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던 마당이 환해졌으면
어둡던 마당이 환해졌으면
  • 승인 2022.01.16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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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우연한 기회를 통해 범유행 시대, 결혼에서 출산까지 힘겨운 시간을 넘나들고 있는 신혼의 주부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인터뷰에 응한 대상은 물론 취재를 한 나 역시, 지금의 절망적인 상황과 무력감에 대해 한 번 쯤 토로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자신의 감정을 재평가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많이 힘들지요'라는 인사에 슬며시 잠든 아기를 훔쳐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닌걸요.'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서른셋 신혼의 초보 엄마, 코로나 블루에 더해질 법한 산후우울증까지,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그녀의 모습이 애잔하다.
아기를 출산하기 전까지 그녀는 아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유치원 음악 선생님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질문을 드렸다.

질문) 타임머신을 타고 코로나 전, 또는 후로 간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뭘까요?

답)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 앞 목욕탕을 다녀올 거예요. 마스크를 벗은 채 산책을 즐기고 바나나우유를 먹으며 집으로 돌아와 편안히 낮잠에 들 겁니다. 오후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며 팝콘과 콜라를 마실 겁니다. 저녁 퇴근길엔 친구들을 만나 야경 좋은 단골집을 찾아가 맛있는 밥을 먹고 시원한 생맥주 한 잔, 곁들이며 못다 한 악수와 건배를 나누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노래방에 들러 실컷 춤추며 노래하고 싶어요.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드네요. 참, 별일 아닌 일들이 지금은 별일이 되었네요.

질문) 코로나 19를 마블이나 DC에 나오는 빌런에 비유하자면 어떨까요?

답) 마블 어벤져스에 나오는 타노스 같아요. 영화에선 타노스의 손짓 한 번에 세상 모든 사람이 반으로 사라지거든요. 평범했던 일상이 하루아침에 고요하고 슬프게 변해버려 사람들이 무척 힘들어해요. 코로나로 인해 한순간에 변해버린 지금, 우리들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결혼을 준비할 즈음 갑자기 코로나가 들이닥쳤죠. 결혼식 준비로 한창 돈이 많이 들 때였는데 유치원 음악선생이던 전, 수업을 거의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월급이 확 줄어들더군요. 그 바람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매일 뉴스를 보며 인원제한을 확인해야 했어요. 청첩장을 어디로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고민도 많았습니다. 초대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결혼식을 올린 후, 해외로 신혼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제 오랜 꿈이 사라졌을 땐 참, 허탈감마저 들었어요. 신혼여행을 부산으로 가게 될지 상상도 못 한 일이었거든요. 물론 국내도 좋은 데가 얼마든지 많지만, 해외보단 국내는 가까워 맘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거든요.
아직 진행 중이란 게 믿어지지 않아요. 금방 끝날 줄 알았거든요. 범유행 시대에 결혼하고 임신까지, 아이가 곧 백일이 됩니다. 다들 백신을 맞을 때 전, 약 한 알조차 조심히 먹어야 할 임신 중에 있어 얼마나 많은 시간, 갈등했는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주위로부터 '아직은 임산부에 대한 임상시험이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자주 전해 듣다 보니 혼란의 구렁텅이 속에 더 깊이 빠져드는 느낌이랄까, 헤어 나오기가 힘에 부쳤어요. 코로나 이전의 임산부들이 간다는 '태교여행'은 고사하고 막달에 감염될 경우, 산모와 아기가 함께 격리되어 나 홀로 출산을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외롭고 무서울지. 제대로 된 산후조리도 못 한다는데 말이죠.

엄마가 되고 보니 이젠 또 아기에게 마스크를 씌울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맘이 들어요. 곧, 봄이 오고 아이가 자라 밖으로 나가자고 조를 텐데 걱정입니다. 회색 하늘과 미세먼지, 거기에 코로나 마스크까지…. 한참 표정을 보고 눈 맞춤하며 배울 시기에 마스크 너머, 반 토막 세상을 숨차게 뛰어놀아야 할 생각을 하니 안타까운 맘 이루 말할 수 없네요. 다행이라 말하긴 그렇지만 그런데도 나 혼자가 아닌 다 함께 겪는 일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하루빨리 코로나 19가 끝나 잠시 어긋난 일상이 제자리에 놓이기를 바라봅니다.
"미술 시간이었어요. 하늘을 그리라고 했더니 전부 회색 크레파스를 들고 칠하더군요. 어른이라는 게 참, 부끄러웠어요." 오랜 기억 속, 잊히지 않은 채 깊이 박혀 있는 수업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는, 편지의 추신 같은 그녀의 이야기 하나가 내 맘에 들어 뿌리를 내린다. 한계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넘나드는 것은 아닐까. 계절이 오고 가고 또 그렇게 지나가듯, 유행도 지나가는 것이리라. '범의 해, 범유행이 여기서부터가 아니라 여기까지만'이기를. 어둡던 얼굴마당이 환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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