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후보의 ‘비천(卑賤) 타령’
이재명 후보의 ‘비천(卑賤) 타령’
  • 승인 2021.12.21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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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해남 객원논설위원·시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자신을 ‘비천한 환경(진흙)에서 자란 꽃’으로 비유했다. 얼핏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천하다는 표현에서 감정의 샘이 작렬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으나 시장이 되고,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것은 자랑할만하다.

그런데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을 “비천(卑賤)하다”고 한 것은 민주적인 사고와 동떨어진다. 왕조시대는 귀족, 양민, 천민이라는 신분이 구분되어 있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로봇, 우주탐사 등 4차산업혁명이 불붙고 있다. 다양한 직업군에서 저마다 최고의 기술을 연마하며 첨단시대를 달군다. 직업에 따른 신분 구분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더구나 민주사회에서 직업의 귀천이 없는데도 이 후보가 몇몇 직업군을 나열하면서 ‘비천’의 울타리를 친 것은 독단에 가깝다. A. 링컨 전 미국 대통령도 “천한 직업은 없다. 다만 천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고 했다. 비천의 사전적 뜻은 ‘지위나 신분이 낮고, 하는 짓이나 생긴 꼴이 고상한 맛이 없다’이다. 그렇다면 가난과 비천은 상관관계가 없다.

이 후보는 “아버지는 화전민 출신에 청소부, 어머니는 화장실 앞에서 사용료를 받으며, 휴지를 파는 상인, 큰 형은 탄광 광부에서 건설노동자(추락사고로 좌측 다리 절단), 누나는 요양보호사, 여동생은 야쿠르트 배달과 미싱사(화장실에서 사망), 남동생은 환경미화원”이었다며, 자신의 환경을 비천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이 후보의 선친은 청소부 이전에 공무원을 하였다는 설이 있고, 그의 형 한 분은 회계사, 자신은 변호사였다. 이 정도면 이 후보의 환경이 같은 시대 일반적인 서민들에 비해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이전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1,000달러 미만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전에는 국민 대다수가 절대빈곤에 허덕이던 터라 직업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가난한 시골에서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딸이 도회지 ‘가정부’로 간 것도 부러움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필자는 솔직히 어린 시절 화장실 앞에서 사용료를 현금으로 받는 사람이 너무 부러웠다. “적어도 밥을 굶지 않겠지”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채소장터’를 두리번거리며 양배추 껍질을 주워 삶아 먹곤 했던 절대빈곤의 시절. 신문 사회면에는 연탄가스 중독 사망, 복어 알을 먹고 전 가족 사망 등 슬픈 소식이 연이어 실리곤 했다. 그렇다고 가난을 핑계 삼아 흉포한 살인을 하거나, 가족끼리 쌍욕을 하진 않았다. 오로지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노력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후보는 “비천한 집안이라서 주변을 뒤지면 더러운 게 많이 나온다”고 했다. 이 말 한마디로 ‘감성팔이’도 하고, 형수 욕설과 인권변호사로서 조폭 변호, 조카의 살인 변호 등 껄끄러운 문제를 단박에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했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도 환경미화원, 미싱사, 야쿠르트 판매원, 건설노동자 등을 하면서 나름대로 긍지를 가지고 가족 부양과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비록 가난할지언정 비천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물며 직업에 따라 신분의 고하를 구분 짓는다는 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이다. 오죽했으면 야권에서 “가난하게 큰 사람은 모두 형수에게 쌍욕을 하고, 조폭 살인자를 심신미약자로 변호하지 않는다“고 비난할까. 이 후보 자신이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말 독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혹여 이 후보가 자신의 ‘과(過)’를 묻어버리려고 이런 비유를 했다면 솔직히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옳다. 나라의 지도자라면 지금도 가난과 고된 노동 속에서 가족과 자식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함께 동행하는 아름다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 건전한 진흙에서 연꽃도 피고, 살아있는 개펄에서 조개류와 낙지가 잡힌다. 주위에서 이 후보를 연꽃으로 비유하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로 보일 수 있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 어떤 덕목보다 ‘정직과 성실’이 우선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 후보가 지금이라도 “살다 보니 공(功)·과(過)가 있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저의 허물은 깊이 반성하고, 선친이 화전민의 삶을 깨고 도회지로 진출한 것처럼 코로나19로 지쳐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드리기 위해 대변화를 이루어 내겠습니다”로 고쳐 말하면 어떨까 싶다. 국민은 지쳐있고, 경제성장은 멈춰 있다. 민생고에 허덕이는 국민에게 활력 넘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게 정치인의 도리이다.

사람들은 ‘삼국지’를 보면서 승리한 조조보다 덕장인 유비를 더 사랑한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어려울수록 아우르고 통합하는 리더십을 원하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들의 올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가 ‘묘서동처(猫鼠同處)’이다. 고양이와 쥐가 한곳에 있다는 것은 ‘대장동 게이트’를 두고 정부와 도둑이 한통속이 됐다는 경고다. 이 후보는 ‘비천 타령’보다 ‘대장동 특검’부터 실천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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