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탕하되 섬세한 ‘흥보가’ 온다…대구문예회관 30일 양수진 판소리 공연
호탕하되 섬세한 ‘흥보가’ 온다…대구문예회관 30일 양수진 판소리 공연
  • 황인옥
  • 승인 2021.12.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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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대목 전체 2시간 30분 걸쳐 완창
동편제·서편제 섞은 ‘만정제’ 소리
서민의 애환과 해학 담백하게 표현
슬픈 ‘가난 타령’ 기쁜 ‘박 타는 대목’
흥부·놀부 등 빛나는 1인 다역 연기
우수 연기력으로 관객 몰입도 높여
대구시립국악단 비상임단원 입단
“많은 소리 전수받고 전수하고 싶어”
소리꾼 양수진
소리꾼 양수진.

판소리 완창은 진정한 소리꾼으로 거듭나기 위한 통과의례다. 완창은 한 명의 소리꾼이 길게는 8시간을 고수의 장단에 맞춘 창(소리), 아니리(말), 너름새(몸짓-발림)만으로 긴 이야기를 끌고가는 공연 형식인데, 혼자서 객석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내공 없이는 불가능한 무대다. 이런 이유로 완창 무대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때 비로소 좋은 소리꾼이라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다. 

오는 30일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흥보가’ 완창 공연을 선보이게 될 양수진(37)은 이번 공연이 두 번째 완창 도전이다. 지난해 수성아트피아에서 생애 첫 번째로 완창 무대를 펼쳤다. 두 번째 도전인 만큼 첫 공연 때와는 각오가 사뭇 다를 것 같지만, 그는 “마찬가지”라고 했다. “첫 번째 무대보다 더 원숙한 ‘흥보가’를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대구 문화예술회관 기획 ‘판소리 완창 시리즈Ⅱ’에 선보일 작품은 판소리 ‘흥보가’다. 판소리 ‘흥보가’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와 함께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다. 조선 시대 고전소설인 흥부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며, 가난하고 착한 흥부와 욕심 많은 부자 놀부의 대비로 권선징악의 교훈을 판소리로 풀어낸 작품이다.

판소리 ‘흥보가’는 동편제와 서편제, 만정제 등 여러 유파로 전승되고 있다. 웅장하고 호탕하여 남성적인 동편제와 애잔하고 섬세하여 여성적인 서편제, 그리고 두 유파의 특징을 버무린 만정제 등이 있다.

양수진은 이번 무대에서 ‘만정제 흥부가’를 선보인다. ‘놀보심술 대목’부터 ‘제비노정기 대목’, ‘흥보마누라 가난 타령대목’, ‘놀보 제비몰러 나가는 대목’까지 흥보가 39대목 전체를 2시간 30분에 걸쳐 1부와 2부로 펼쳐낸다.  고수에는 남원시립국악단 수석인 임현빈이 맡는다.  

가왕 송흥록과 국창 송만갑, 박록주, 김소희, 이명희로 연결된 동편제의 계보를 이어받은 양수진은 영남대 음악대학 국악과를 졸업하고 故 모정 이명희 명창 문하에서 흥보가와 춘향가를 사사했다. 현재 ‘만정제 흥부가’(대구시 무형문화재 제8호 흥보가)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만정제 흥보가’는 만정 김소희(1917~1995) 명창이 새롭게 구상한 소리제로, 그가 여러 스승에게 배운 소리 대목 가운데 가장 좋은 대목을 적절히 조합해 동·서편제 소리의 특성을 고루 갖춘 새로운 창법을 시도한 소리제다. 동편제의 호탕하고 웅장하면서 진중한 소리 특색과 만정 선생 특유의 섬세하고 깔끔한 더늠이 덧붙여져 동·서편 소리의 좋은 점을 두루 통섭한 것이 특징이다.

양수진이 지난해 ‘만정제 흥보가’ 완창에 도전한 것은 소리를 시작하고 24년 만의 일이었다. 이미 오래전 故 모정 이명희 명창(대구시무형문화재 8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에게 전 대목을 배웠지만 소리가 몸에서 농익도록 기량을 쌓느라 완창 발표를 계속해서 미뤄왔다.

