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통영 스케치
[문화칼럼] 통영 스케치
  • 승인 2021.11.10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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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지난 주말 통영나들이를 했다. 통영바다와 2021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 결선을 보기 위해서다. 이날은 안개가 옅게 드리운 날씨였다. 박무(薄霧)는 먼 산과 나의 사이에 엷은 막을 드리워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한다. 햇살이 높아짐에 따라 단풍이 든 모습과 아직 초록인 초목들이 한데 어우러진 가을 산의 모습이 점차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모든 조화가 깊어가는 계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선 덕분에 시간은 여유로웠다. 미륵산 남쪽 기슭의 미래사를 먼저 찾았다. 편백나무 숲이 빼곡히 들어선 사찰의 역사는 일천하지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가람(伽藍)이었다.

여기서 미륵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멀지않은 거리지만 흐르는 땀을 감출 수는 없었다. 등산객들에게는 뒷동산 정도겠지만 음악회 가는 복장의 사람에게는 케이블카나 탈걸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올라서면 남해바다가 펼쳐진다. 특히 통영국제음악당 방면을 내려다보면 수평선을 볼 수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다도해가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작은 바다와 섬 그리고 또 바다와 섬들이 눈앞을 가득 메운다. 통영 바다는 언제나 포근하다. 밑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상쾌해 올라온 발걸음이 만족스럽다.

2003년부터 시작된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3악기를 한해씩 번갈아 열고 있다. 올해는 바이올린 경연이 열리는 해다. 세계적 바이올린 콩쿠르인 닐센, 메뉴인 콩쿠르 그리고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등 유수의 국제콩쿠르 입상자 다수를 포함한 24개국 103명을 대상으로 엄정한 예비심사를 거쳐, 12개국 26명 본선 진출자를 선발했다. 이들이 지난 10월 31일부터 1차 본선, 2차 본선을 거쳐 지난 토요일에 4명이 파이널 라운드를 펼쳤다. 심사위원 면면도 화려하다. 김남윤 위원장을 비롯해 한국 전준수 그리고 미국, 러시아, 독일, 캐나다, 미국, 일본, 중국의 권위자들이 포진했다.

결선 진출자는 브람스, 시벨리우스, 베토벤,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를 연주해야 하는 데 이번에는 특이하게 브람스,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각 2명씩 선택하여 같은 곡을 비교하며 들을 수 있었다. 관객입장에서는 상대적 평가를 하기 용이 했다고 할 수 있다.

관록의 ‘드미트리 시트코베츠키’가 지휘하는 통영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포근한 현의 울림으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시작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생 임동민은 중앙콩쿠르 우승자다운 안정적 연주를 보여 주었다. 예민한 젊은이의 단정한 연주였다.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 재학 중인 한국 정주은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큰 박수를 받았다. 세련되고 뛰어난 테크닉에 과감하고 파워풀한 연주를 들려줬다. 파도치듯 밀려오는 피날레는 압권이었다. 특히 북구의 서정을 노래하는 시벨리우스의 음악이 가진 힘을 잘 표현해서 정말 행복하게 감상했다. 2부 순서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재학 중인 중국계미국인 ‘카리사 추’의 브람스 협주곡연주는 표현의 폭이 크고 힘이 있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정주은의 시벨리우스에 빼앗겼던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마지막 한예종 재학생 강나경은 매우 어린나이에 대단히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무려 3시간에 걸친 결선 연주가 끝난 뒤에도 바로 돌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참을 기다려 다 같이 시상식을 지켜보았다. 결선을 마치고 관객 각자가 선호하는 연주자에 투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콩쿠르 순위에는 영향이 없지만 특별상은 수여한단다. 그리고 우승자를 맞춘 관객을 위한 꽤 괜찮은 경품도 걸려있었다. 나는 정주은이냐, 카리사 추냐 갈등했다. 카리사 추의 음악은 대단히 훌륭했지만 정주은이 연주한 시벨리우스 음악이 가진 힘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카리사 추에게 한 표를 던졌다. 가장 많은 관객이 선택한 특별상은 정주은에게 돌아갔고 카리사 추가 우승했다. 요행히 내 생각이 맞긴 했지만 정주은의 음악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경품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통영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결국 선택과 집중에서 우리를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오페라, 뮤지컬 등 다른 도시들이 감히 따라올 생각을 못할 만큼 특화된 콘텐츠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 명실상부한 ‘국제콩쿠르’를 대구에 만들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사실 통영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상태에서 지금의 성과를 만들어 냈다. 어떻게 보면 윤이상에 의한, 윤이상의 콘텐츠 그것 뿐 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강력하다. 마치고 밤바람을 맞으며 길을 나서니 통영국제음악당 한쪽에 자리한 윤이상의 무덤이 통영 밤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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