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만 걷자
꽃길만 걷자
  • 승인 2021.11.01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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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3년째 아이들 수능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있다. 올해 초 첫아이 대학입학으로 한 시름 놓자, 둘째 아이 고3이 시작되었다. 또다시 둘째 아이가 수능준비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이 없고, 그 시간들을 근심으로 보내기 보다는 몸을 힘들게 하는 것이 낫기 때문에, 기도를 하러 갓바위를 갈 생각을 했다. 아이에게 너를 위해 갓바위를 가서 기도하겠다 하니, 딸은 그냥 자기에게 맛있는 것 해주고, 자기 말을 잘 들어달라고 한다. 갓바위 갔다와서 피곤해 하는 것보단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잘 해 주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좋다고 한다. 들어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중3학년 2학기부터 공부에 관심을 갖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부터 열심히 하지만기초가 많이 없어 해도 잘 오르지 않아 늦었다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엄마가 미리부터 열심히 하라고 했는데 실컷 논 것을 후회하기도 했고, 그래도 잘 놀았다고 좋았다고도 했다. 긍정적인 마인드가 마음에 든다.

올 해는 갓바위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대신 아이가 올 때, 갈 때 항상 웃으며 맞이하고, 웃으며 응원해준다. 음식을 먹을 때는 같이 식탁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최대한 공감을 해 주려고 했다. 가끔은 걱정이 되어 수능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공부할 때는 집중하는지 조심스레 묻기는 했다. 1학기 쯤에는 그런 말도 듣기 싫다며 공부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더니, 여름방학이후에는 자신이 먼저 공부 이야기를 하고, 학원 이야기를 했다. 첫아이는 수능날이 될수록 초조해했는데 둘째 아이는 점점 짜증이 줄어들었다. 좋은 징조라고 생각하고 싶다.

첫째 아이가 군입대를 하여 그 아이 방이 빈 공간으로 남아 있다. 그 만큼 내 시간도 비어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딸은 주말이나 휴일에도 아침에 나가서 밤11시쯤 집에 오니 주말에 신경 쓸 일이 적어졌다. 가만히 집에 있으니 아들걱정, 딸 걱정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 어디 기도라도 하러 갈 까 생각해보아도 마땅한 곳이 없었다. 그 때 지인이 거창 감악산 꽃축제를 갔다왔다며 사진을 보여 주었다. 높은 산꼭대기에 커다란 풍차가 돌아가고 있고 그 아래로 보라색 국화꽃이 펼쳐져 있었다. 높고 파란 하늘 아래에 보라색, 노란색 국화 꽃이 환상적이었다. 걱정스러운 기분을 한 번에 훅 하고 날려버렸다. 눈에서 전해진 풍경이 뇌로 전해지고 다시 마음으로 전해져 온 몸이 기분 좋은 상태가 되었다.

매일 집에서 걱정만 하면서 얼굴색이 흑색으로 변해가는 것 보다는 이렇게 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해주는 꽃밭을 보러가기로 결심했다. 혼자 가기는 먼 길이라 아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약속이 있었다. 갑자기 하루 전날 밤에 가자고 하니 아닌 밤중에 꽃놀이였다. 포기할까 고민하다가 혼자라도 가기로 했다. 이젠 운전이 능숙해졌다. 시외 초행길도 한 번 갔다 온 적 있다. 두 번도 갔다 올 수 있을 것이다. 집중을 차에 내장된 네비게이션 안내를 들으며,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보며 제대로 가고 잇는 것을 수시로 확인하며 가다보니, 거창 감악산 꽃 길 가는 길 안내판이 보였고, 산으로 올라가는 급경사를 안간힘을 쓰는 차 엑셀을 밟고가니 드디어 풍차가 보이고 높은 하늘이 보였다. 잠시 후에는 넓게 펼쳐진 아스타 국화꽃과 사람들이 보였다. 아름다웠다. 혼자서 마구 풍경사진을 찍었다. 여기서도 찍고, 저기서도 찍고 어디서 찍어도 예뻤다. 꽃길을 따라 걸으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늘과 바람과 꽃이 주는 행복이 컸다.

그 다음주 연휴에는 논공 해바라기 꽃을 보러갔다. 해바라기는 이미 져서 보이지 않았고, 황화코스모스와 핑크 뮬 리가 예뻤다. 초등학교 친구와 깔깔 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꽃밭에서 나는 행복했다.

내년에는 딸과 함께 꽃놀이를 가고 싶다. 올 해 수능을 잘 쳐서 내년부터는 딸아이가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꽃밭에서 나는 기도했다. 딸아, 올 해 힘들게 고생한 만큼 내년부터는 꽃길만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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