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디자인 기행] 색감이 주는 연출의 잔상, 긴 여운 남는 명장면의 비밀…色을 알면 영화가 보인다
[일상 속 디자인 기행] 색감이 주는 연출의 잔상, 긴 여운 남는 명장면의 비밀…色을 알면 영화가 보인다
  • 류지희
  • 승인 2021.10.21 2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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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화면 가득 채우는 컬러풀 색감
치열하고 기괴한 내용과 상반
동심 불러일으켜 묘한 긴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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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시아 전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한국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장면으로, 스토리와 대조되는 밝고 컬러풀한 색감에서 평론가들로부터 극찬받은 영상미를 느낄 수 있다.
출처: 넷플릭스 오징어게임영상 이미지 캡처본

지난 9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한국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한 달 새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1위로 대기록 행진 중이다.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 1위를 석권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의상 및 게임 등 극 중 요소들이 소셜미디어 내 패러디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파급효과가 커지고 있다. 콘텐츠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은 콘텐츠가 공개된 83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 최정상에 한 번씩 올랐다. ‘한국 어린이들이 즐겼던 쉽고 재밌는 추억의 게임’을 소재로 하여 한국적인 정서를 컨셉으로 기획제작된 센세이션한 스토리의 이 영화는 가장 큰 시장인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전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다.

필자는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본 관객으로써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다름아닌 화면 속 공간을 가득 채우는 컬러풀한 색감들이였다. 평론가 김효정씨 역시 “이 드라마는 미술이 다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무대를 구현했다”고 말한 바 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이 서로 죽음을 담보로 게임을 벌이고 있는 치열하고도 기괴한 내용과는 상반되는 밝고 알록달록한 색감의 공간과 소품들이 연출된다. 이는 마치 어릴적 동네 친구들과 아무 걱정근심 없이 게임을 즐겼던 인간 내면의 맑고 순수함, 즉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해내어 내용과는 극대화된 묘한 긴장감으로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총 6가지의 게임이 한 단계식 넘어갈 때마다 게임의 컨셉에 맞춰 바뀌는 세트장디자인과 소품, 색감연출은 시각적인 흥미로움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마치 한 편의 운동회를 즐기는 듯 들뜬 분위기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참가자들의 비극이 기존의 진한 공포 분위기가 주가 되는 잔인하고 끔찍한 액션스릴러나 호러물과는 달리 주인공들과 함께 한 단계 한 단계 함께 미션을 클리어해나가는 심리적 쾌감과 익사이팅함을 주었다.

이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색의 조합과 공간의 연출을 보는 건 영상 작품을 감상하는 또 다른 즐거움의 요소가 된다. 대개 관객들이 영화를 감상하는 한 두 시간 가량의 이야기 속에서 결국 시간이 흘러도 가장 인상깊게 기억되는 명장면은 한 두 장면에 한해진다. 그 장면 속에는 배우들의 명대사 못지 않게 짧고 강렬하게 혹은 잔잔하지만 깊게 여운을 남기는 미술적 요소와 분위기들이 녹아 있다. 화려한 편집이나 효과도 없지만 관객들에게 두고두고 인상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는 이를 연출하는 이유는 프로덕션디자인의 연출때문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미술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프로덕션디자이너는 영화 제작에 있어서 감독의 눈, 감독의 손, 감독의 목소리라고 불리울 정도로 감독의 비젼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감독이 영화의 각본을 어떻게 해석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고 그에 다라 촬영장소, 세트, 의상, 소품 등 관객의 눈에 보이는 모든 시각적인 요소들을 디자인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주도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스토리의 시나리오, 멋지고 아름다운 배우들이 주옥같은 대사를 읊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표현하고 전달해내는 미술적 요소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연출이라함은 우리가 어떠한 드라마나 영화를 떠올렸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분위기와 이미지 그 자체, 즉 전체적인 룩(LOOK)을 연구하고 표현해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즐겨보는 영화, 드라마, 연극은 감독과 배우들만이 만드는 창작물이 아닌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상에 생기를 넣어주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커스텀디자이너, 라이팅디자이너, 세트디자이너, 사운드디자이너이다. 이들은 각자 맡은 역할 속에서 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관객들이게 전달해주려 노력하는데,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집중하는 연출 요소가 바로 색감(Color)이다. 그 강점을 명확하게 사용하여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여운과 영감을 준 작품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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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작 로맨스영화 ‘라라랜드’는 주인공들의 옷과 배경공간, 조명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은 컬러연출을 통해 지금까지도 전세계 관객들에게 특유의 컬러풀한 분위기와 잔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출처: 넷플릭스 라라랜드영상 이미지 캡처본

필자의 경우, 연출력이 좋은 영화들을 소장하며 디자인 작업시 영감으로 삼기도 하는데, 그 중 대표작품 몇 가지가 있다.

