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갤러리, 최광호 사진전
토마갤러리, 최광호 사진전
  • 황인옥
  • 승인 2021.11.2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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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사용 않는 특수기법 ‘포토그램’
감광지·광원 사이에 물체 놓고 영상 구성
주제 ‘생명·근원’ 표현에 제격이라 생각
생명은 가족의 결혼·출산·사망으로
근원은 꽃·작물 씨앗 채집해 형상화
“피사체와 교감 위해 기다리는 게 중요
렌즈 통해 세상을 해석하며 희열 느껴”
“시간 쌓인 내 사진, 미래 세대와 연결하는 씨앗”
최광호작-극락조의멋
최광호 작 ‘극락조의 멋’

일본 오사카 예술대에서 사진을, 동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대학원에서 순수예술을 전공한 사진작가 최광호의 사진 촬영 방식은 그의 화려한 프로필과 결이 좀 다르다. 사진의 최첨단을 달리는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한 그의 사진이 향하는 시대적 배경이 첨단과는 한참 거리가 먼 20세기 초반을 향하고 있다. 그는 필름이 개발되기 이전인 1920년대에 유행했던 포토그램 기법으로 사진을 찍는다. 포토그램은 감광제를 바른 인화지 위에 직접 피사체를 올려놓고 빛을 비춰 그림자(잠상)을 얻은 후 인화하는 방식으로, 그야말로 아날로그의 전형이다.

◇ 포토그램 기법과 사유의 접목

최근 개막한 토마갤러리와 예술상회 토마 개인전에 포토그램 기법으로 촬영한 최광호의 사진 50여점이 걸렸다. 지난해 11월, 강원도 평창에서 경남 밀양으로 작업실을 옮기고 밀양에서 만난 사계절 자연의 모습을 포토그램 기법으로 포착한 사진들이다. 벚꽃, 냉이, 연꽃, 국화 상사화의 줄기나 꽃잎을 직접 채취하거나 조, 수수, 콩 등의 씨앗을 채집하여 인화지 위에 놓고 촬영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도된 그의 첫 포토그램의 피사체는 자신의 몸이었다. 용액을 바른 몸을 인화지 위에 놓고 빛을 투사해 촬영했다. 디지털이 일상화되기 이전 시기의 작업임을 감안할 때 섣불리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라고 진단하기는 어렵다. 그가 “정서적 차원이 아닌 주제적 차원의 선택이었다”고 고백했다.

포토그램 기법은 간단한 사용법만 습득하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지만 국내에서 포토그램 사진을 찾기는 어렵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작가의 개성을 구사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약점 때문이다. 최 작가가 과감하게 포토그램 기법을 채택한 이유는 주제적인 측면에 있다. 그는 ‘생명’이나 ‘본질’ 등의 철학적인 사유를 사진의 주제로 다룬다. 주어진 대상을 피동적으로 촬영하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철학적인 사유를 깊이있게 녹여내는데 역부족이었고, 보다 능동적으로 피사체에 관여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을 모색하게 됐다.

“생명이나 근원이라는 주제를 날것 그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게는 포토그램이었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빛으로 시작해 빛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태양의 빛과 달(암실)의 빛이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 빛을 수용한다. 낮에는 일반적인 카메라로 주변에서 흘러가는 현실의 삶을 기록하고, 밤에는 암실(달)의 빛을 활용한 포토그램 기법으로 현실 너머의 사유를 표현한다.

‘현실’과 ‘사유’의 영역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작가에게는 큰 틀에서 하나로 인식된다. 그에게 실존과 사유는 상호보완 관계다. 현실의 삶이 사유에 영향을 미치고, 밤의 사유가 현실의 삶에 개입되는 식이다. “현실을 반영한 낮과 보다 사유적인 삶에 해당하는 밤의 삶은 서로 순환적인 관계로 얽혀있다.”

사유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비가시적인 영역이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비가시적인 현상의 단초를 가시적인 대상들에서 찾는 예민한 촉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최 작가의 경우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족’을 통해 생명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는 고등학교 시기 처음 카메라를 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족의 일상을 사진으로 기록하며 생명체의 삶을 관조해왔다. 가족의 결혼이나 출산, 사망 등의 특별하거나 소소한 삶을 포착하며 실존의 문제를 다뤄왔다. 그 기록들은 그의 가족사가 되었고, 2008년에 ‘가족, 최광호’라는 사진집으로 출간했다.

가족의 삶이 실존의 문제와 결부되었다면, 그 보다 더 본질적인 주제는 존재의 근원과 관계된다. 그는 생명이 형태를 갖추기 이전의 본질적인 상태인 가능태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 가능태의 대상으로 ‘씨앗’에 주목한다. 작가에게 씨앗은 즉각적이며 날 것 그대로의 대상에 해당된다. 조, 수수, 볍씨, 콩 등의 씨앗들은 재구성이라는 작가의 행위를 더해 ‘본질’에 다가간다. “씨앗에 주목한 것은 근원에 가깝기 때문이다.”

