이기(熟), 각종 재료(양념)를 더하기(添) 혹은 땅에 묻기(藏)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한 말로는 겨울 갈무리(冬藏) 혹은 소금절이기(鹽藏) 등으로 풀이할 수 있어, 제작용도를 짐작할 수 있다.

끝으로 달서구 별샘마을(辰泉洞) 선사시대(청동기) 암각화에서는 계명명세(鷄鳴明歲)하는 꼬리가 긴 수탉 1마리(3겹동심원 겹친 수탉)와 2겹 동심원 2개 ‘◎◎’을 그려놓았다. 이를 스토리텔링(storytelling)하면 “수탉이 새벽에 꼬끼오 울어대니 새해가 밝아오노라. 올해도 우순풍조(雨順風調)하시어 풍년이 들게 하소서. 다가오는 해마다 풍풍세세(豊豊歲歲)가 되게 하소서(長鷄曉明, 開新世明, 今年豊豊, 明歲大豊)!”라는 기원이다. 이렇게 닭이 밝히는 세상이 바로 달구벌이고, 어디선가 계삼탕(≡? 혹은 ≡♨)의 기원단서(基源端緖)가 달구벌에서 밝혀질 것이다.

◇선비족(鮮卑族)에서 선비의 이상형을

먼저 선비라는 고유어부터 살펴보면, 사전적 의미로는 학문을 닦는 사람(學生)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조선시대 한때는 ‘학식이 있으나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白面書生)’을 비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다.

남존여비의 유교적 인습에 젖었던 조선후기엔 남성에만 한정했다. 물론 선비의 한자어 ‘선비(鮮肥)’ 즉 신선하고 살찐 고기(新鮮肥肉)라는 말은 중원(中原)을 차지했던 한화족(漢和族)의 입장에서 오늘날 용어로 ‘정신승리(mental victory)’하는 표현이다. 또한 남들에게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를 ‘선비(先妃)’라고 하며, 선박비용이 ‘선비(船費)’라며 같다 붙이는 꼴이다.

중화사상에서는 상대방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을 드높임(貶人昇己) 이런 표현이 참으로 많다. 중국 이외 주변국을 남만북적(南蠻北狄), 오호(五胡), 흉노(匈奴), 조선(朝鮮), 선비(鮮卑), 반도(盤桃), 백잔(百殘), 부상(扶桑), 동이서융(東夷西戎) 등으로 칭한다. 이는 오랑캐(五胡), 생선반찬과 노예(鮮卑), 아침반찬 생선(朝鮮), 밥상에 오른 복숭아(盤桃)라는 저주(詛呪)와 폄하(貶下)다.

이렇게 주변 국가들을 욕되게 호칭함에는 i) 상대방에게 오늘날 용어로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 혹은 자성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란 마술을 걸겠다는 게다. ii) 중화사상(中和思想)을 강화하고 상대방을 깎아내림으로써 스스로 높아지는(貶人昇己) 착각을 불러왔다. 이렇게 지나친 정신승리는 아편전쟁 이후 1922년 루쉰(魯迅, 1881~1936)의 ‘아Q정전(阿Q正傳, The True Story of Ah Q)’에선 ‘현실적인 고통을 상상으로 해결해 실제와 대면을 회피해버리는 정신적 메커니즘(The mental victory is the spiritual mechanism which resolves real worries and pains by refusing to face them through their imagination.’라고 문학평론가 김형중(조선대학교 교수)가 정리했다.

중국의 입장으로 보면 조선(朝鮮)을 조반생선(朝飯生鮮) 혹은 조시생선(朝市生鮮)으로 부르며 저주하는 뜻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조개신선(朝開新鮮, morning-opened calm)’이라는 의미로 승화시켰다. 고려(高麗)에 이어 1392년에는 ‘조선(朝鮮, Morning Calm)’이란 국호를 내걸고 나라를 세웠다. 선비(鮮卑)에 대해서도 고조선(古朝鮮, BC 2333~ BC 108)은 줄기민족으로 인식했다. 선비족은 대흥안령산맥(大興安嶺山脈)의 선비산 기슭에 살면서 수(隋)와 당(唐)을 건국했음에도 생선 혹은 노비 따위와 같은 민족(生鮮奴婢之民族)라는 욕설을 받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선 선비족에 대한 신의가 두터웠기에 고구려 BC 27(유리왕11)년에 ‘말을 바꿔 꾀로 굴복(易以謀屈)시킬 수 있을 정도’라고 평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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