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릉’ 낭만파도 빌런도…싸움에 이유가 안 보인다
영화 ‘강릉’ 낭만파도 빌런도…싸움에 이유가 안 보인다
  • 배수경
  • 승인 2021.11.1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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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길석
수단 안 가리는 마이웨이 민석
맥락없는 칼부림 설득력 상실
평면적 캐릭터, 해석 여지 안줘
영화 ‘강릉’ 스틸컷
영화 ‘강릉’ 스틸컷

 

 
커피와 낭만의 도시, 강릉이 피비린내 나는 조폭들의 전쟁터가 되었다. 10일 개봉한 영화 ‘강릉’은 소위 말하는 가오(허세, 폼 등을 지칭하는 속어)에 집착하는 조폭들의 세계를 보여준다. 영화는 2017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6개월 앞둔 시기, 강릉 최대의 리조트 사업권을 둔 두 조직의 야망과 음모, 배신을 전면에 내세운다.

강릉 최대 조직의 2인자인 길석(유오성)은 평화와 의리를 중요시한다. 낭만을 추구하고 칼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조폭이라니 아이러니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서울에서 내려온 채권추심업체 사장 민석(장혁)은 말보다는 칼이 앞서고 갖고 싶은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쟁취한다. 그는 길석의 조직으로부터 리조트 사업권을 뺏기 위해 한 치의 타협도 없는 직진을 한다. 최대 빌런인 민석의 폭주가 어디에서 기인했으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그의 첫 등장 장면을 통해 말 못할 사연이 있었을거라 짐작할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빈 눈빛으로 무심히 칼을 휘두르는 장혁의 연기는 훌륭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한국형 누와르 영화의 뻔한 클리셰 범벅인 영화를 119분 동안 버틸 수 있게 하는 힘은 ‘묵직한 카리스마’의 유오성과 ‘비정하지만 사연있어 보이는 빌런’ 장혁 등 투 탑 주연 뿐 아니라 오대환, 이현균, 신승환, 송영규, 김준배 등 누구 하나 빈 틈이 없는 조연배우들의 열연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낸 오회장 역의 김세균도 반갑다.

배우들의 연기는 나무랄 데가 없지만 맥락없는 칼부림으로 뒤덮인 영화는 설득력을 잃는다. 쓸데없이 잔인하기만 하다는 평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강릉’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 평면적으로 그려질 뿐이라 그들이 무엇을 위해, 왜 그렇게 혈투를 벌이는지에 대해 공감을 이끌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난 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들이 쉴 틈없이 피워대던 담배 그리고 현란한 칼부림 밖에 없다. 단순히 킬링타임용 영화를 찾는다면 물론 무리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이다.

영화 ‘강릉’은 그간 우리가 숱하게 봐왔던 도시의 이름을 내건 영화와는 다른 결로 다가온다. 영화 속에서 스쳐가는 대사로 언급되는 ‘커피의 도시’와 경포호를 배경으로 길석의 부하 형근(오대환)이 관동별곡을 언급하며 드라이브 샷을 날릴 때, 그리고 영화 내내 들리는 사투리를 제외하고는 이곳이 강릉이라는 것을 제대로 각인시켜주지는 못한다.

 

영화-강릉스틸컷
영화 '강릉'스틸컷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의 피비린내나는 조폭들의 혈투와는 별개로 반복되어 등장하는 한적한 강릉 앞바다(남항진해변)의 작은 포장마차는 평온하기만 하다. 해수욕장을 가득 채운 피서객들, 커피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 등 관광지로서의 강릉의 모습을 대비시켜 드러내 보였더라면 ‘강릉’이라는 영화가 좀 더 생동감을 얻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강릉이라는 지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강릉이라는 도시의 매력을 드러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럴거면 차라리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낭만조폭’이라고 불릴 만했던 길석이 민석과의 대립을 통해 결국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피를 손에 묻히며 괴물의 길로 발을 내딛은 길석이 걸어가게 될 미래이야기는 어쩌면 ‘강릉2’로 다시 우리 앞에 등장할 수도 있겠다.

영화 ‘강릉’은 결국 조폭과 낭만, 그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안녕을 고하며 씁쓸하게 끝맺는다.

‘낭만이 씨가 마른 시대, 결국 그들에게 낭만은 사치일 뿐인가’하는 질문과 함께.

위드코로나 시대에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한국영화로서 개봉과 동시에 예매율 1위에 오른 ‘강릉’이 한국영화 흥행의 청신호가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될 듯 하다.

배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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