라라랜드
여주인공 나오는 장면 파랑
남주인공은 노란색으로 연출
사랑의 과정은 혼합색 초록

첫 번째가 영화 ‘라라랜드’이다. 라라랜드는 색 하나에 인물의 심리와 모든 스토리가 담겨있다고 할 만큼 컬러로 시작해 컬러로 기억되는 감성적의 영상미로 많은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라라랜드에서는 배우들의 패션스타일링을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원색 기본컬러로, 그리고 공간과 배경이 되는 풍경을 초록, 주황, 보라색의 혼합색으로 연출하여 다양한 컬러를 활용한 디자인들로 구성하였다. 특히, 여주인공 미아가 나오는 대부분의 장면은 ‘파랑(Blue)’컬러로, 남주인공은 ‘노란(Yellow)’컬러로 연출되었다. 여주인공인 친구들과 파티장으로 향할 때 입은 파란색 원피스, 연기 오디션에서 입은 파란색 점퍼, 파란색 조명이 가득한 집내부 등 주인공의 ‘외로움’이라는 심리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 남녀주인공의 꿈을 향한 열정은 레드(Red)컬러로, 사랑이 깊어가는 과정에서는 파랑과 노랑의 혼합색인 초록(Green)으로 영상미가 이루어진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난 이후 많은 이들이 색의 잔상으로 그 날의 분위기를 기억하며 여운을 가지고 있으니, 이 색들은 각 장면에서 자신의 의미와 역할을 그 무엇보다도 톡톡히 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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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연출로 사랑받는 미셸공드리감독의 영화 ‘무드인디고’ 중 한 장면으로, 한 화면 안에서 주인공의 심리에 따라 비비드한 컬러와 모노톤의 컬러가 극명하게 대조되어 연출되고 있다.
 

무드인디고

사랑의 시작 순간 비비드컬러

무르익는 장면은 파스텔 사용

병 들고 힘들 땐 무채색 모노컬러 

두 번째 영화는 ‘무드인디고’이다. 전세계적으로 사랑받은 로맨스영화 이터널선샤인의 감독 미셸공드리의 미장센 끝판왕 작품이라고 할 수있는 초현실적인 연출과 실험적인 영상미로 몽환적인 느낌이 가득하다. 영화의 스토리 자체도 판타스틱한 설정들이 많은 만큼 초현실적인 배우들의 몸놀림과 소품, 극중 상황들의 아트적인 연출력이 보는 내내 눈호강을 하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토리가 전개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들의 심리적 변화에 따라 눈에 띄게 변화되는 컬러 배색은 감정선에 대한 몰입도를 더욱 가중시킬 뿐만 아니라 색채심리공부를 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남녀가 처음만나 사랑을 시작할 때는 개성이 강한 비비드컬러, 사랑이 깊어져 무르익는 순간에는 온화한 파스텔컬러, 주인공이 병이 들고 지쳐 힘겨워지는 장면에서는 무채색의 모노컬러로 화면 전체적인 색감이 변화된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연출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며 보게 된다면 작품을 더 폭넓게, 그리고 깊이감 있게 이해할 수 있어 그 감동도 여운도 배가 될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영상을 볼 때 울고 웃고 치유받게 되는 이유는 영상에 담긴 기가막힌 스토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영상 속 자연스럽게 녹아든 감각적인 연출과 감성적인 영상미가 주는 심리적 희열감이 아닐까. 공감과 안정감, 때로는 적당한 긴장감으로 쾌감을 선사하는 미술의 비주얼라이징(Visualizing) 그 자체일 것이다.
 

 

류지희<디자이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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