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랑2
다시, 사랑2
  • 승인 2021.12.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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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열 두 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마당 뜨락에서 떨어져 몸져누우신지 며칠만에 돌아가셨다. 살아계실 때 할머니는 엄마같은 존재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 세상은 텅 빈 것 같았고, 집도 마찬가지엿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다.

바쁘게 도시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집에 혼자 있을때면 세상이 텅빈 것 같다. 그 어린 날의 감정이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인가? 삶은 가끔 외롭고 공허하다. 직장과 집안일, 인간관계의 의무감에서 해방되어 좋을 것 같은 토요일 오전, 막막함을 견디기 어렵다. 그럴 때면 생각나는 대상이 있다. 엄마다.

엄마같았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한 엄마, 늘 바쁘고 힘들었던 엄마. 지금은 집을 떠나, 자식들 기억마저 떠나보내고 있는 엄마. 그 엄마가 간절히 그리워진다. 나이가 들어서도 말이다. 그 시절의 엄마를 기억하고 엄마의 사랑을 아직도 갈구하지만 엄마는 나의 기억을 잃어버린 것 같다. 안타깝고도 안타깝다.

경쟁과 서열의 사회에서 어디서든 아들이 뛰어난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것이 홍희의 마음이다. 대학교를 가고 학점을 잘 받고 장학금을 받기를 바라고, 해외교환학생으로 견문을 넓혔으면 기대한다. 부모의 경제력으로 유학을 보낼 형편도 안 되고 어학연수 보내주는 것도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학교 4학년에 입사에 성공하고 졸업하길 또한 바란다. 이러한 기대가 욕심일 수 있으나 아이의 사촌 형은 스스로 알아서 한 터이다. 아이도 조카처럼 잘 나갔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계속 가지게 된다.

아들이 군대를 갔다. 국방일보에 ‘힘찬 발걸음’이라는 기사에 열 체크하는 아들 모습이 나왔다. 환호성을 지었다. 600명 중에 아들을 찍은 사진이 기사에 나온 것이다. 그만큼 아들은 엄마가 보기에도 잘 났다. 남들도 알아보고 인정해 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A3지로 인쇄를 해서 직장 사물함 서랍에 붙여 놓고 수시로 본다. 그런데 수료식때 동영상 화면에서는 아들의 얼굴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잘 났다고 생각하는 아들이 수료식 때는 얼굴조차 보지 못하자 엄마인 홍희의 마음은 실망감이 들었다. 상도 받지 못했다. 늘 기대했다가 실망을 반복하는 것이 아들에 대한 홍희의 마음이다. 그런 것이 아이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일임에도 말이다.

끝없이 기대를 가지는 홍희의 마음이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러나 아이는 그런 사랑을 바라지 않는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기, 결과가 아닌 과정을 칭찬하기, 실수 했을 때 다그치거나 기죽이지 않기, 잘 하는 것과 강점 파악하기, 선택한 것을 존중해주기 등 아이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해주는 것을 필요로 한다.

잘 나도 내 자식, 못 나도 내 자식이다. 잘 난 자식이 사랑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못 난 자식도 사랑으로 격려와 지지를 보내줘야하지 않을까. 엄마마저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 천지에 누가 그 아이에게 그런 사랑을 줄까.

아직도 엄마의 사랑을 받고 충족되지 못한 홍희의 텅빈 마음처럼 아이가 마음이 텅 비어 있지 않도록 다시, 사랑을 시작해야겠다. 처음 뱃속에 그 아이를 느꼈던 마음. 처음 이 세상에 태어나 엄마의 젖과 엄마의 손길만이 필요했던 아이. 서로 그 때에는 순수했다. 아이가 자라서 독립을 시키고, 스스로도 독립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영원히 독립된 존재로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어린 아이와 엄마의 순수한 사랑이 아닐까 한다. 더 이상 아들을 망치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 아들이 엄마에게서 원하는 것은 기대와 실망이 아니다. 언제나 자기를 믿고 지지하고 격려해 주는 무조건적인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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