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 성적 대신…
‘다시, 사랑’ 성적 대신…
  • 승인 2021.11.2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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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수능 치를 동안 기도 전념
시험 끝난 후 나에게 환히 웃는 딸
최선 다했고, 실수도 없었다고 해
어두운 밤길 헤매지 않아 다행
성적 아닌 사랑으로 바라봐줄게
박순란
주부
둘째 아이의 수능이 끝났다. 엄마들 중 그 날 일상생활을 하며 아이가 수능 잘 치기를 바라는 엄마도 있겠고, 기도에 전념하는 엄마도 있을 것이다. 홍희는 일상생활을 편히 할 수가 없다. 아이가 치는 시험에 정신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은 직장을 가는 일상을 접고, 아이를 위해 오롯이 기도하기로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서이다.

기도를 한다고 해서 마냥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수능을 잘 쳐야할 텐데 기도를 하면서 마음이 더 불안해지기도 한다. 수능 시간에 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아이가 느낄 긴장, 불안, 조바심을 더욱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혹시나 모르는 문제인 것은 아닌지, 아는 문제라고 좋아해서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점검하다가 답을 정정하는 바람에 오답이 되는 것은 아닌지, 답안지에 컴퓨터 사인펜으로 마킹을 하면서 잘 못 하는 것은 아닌지 모든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상황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아이만큼 피말리는 시간이 지났다. 수능장을 나오는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후련하거나 기쁜 표정이 아니었다. 힘 빠지고, 약간은 어두운 표정이었다. 홍희의 마음에 바로 전염이 된다. 이를 어쩌나, 위로를 해 주고 싶고, 기운을 내라고 격려를 해주고 싶지만 홍희도 힘이 빠진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학교 긴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근방에 지인 아파트에 주차를 했다고 말을 했다. 아이는 금요일 부산에 간다는 말을 하고, 빨리 머리탈색을 하고 싶다고 했다. 순간 가슴속에서 회오리가 일면서 시험은 어땠냐고 물었다. 간단하게 “별로”라고 대답했다.

길이 왜 그리 긴지 모르겠다. 올 때는 짧았고,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겼는데, 갑자기 거리가 삭막했다. 다른 아이와 엄마를 보았다. 웃으며 손을 잡고 가는 사람, 적당히 떨어져 무덤덤하게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삼가고 길을 가는 것 같았다. 많은 수험생의 마음과 많은 수험생 엄마의 마음이 홍희와 홍희의 딸과 같은 마음이리라. 수험생 신분올 해로 끝내고 싶은 마음.

3년간 연속으로 수험생 엄마로 살았다. 첫 해는 너무 떨렸다. 두 번째 해는 담담하게 기대했다. 세 째 해는 꽃놀이를 다녔다. 앞으로도 꽃놀이와 여행을 가고 싶다. 수험생 엄마의 길을 가고 싶지는 않다. 딸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독서실에서 자신과 싸우면서 여러번 울었다고 했다. 특히 시험일이 가까워서는 그랬다고 했다. 엄마앞에서 울면 더 마음아파해서 울지 못 하고 혼자서 울고, 친구 앞에서 울었다고 했다.

지금 엄마 앞에서 밝게 웃고, 수다를 떠는 딸아이를 보니 다행이다 싶다. 자신의 성적을 비관하고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어두운 밤길처럼 헤매는 것보다는 낫다. 대학을 잘 가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더 잘 갈 수 있기에 최선을 다하라고 했고, 딸아이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시험칠 때 실수도 없었다고 했다. 이만하면 됐다. 자꾸만 답답해지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여 아이마저 답답해 한다면 그 때는 어찌하겠는가?

어쩔 수 없는 성적 타령을 참 많이도 했다.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 딸의 선택이 무엇일지는 모르지만 존중하고, ‘운’이 따라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를 바라볼 때 ‘성적’의 꼬리표를 떼기로 마음 먹었다. 이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사랑”이다. 엄마인 홍희가 필요한 것도 “다시, 사랑”이다. 사랑만이 서로를 더 불행하지 않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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