“1년이든 2년이든 단 기간에 걸쳐 판소리 한바탕을 다 배웠다고 해서 바로 완창 무대에 설 수 있는게 아니에요. 스승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귀한 소리를 자기것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 무한 반복적인 연습과, 스승님의 성음과 기교를 잘 익혀서 내 몸에 익을 때까지 꾸준하게 노력하여 내공을 쌓아야 가능하죠." 

양수진은 맑고 깨끗한 성음과 흡입력 있는 힘있는 소리를 동시에 구사한다. 청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유의 애잔한 소리는 심금을 울린다. 특히나 조선 후기 서민들의 애환을 해학과 비장함으로 풀어내는 ‘만정제 흥보가’에 적격이라는 평을 받는다.

양수진의 ‘흥보가’는 팔색조의 매력으로 넘실댄다. 흥보가 17 대목 중에서 ‘가난 타령’에서는 원망과 슬픔의 화신으로 빙의하고, ‘제비노정기’ 대목에서는 제비가 흥부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강남에서 출발해 중국 남방을 거쳐 조선 땅 흥보 집까지의 비행 여정을 긴 호흡으로 박진감 있게 소화하고, 흥부가의 백미인 ‘박 타는 대목’, ‘제비 몰러 나간다’에서는 정점의 환희로 이끈다.

흥부와 놀부, 흥부 마누라와 놀부 마누라, 마당쇠, 제비, 자식 등 1인 다역을 소화하며 객석을 휘어잡는 비결 중에 뛰어난 연기력도 한몫한다. 초등학교 때 연기학원을 다닌 이력이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판소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소리에 좀 더 풍요로운 연기가 가미되어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평을 듣는다.”

재능이 많아서 진로를 결정할 때 고민이 필요했다. 성악과 판소리를 선택지로 두고 고민을 했다. 작은 어머니의 조언으로 판소리를 택했지만 바로 잘한 선택이라는 믿음이 왔다. 북장단과 소리만으로 인생의 희노애락을 드라마틱하게 펼쳐내는 판소리의 매력에 단숨에 사로잡힌 것.

어린시절부터 음악과 연기 등 예술적인 끼로 똘똘 뭉쳤던 그에게 판소리는 물 만난 고기였고, 누구보다 일찍 두각을 드러냈다. 소리한지 11년만에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실력을 인정 받았다. 명창부에서 최연소의 나이로 상주전국민요경창대회(2007년) 대상(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전국판소리경연대회에서 명창부 종합대상인 국회의장상 그리고  문화관광부장관상을 2번이나 수상했다. 

그는 올해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대구시립국악단 비상임단원으로 입단해 화제를 모았다. 대구시립국악단에 소리꾼이 입단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대구에서 소리꾼의 입지가 좁다는 이야기다. 그는 바로 이 대목에서 “투지가 불탄다”고 했다. 위로는 스승들로부터 더 많은 소리를 전수받고 아래로는 후배들에게 판소리를 전수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대구에서 판소리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싶어했다.

“서울을 오가며 신영희 선생님께 ‘만정제 춘향가’를 배우고 있어요. 계속해서 내 공부를 하면서 후배들과도 함께 할 것입니다.”

“판소리에 세상의 모든 소리가 표현되어 있다”고 말하는 양수진. 판소리는 사람소리, 귀신소리, 새소리, 심지어 바람소리까지 세상의 소리라는 소리는 두루 섭렵하고, 트로트나 성악, 가곡 등 다양한 장르의 호흡법까지 아우른다는 의미였다.

그가 “판소리의 매력은 끝이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판소리에 담긴 깊이있고, 진한 소리들은 세상을 더 넓게 보도록 이끄는 방향타가 되는 것 같아요.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명창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꾸준하게 후학들을 양성하며 우리 소리를 이어갈 것이다.” 공연은 30일 오후 7시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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