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송년 인사
[문화칼럼] 송년 인사
  • 승인 2021.12.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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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쏜살같은 세월이라더니 벌써 한 해가 다 저물었습니다. 하루하루는 긴 듯하지만, 한 달 일 년은 어찌나 빨리 지나가는 지요. 특히나 제 나이 때는 시간의 흘러가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다고들 하더군요. 젊은 날의 시간과 다른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올 한해 코로나19로 인하여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지만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살고자 노력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어 놓은 것 없이 한해가 훌쩍 가 버렸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쉽지 않은 시절입니다. 하지만 한해를 다 보내고 새해를 앞둔 지금, 새해에 대한 희망으로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올해의 어려움은 올해로 끝내고 내년에는 모든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요즘 같은 때는 작은 것들의 소중함이 더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최근 넷플릭스의 ‘먹보와 털보’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사람 중의 한명입니다. 여행 프로그램인지 먹방인지 조금 아리송하지만 아무튼 단순히, 자유롭게 다니며 먹고 노는 이야기인데 인기가 많더군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저는 몽골과 이런저런 인연을 가지고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몽골 여행은 자주 간 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초원의 광활함, 사막의 모래바람이 내는 소리 그리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못내 그립습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다니며 유유자적하는 여행의 즐거움이 그리운 시절입니다. 모두들 새해에는 그럴 수가 있겠죠.

그리고 언제나 아무걱정 없이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그리워집니다. 힘든 현실 속에서도 언제나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말입니다. 그것이 물리적 공간이든 아니면 무형의 공간이든…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세상의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평행이론을 배경으로 한 작품 ‘1Q84’의 덴고와 아오마메 같은 사람들이죠. 그들이 각자의 안식처에서 위협을 피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에서 묘한 아늑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해변의 카프카’ 등 여러 작품에는 짙은 슬픔 혹은 어두움 속에 안식처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하루키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런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도 소용없는 희극을 연출하기 위해서 매달 임금을 받고 생활해 나가는 관리며 서기, 수위, 문서 배달부들이 비단 이 재판소만이 아니라…”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귀족 청년 네흘류도프의 정신적 부활을 알리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를 보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같은 때에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수많은 사연을 접할 때 부끄러움과 함께 제 몫을 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일하는 대구문화예술회관은 시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기관입니다. 우리가 공을 들여 하는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가?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가? 다시금 자문해 봅니다.

한해가 저물어가는 세모(歲暮)에 시민들에게 작은 기쁨이라도 될 수 없을까 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만드는 사람의 입장이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고자 애를 썼습니다. 함께 즐거울 수 있을까? 팍팍해진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을 수 있을까? 2021송년음악회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가닥을 잡아 나갔습니다. 특히 저희가 가진 자산을 잘 살리면서도 관객들의 눈높이와 맞출 수 있도록 노력 했습니다. 그래서 대구시립국악단과 디오 오케스트라가 함께 프로젝트 관현악단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국악단과 서양오케스트라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함께 소리를 내게 됩니다. 이는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콘셉트입니다. 서로 다름의 합이 장점으로 드러나는 사운드를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은 검은 호랑이 해라고 합니다. 새해에는 시커먼 호랑이의 기세로 코로나가 저 멀리 쫓겨나 버리기를 바랍니다.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공간에서 일하는 저 같은 사람은 진정 시민에게, 또한 예술인에게 봉사하는,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자세를 다시 한 번 가다듬어 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시고, 새해에는 모든 분들 내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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