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딱 고개
깔딱 고개
  • 승인 2021.12.15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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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거실 벽에 걸린 달력이 문을 여닫을 때마다 흔들리고 있다. 마치 오 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처럼 안간힘으로 버텨내고 있다. 열몇 장의 두툼했던 제 옷을 모두 벗고, 이제는 달랑 속옷 한 장 입은 모습이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린다. 녀석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 2021년도의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한다. 앞으로 겨우 몇 밤만 자고 나면 2021년도 안녕이다. 하지만 다시 새로운 2022년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맞이할 새로운 해다. 다시 희망을 그려본다.
힘들고 지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은 '조금만 더' '한 번만 더'의 마음이다. 정말 포기하고 싶어서 그냥 모든 걸 확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이 올 때 있다. 입에서는 '더 이상 못하겠어' '그만할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그런 순간에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누군가의 말 한마디였다. 그 사람은 그냥 지나며 던진 말일지 모르지만 다시 일어날 용기를 주곤 한다.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정도로 힘들게 오르는 고개라고 '깔딱 고개'라고 이름 붙여진 지명이 전국적으로 많이 있다. 험한 산을 오를 때면 깔딱 고개를 한 번씩 만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깔딱 고개 지점에서 귀인처럼 누군가 나타나 지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들은 하산하는 등산객이다. 더 이상 오를 힘이 없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그들이 건넨 "다 왔습니다." " 조금만 더 가시면 됩니다." 그 말 붙들고 산을 올라갈 수 있었다. 잘 알다시피 그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몇 번을 속았는데 또 믿고 산 정상을 향해 걸었다.
우리 삶에 깔딱 고개가 많다. 이쯤에서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충분히 잘 살아왔기에 여기서 포기하더라도 뭐라고 할 사람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돌아보니 그때마다 "다 왔다."라며 '조금만 더'를 외쳐 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참 고맙다.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가면 코치들이 잘한다고 칭찬하며 '하나만 더', '하나만 더'를 외쳐 주는 코치가 있다. 처음엔 '10개만 더'라고 한다. 그리고 10개 다하면 '3개만 더'라고 한다. 그리고 3개 다 하면 '딱 하나만 더'를 외친다. 그들은 마치 산을 오를 때 하산하며 우리에게 "다 왔습니다."하던 사람들과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하나 더'가 운동의 효과가 크다. 운동을 해본 사람은 안다. 사실 운동의 진짜 효과는 마지막에 그 한 두 번의 하나만 더에 있다는 것을. 가령 스쿼트 50회를 한다면 운동의 효과는 45회 이후 5번에 있다. 마지막 5회 정도를 위해 45번의 움직임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훌륭한 코치들은 끝에 집중한다. 그리고 그 마지막 한 번에 집중하고 포기하지 않는 선수들을 눈여겨본다.

물이 100도에서 끓는데 물이 안 끓는다고 80도에서 불을 꺼버리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98도 99도에서 꺼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 깔딱 고개만 넘으면 고지가 눈앞인데 안타깝다. 성공은 늘 포기를 앞에 세운다. 포기할 수밖에 없고 포기해도 무방한 달콤한 이유와 핑계들을 바닥에 사탕 깔아놓듯 펼쳐 둔다. 그럼 많은 사람은 그 사탕을 입에 물고 달콤한 현실로 다시 돌아가 버린다. 7부 능선, 9부 능선까지 잘 넘어 놓고는 마지막 고지를 바로 눈앞에 두고 멈춰서는 안 된다. 포기해야 할 수많은 이유가 우리 삶에 많다. 하지만 그 포기의 유혹 걸려 넘어지면 성공은 늘 멀리 달아나 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 삽화 중에 황새가 개구리를 삼키려 하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을 잘 보면 재미있는 것은 개구리의 손 위치다. 개구리는 황새가 자신을 목으로 넘기는 그 순간에도 포기를 하지 않는다. 개구리의 손은 황새의 목을 조르고 있다. 즉, 자기를 못 넘기게 목을 꽉 조이고 있다. 포기라는 단어는 김장철에만 사용해도 충분하다. 한 포기 두 포기.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 아이가 일어나 걷기를 시작할 때, 자전거를 배울 때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야 한다. 이제 다 왔다. 그러니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가보자. 이제 머지않아 쉴 때가 곧 온다. 그때 가서 시원한 바람맞으며 편하게 쉬기로 하고 지금은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고지가 바로 눈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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