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의 비보호 좌회전
관계에서의 비보호 좌회전
  • 승인 2021.12.2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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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운전할 때 한 번씩 만나게 되는 표시가 있다. 그것은 빨간불, 노란불, 파란불 신호등 옆에 좌측으로 90°로 인사하듯 누운 화살 표시, 바로 ‘비보호 좌회전’ 표시다.

비보호 좌회전(非保護左回轉)은 차량의 이동이 적은 교차로에서 교통의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신호가 파란 신호일 때 반대편 마주 보고 오는 차선에서 차가 없다면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 필요 없이 좌회전을 할 수 있는 운영방식을 말한다. 이 운영방식은 좌회전 신호가 들어올 때까지 굳이 기다릴 필요 없어서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량과의 사고 위험이 없는 상태에서 알아서 좌회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운전자로서는 시간도 줄일 수 있고, 교통의 흐름도 원활하게 해 주니 일석이조의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관계도 비보호 좌회전의 순간이 있다. 즉 좌회전 신호를 주지 않아도 상황을 보고 좌회전을 해야 할 순간이 많다. 그럴 때 신호가 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상황 봐서 이때다 싶으면 좌회전하면 된다. 가령 ‘사랑해’라는 말과 같은 힘이 되는 말들은 누군가 신호를 보내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때다 싶으면 하면 된다. 말은 하지 않더라도 사랑해라는 말을 해달라는 식의 요구가 있을 때만 “사랑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아가다가 어느 일상의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 “사랑해”라는 말을 해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는 모두 좋아한다. 듣는 사람도 좋고, 말하는 사람도 좋은 기분이 든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행복해” “수고했어” “힘내”라는 말 모두 비보호 좌회전이다.

그런데 비보호 좌회전도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비보호 좌회전은 운전자가 교통의 흐름을 주의 깊게 보고 사고가 나지 않을 상황에 안전하게 해야 한다. 판단은 운전자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운전자의 주체적인 상황판단이 필요하다. 만약 사고가 난다면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비보호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그래서 비보호 좌회전은 빨간 신호가 켜졌을 때는 할 수 없다. 빨간 신호라는 소리는 운전자가 운전하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파란 신호가 켜져서 차량이 교차로로 진입을 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렇기 때문에 빨간불에 비보호 좌회전을 하게 되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 좌회전을 하는 것 그 자체로서 신호 위반이 된다.

사람들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빨간불이 켜졌을 때(화가 난 상황이거나, 갈등이 있는 상황 등)는 주위를 잘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사람이 눈치가 없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을 보면 해야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럴 때는 신호를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빨간불일때는 무조건 신호만을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다. 예외로 빨간불이 켜졌을 때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말과 행동이 필요한 순간도 있으니 그것은 각자 방법을 잘 찾아보기 바란다. 아무튼 비보호 좌회전을 하려면 관계에서의 파란불과 빨간불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구분을 잘하고 못하고는 각자의 몫이니 이또한 잘 알아서 판단하면 좋겠다.

열심히 잘 살아오던 사람도 어느 날 이유 없이 힘이 빠질 때도 있고, 갑자기 용기를 잃을 때도 있더라. 그럴 때 누군가 나에게 “사랑해” “네가 있어 참 좋아”라는 말을 해주면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기곤 한다. 마치 그것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사막 위를 걷다가 목이 타들어 가고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만난 오아시스와 같다. 콕 집어서 말하지 않아도 “사랑해” 말을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안아주면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다.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았는데도 친구의 “보고 싶어”라는문자 한 통이 힘이 되는 순간이 있다. 특별히 기념할 날이 아닌데 받게 되는 꽃, 작은 선물은 행복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비보호 좌회전 신호 앞에서 답답이처럼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지 말자. 상황 봐서 좌회전하자.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기쁘게 하는 ‘비보호 좌회전’을 실천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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