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에 돈이 있다
시간 속에 돈이 있다
  • 승인 2021.10.2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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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무언가를 깨닫는다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깨달음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나를 찾아와 나의 머리에 종소리를 울리곤 한다. 깨달음의 순간은 특별한 장소나, 특별한 순간에 찾아오지 않는다. 바쁜 아침 허리 숙여 머리를 감다가 거품 가득한 채로 만나게 될 때도 있고, 늘 다니던 길을 걷다가 담벼락 사이에서 피어난 작은 꽃을 보고도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같은 길을 수 만 번 걸어 다녀도 알 수 없는 것이 있고, 처음 걷는 길에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살아가다가 나도 모르게 그냥 알게 되는 것, 예전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던 감정과 생각이 그날에서야 알게 되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다.

그래서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행복이란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나?' 보다는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달았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가진 것이 이미 차고 넘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다.

삶이 나를 가르치고 만나는 사람과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이 나의 스승이 된다. 나의 인생을 가만히 돌아보면 나는 참 많은 스승을 만났고, 또한 그 스승을 통해 배움을 얻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고백한다. 웃음을 줬던 고마웠던 사람도 나의 스승이었고, 눈물로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도 지나고 보니 모두 내게 깨달음을 준 스승이었다. 그리고 비단 사람이 아니라도 나를 가르쳐 주는 것들이 있다. 몇 해 전 신발을 사면서 신발이 내게 깨달음을 준 적이 있다. 그것은 '시간은 돈이 된다.'라는 것이었다.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얘기를 오늘 나눠볼까 한다.

필자는 산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마음이 공허하고 힘든 날이 되면 산으로 가서 마음을 씻으며 힘든 마음을 달래곤 한다. 한창 등산에 마음이 가 있던 어느 해 가을이었다. 산에는 나무들이 제각각 알록달록한 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고 들판에도 황금빛이 출렁였다. 산을 좋아하는 필자는 더없이 신이 났다. 등산하기 딱 좋은 계절이 왔기 때문이었다. 산은 어느 계절 할 것 없이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 산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신고 있던 낡고 헤진 무거운 등산화를 이제는 편히 쉬게 해주어야 할 때가 온 듯싶어 가볍고 튼튼한 놈으로 새로 구입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강의가 없는 날 아내와 함께 팔공산 입구에 있는 한 등산용품 전문 매장을 갔다. 직원의 상세한 설명도 듣고, 직접 신어도 보고 난 뒤에 그중 괜찮은 녀석을 하나 선택했다. 신발의 편함도 있었지만 사실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제 몸값에서 50%나 할인을 해서 반값으로 구매를 할 수 있다는 것에 있었다. 같은 모델로 아내의 것도 함께 구입했다. 하나 가격으로 우리 둘의 등산화가 생긴 셈이었다. 할인을 많이 해줬다고 새로 산 신발이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양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모양이 참으로 예뻤다. 질도 좋고 모양도 예쁜데 우리가 산 등산화는 반값이었다. 바로 시간이 우리에게 도움을 준 것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어떤 것은 제값을 주어야 구입할 수 있고, 어떤 것은 반값을 주고 구입할 수 있다. 그 건 물건의 질(質) 차이가 아니다. 이유는 시간에 있다. 상표에 숫자가 18****으로 시작하면 2018년에 생산한 것이고, 19****로 시작하면 2019년에 생산한 것이라고 매장 직원이 알려주었다. 우리가 당시에 구입한 등산화가 바로 18로 시작하는 이월상품이었던 것이다. 바로 시간이 돈이 되는 순간이었다. 누가 신던 것도 아니었고 비를 맞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매장 창고에 고이 모셔져 있다가 시간의 강을 건너 우리 손에 전달된 것뿐이다. 기분이다 싶어서 장인어른, 장모님 것도 우리와 같은 것으로 하나씩 사드렸다. 산을 자주 다니시는 장모님께서 사드린 등산화를 신고 등산을 다녀오신 후 가볍고 예쁘다고 좋아하셨다, 특히 미끄러지지 않아서 좋다고 하셨다. 덩달아 사위인 나도 기뻤다. 그날 등산화를 사면서 시간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내려가는 것도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올라가는 것도 있다. 바로 시간 속에 돈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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