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우 칼럼] ‘명교죄인’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에 부쳐
[윤덕우 칼럼] ‘명교죄인’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에 부쳐
  • 승인 2021.12.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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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우
주필 겸 편집국장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를 모을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준비를 마치고 반박하려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페친 이창형씨가 지난 26일 페북에 올린 글이다. 국정농단 사건 등으로 징역 22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명교죄인(名敎罪人)’ 박근혜 전 대통령(70) 이 24일 특별사면됐다. 박 전 대통령은 31일 0시부터 자유의 몸이 된다. 2017년 3월31일 구속된 뒤 1736일만의 일이다.

‘명교죄인(名敎罪人)’은 청나라 5대 황제 옹정제가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죄도 별로 없는 당대의 문장가 전명세(錢名世)에게 내린 죽음보다 무서운 형벌이다. 사실 전명세의 죄는 별것이 아니었다. 옹정제의 처남이자 그가 가장 총애했던 공신 연갱요(年羹堯)를 치켜세운 시를 썼다는 것이다. 옹정제는 황권이 안정되자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정적제거에 착수했다. 제거 1순위가 연갱요였다. 옹정제는 동시에 연갱요와 가까운 문인들이나 불온한 한족들도 길들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대 문장가인 전명세에게는 천고에 길이 남을 치욕스런 오명을 씌워 다시는 재기할 수 없도록 했다. 옹정제는 고심 끝에 두 가지 색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우선 전명세를 파직한 뒤 친필로 ‘명교죄인(名敎罪人)’이란 글을 하사, 현판을 만들어 그의 집 대문에 걸게 했다. 명교는 유교의 별칭이다. 유교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유학자 전명세에게 ‘명교죄인’은 죽음, 그 이상의 형벌이었다. 옹정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문장이 뛰어난 관리들에게도 전명세에 대한 비판시문을 짓도록 했다. 옹정제는 이런 풍자시문을 책으로 엮어 전명세에게 판각을 하게 한 뒤, 전국 각 성에 배포하도록 했다. 현대판 ‘드루킹 댓글 작업’이다. ‘명교죄인’은 전명세 개인에게만 가해진 형벌이 아니다. 반청복명을 외치는 한족들의 입을 막아 잠재적 저항세력을 궤멸시키는 고도의 전략이었다. 일종의 적폐청산이자 보수세력 섬멸 작전이었다.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입장이 ‘명교죄인’이나 다름없다. 뇌물을 엄청나게 받았다는 박 전 대통령은 사면됐더라도 당장 돌아갈 자기 집도 없다. 문제는 박근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보수세력들이 다함께 ‘명교죄인’이 됐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보수의 이미지를 도덕적 오명으로 먹칠한 작업이었다.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수는 1577만표(득표율 51.55%)였다.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득표수는 1469만표(48.02%)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서신’을 모은 책이 12월 말 출간된다. 박 전 대통령은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라는 이 책의 서문도 썼다. 박 전 대통령은 서문에서 “서울구치소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4년9개월로 접어들고 있다”며 “돌아보면, 대통령으로서의 저의 시간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드리기 위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 지도 모르게 노력했다”고 술회했다. 하지만 믿었던 주변인물의 ‘일탈’로 인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모든 일들이 ‘적폐’로 낙인찍혔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묵묵히 자신의 직분을 충실하게 이행했던 공직자들이 고초를 겪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고, 무엇보다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던 이들이 모든 짐을 제게 지우는 것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도 느꼈다”고 토로했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지지자의 편지에 “거짓은 잠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세상을 속일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그 모습을 반드시 드러낼 것으로 믿고 있다”고 답했다. 또 “선동은 잠시 사람들을 속일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겠지만, 그 생명이 길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형식적으로는 합법적인 모습을 가지더라도 실질적으로 정당성이 없다면 이를 법치주의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금은 한 줄기 빛조차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홀로 내동댕이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저를 지지하고 믿어 주시는 국민이 계시기에 잘 이겨낼 것”이라며 “어둠은 여명이 밝아오면 자리를 내주면서 사라질 것이고,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진실도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국민 여러분을 다시 뵐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 박 전 대통령은 “어려운 시기이지만 국민 여러분 모두 힘내시기를, 그리고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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