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아무튼 시리즈
[문화칼럼] 아무튼 시리즈
  • 승인 2022.01.19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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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아무튼, 으로 시작하는 제목의 책들이 있다. 주제도 다양하다. '아무튼, 피트니스'로 시작하여 '아무튼, 떡볶이' 그리고 술집, 하루키 등 현재 40여 가지에 걸친 책이 나왔다. 나는 우연히 이 책을 접하고 몇 권을 재미있게 읽었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은 나에게 기쁨이자 즐거움이 되는,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를 담은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책에 적혀있는 설명이다. 특이하게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낸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기획에 즐거운 책이다. 처음 이 시리즈를 접할 때 글에 관한한 초보가 써나가는 것으로 오해했다. 그러나 글의 내공과 이력이 다들 예사롭지 않았다.

나는 시리즈 중 몇 권을 가지고 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것은 '아무튼, 산'이다. 한마디로 저자의 성장일기라고 규정해도 무방한 내용이다. "반복되는 날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 아주 좋지도 그렇다고 썩 나쁘지도 않은 날들. 나는 분명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을 원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 무엇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의 나날 속에 문득 산에 가야겠다는 생각. 그로부터 우연과 필연이 겹쳐 산과 함께 산을 중심으로 살아가게 된다. 산으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그 가운데 산은 다른 산을 기대하게 되며 거친 숨을 내뱉고 땀 흘리는 가운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기쁨을 얻게 된다. 그리고 히말라야를 비롯한 수많은 산을 걷는 동안 더 강해지고 싶어 한다. "지금도 수없이 좌절하지만 훌훌 털고 금세 회복한다. 방법은 단순하다. 산에 가면 된다. 산을 오르고 달리고 나면 적어도 산을 오르기 전보다는 어떻게든 나아진다." 이렇다면 우리도 산을 오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무튼, 서재'를 쓴 이는 목수다. 그러나 그는 나무만 만지는 사람이 아니다.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인문학적 소양과 뚜렷한 가치관을 지녔다. 저자는 자칭 서재 전문 목수라고 한다. 그러니 이 책에는 서재에 담는 책상, 책장과 의자, 책 뿐 만아니라 텔레비전까지 다룬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책상과 책장에 어려 있는 목수의 땀에 대하여 숙연해지기 까지 한다. 목수는 아직 자신이 만든 제대로 된 책장을 자신의 서재에 두지 못했다. 책상은 전시회 마치고 어찌 들여 놓았는데 책장은 손이 많이 가고 생각보다 고가라서 아직 이란다. 그동안 만들어서 팔기는 했지만 차마 자신의 서재에 들여 놓지 못했다는 얘기에 장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목수는 말한다. 한국 애서가들이 가진 책장의 조악한 수준은 아직 한국의 애서 문화가 문명화 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한다. 나 역시 같은 수준 이었다. 그러다 이 책을 접한 즈음에 마침 이사를 하게 되었고, 제대로 된 책장을 짜 맞추게 되었다. 최고급 자재는 아니지만 소나무로 양 벽면과 천장까지 꽉 채워 넣은 서가를 바라보면 은은한 솔 향과 더불어 항시 흐뭇한 마음이다. 남향의 두 번째로 큰방에 마련된 서재에 앉아 환한 햇살 속에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는 기쁨은 남다르다. "'현대인은 병들어 있다'고 많은 사람이 진단한다. 원인에 대한 분석만큼 처방도 다양하다. 목수로서 나의 처방은 이것 하나다. 서재를 가져라. 당신만의 서재를 가져라. 명창정궤. 밝은 빛이 스며들고 정갈한 책상 하나로 이루어진 당신만의 서재를 가지는 일이 당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아무튼, 게스트하우스'는 직업이 약사인 저자가 40여 개국을 여행하며 이용한 게스트하우스 그것도 주로 도미토리에서 지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홀로 호텔을 이용한 여행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이야기다. 철든 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에도 스며드는 외로움, 이유도 알 수 없는 외로움에 여행을 떠나고 게스트하우스를 찾는다. 인도의 작은 마을, 태국의 옛 수도 아유타야의 골목안쪽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 뉴욕의 배낭족을 위한 숙소 등에서 만나고 마음을 나눈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당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생기면 좋은 일이라기보다 여행에 꼭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누군가 말했다. 제주 올레길 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라. 그리고 도미토리에서 함께 부대끼고, 함께 즐기는 저녁 파티는 여행의 백미가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이것을 제대로 해보지 못할 것 같다. 지금은 코로나로, 더 나이 들어서는 주책이라고 눈총 받을 것 같아서다.

아무튼 시리즈는 하나만 파고드는 에세이다. 조그만 문고판 이지만 다른 책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따뜻함이 있다. 이 책들을 읽고 나면 그것을 사랑하게 된다. 비교적 평범하지만 내력, 내공이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이 써내려가는 이야기는 깊이 공감케 하는 매력이 있다. 자기 일을 사랑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둘러보면 모두가 아름다움인 것을 이 책은 웅변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나 아무튼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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