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그리움
겨울방학, 그리움
  • 승인 2022.01.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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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겨울방학은 길다. 여름방학은 길어도 짧게 느껴지는데 겨울방학은 추워서인가 몸이 얼어서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아 길게 느껴진다. 그래도 겨울방학은 길어서 좋다.

방학이 시작되는 날, 선생님이 나눠 주신 ‘슬기로운 방학생활’ 교재와 방학숙제, 유의사항 안내문을 받는다. 선생님도 방학이라 즐거우신 듯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웃음으로 마무리한다. 헤어짐은 슬픔을 낳지만, 방학은 즐겁다. 잠시만 헤어지고 다시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만날 수 있는 확신이 있으면 헤어짐도 즐겁다. 오히려 방학 동안 친구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리움이라는 기분 좋은 감정을 방학 때 처음 배웠을 것이다.

반 아이들은 긴 겨울 동안 만날 수 없어서 친한 친구, 친하고 싶었던 친구의 주소를 적어 두고, 편지쓰면 답장 꼭 하라는 말도 한다. 철썩같이 편지를 쓰겠다, 답장을 하겠다 대답을 하지만 막상 편지 쓰는 일은 많지는 않다. 그래도 크리스마스 카드는 써서 보낸다. 전화라도 있으면 연락하기가 좋지만, 1978년, 그 시절에는 전화기가 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컴퓨터, 휴대폰은 더욱 없어서 연락을 하자면 편지를 써야 했다.

크리스마스 카드도 직접 만든다. 미술 솜씨를 일상생활에 뽐낼 수 있는 기회다. 홍희는 몇 개는 사고, 몇 개는 따라 그린다. 가을에 따 둔 은행잎이나 예쁜 나뭇잎, 꽃잎을 책갈피에 꽃아서 잘 말린 것을 사용한다. 토끼풀 잎을 말려두기도 한다. 켄트지에 붙이고, 사인펜이나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적는다. 물감을 사용해서 수채화처럼 그리는 아이들은 화가가 될 소질이 있는 아이다. 홍희는 미술에는 소질이 없어 만들어 놓은 카드를 볼 때마다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산 카드가 훨씬 예쁘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담아 친구들에게 카드를 보낸다. 선생님께는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을 둘 다 보낸다. 어른들에게 큰 절 드리듯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가 연하장에 담긴 것처럼 말이다. 학교가 있는 마을에 우체국이 있다. 추운 겨울, 꽁꽁 언 땅을 밟으며 우체국으로 향하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서 풀로 꼭꼭 붙여 우체통으로 넣으면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에 마음이 설렌다.

보내는 기쁨만큼 받는 기쁨도 크다. 우체부아저씨가 마을에 와서 집집마다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아저씨가 홍희네 집을 그냥 지나칠까, 마당으로 쑥 들어설까 긴장하며 지켜본다. 그냥 스치고 지나가면 뭔가가 마음에서 쑥 빠져나간 듯 허허롭다. 내일이면 오겠지 하고 기대를 하며 아쉬움을 달랜다. 그러다 집 안 마당으로 아저씨가 들어오면 세상이 밝은 빛으로 가득 찬다. 아니 아저씨가 등 뒤에 밝은 등을 가지고 오듯 아저씨 주위가 밝고 따뜻한 온기로 휩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착시 현상일까 싶을 정도다. 봉투가 몇 개이냐에 따라 기쁨의 크기는 달라진다. 많을수록 기쁨은 크다. 한 개이면 더욱 소중하다. 이름을 보면 친구얼굴이 떠오르고, 친구와 지냈던 학교생활이 떠오른다.

긴 겨울방학, 멀리 있는 친구와 주고 받는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으로 겨울방학은 그리움으로 물든다. 방학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듯이 방학이 끝나서 빨리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한다. 방학이라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좋지만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혼자 할 때보다는 좋은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이 더 좋다.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생각나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처럼 멀리 있어도 보고 싶은 사람이 그리운 사람이다.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마주하니 반가운 것은 그리움을 처음 느낀 친구들이기 때문에, 뇌 속에, 마음 속에 각인이 되어 있어서인가. 홍희는 지금 그 친구들과 단체 카톡을 만들어 안부를 주고 받는다. 그 때 마음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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