◇ ‘생명’과 ‘본질’에 대한 탐구의 여정

일찌감치 사진에 사유의 기능을 추가했던 최 작가. 사진에 정신적인 기능을 추가한 시기는 1997년 첫 개인전 직후로 거슬러간다. 누군가 그에게 “너 앞으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을 던졌고, “나는 사진가로 살고 싶다”는 대답을 호기롭게 던진 직후였다. 막상 대답을 하고 “사진에 진실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엄중한 책임의식에 사로잡히면서 그동안 해왔던 방식에 의문을 품게 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유학이었다. 정확히 오사카 예술대학 지도교수였던 이노우 에세이류 교수가 “잘 찍는 사진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으면서다. 이노우 에세이류 교수는 그에게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고, 그로부터 사진과 사유의 결합이 시작됐다. “교수님은 삶이 곧 사진이라는 말씀을 늘 하셨다. 사진과 삶이 일치하는 경지였다.”

일본의 이노우 에세이류 교수가 ‘사유하는 사진’을 가르쳤다면, 미국 뉴욕대의 제랄드 프라이어 교수는 “사진이 어떻게 예술적이 되는가”라는 의문을 품게했다. 두 교수는 일찌감치 그의 예술적인 진정성을 알아본 스승들이었다. 당시 그의 일본어나 영어 수준이 대학 교육을 받을 받기에 부족했지만 두 교수는 모두 포트폴리오만으로 그를 전격 합격시키는 결단을 보여주었다.

특히 제랄드 프라이어 교수의 파격은 유학 생활 내내 이어졌다. 그에게 1대 1 수업의 특혜를 제공하는가 하면, 형편없었던 그의 영어를 통역할 한국 유학생을 직접 수소문해 대동하기도 했다. 제랄드 프라이어 교수는 늘 그에게 “작가의 인생에 예술이 묻어나야 훌륭한 예술가가 된다”고 가르쳤다. 그가 말하는 예술적인 태도는 “자신의 삶을 진정성 있게 바라보고 예술로 승화하는 것”이었다.

제랄드 프라이어 교수의 가르침은 최 작가의 예술에 대한 철학을 바꿔놓았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것과 예술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의 정수였다. 그것은 곧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거짓말하지 않는 진실한 태도를 의미했다. 최 작가가 이중섭, 박수근, 반 고흐가 후대에 최고의 화가로 존경받는 이유로 ‘진성성’을 꼽으며, 자신 역시 “진정성 있는 작가로 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들이 살았던 당대에도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이 훌륭한 예술가로 인정받는 것은 그들의 삶과 사유가 작업에 오롯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사진과 함께 하는 시간은 늘 행복했지만 카메라를 놓는 순간은 지옥이었다. 평생 사진만 팠던 탓에 곤궁한 삶은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하루 중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종일 카메라가 손에 쥐어져 있었고,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토마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난 날은 공교롭게도 그의 66세 생일날이었는데, 그 날도 인터뷰 내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또 눌렀다. 기자도 예외 없이 피사체가 되었고, 이날 그를 둘러싼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예외없이 카메라에 기록됐다. 그가 이처럼 하루 온종일 오롯이 사진에 열정을 바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오늘을 사는 자신의 실존에 충실한 태도”였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셔서 상주노릇을 하면서도 장인어른 입관사진을 찍었다.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진은 내게 곧 삶이었기 때문이다.”

◇ 사진은 세상을 해석하는 매체

최 작가는 사진을 통해 ‘세상을 해석’한다. 자신과 결부된 오늘의 삶을 관조하며 세상의 문제를 나름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그가 "사진으로 기록하는 오늘은 미래 세대와 연결하는 ‘씨앗’"이라고 언급했다. “내가 본 오늘이 과거로부터 왔듯이 나의 오늘도 미래세대를 연결해주는 매개가 될 것이다.”

작가는 사진계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무림의 고수다. 포토그램이라는 단순한 기법으로 깊이있는 사유의 세계를 펼쳐낸 그의 사진에 세상은 경의를 표한다. 그런 “고수가 생각하는 좋은 사진이란 어떤 사진일까?” 궁금해 하자, 상식의 선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가 “피사체와 진정성 있게 교감할 때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했다.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피사체를 믿고 지극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노출 상태만 조절해 놓고 대상과 깊이있게 교감할 시간을 가져야 좋은 사진을 얻는다.” 최광호 ‘사진을 품다’전은 12월 12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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