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라운드’…무기력한 삶에 술이 윤활유가 될까
‘어나더 라운드’…무기력한 삶에 술이 윤활유가 될까
  • 배수경
  • 승인 2022.01.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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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일상에 권태 느낀 중년들
알코올 농도 관련 흥미로운 실험
절제 없는 음주에 위기의 순간도
술에 비친 ‘인생의 명암’ 그려내
어나더라운드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는 “한잔 더”라는 의미의 제목부터 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술은 희로애락의 순간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0.05%’는 성인이 와인 한두 잔을 마신 상태의 혈중 알코올농도다. 노르웨이 정신과의사인 스코르데루는 “모든 인간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가지고 태어났다. 인간에게 결핍된 혈중 알코올농도 0.05%를 적절히 유지하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발해진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어나더 라운드’(Another Round)는 “한잔 더”라는 의미의 제목부터 술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원제인 ‘DRUK’ 역시 음주, 만취를 뜻하는 덴마크어다.)

마르틴(매즈 미켈슨), 톰뮈(토머스 보 라센), 페테르(라르스 란데), 니콜라이(마그누스 일랑)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고등학교 교사들이다. 역사교사인 마르틴은 한때는 촉망받는 교사였으나 이제는 지루하고 맥락없는 수업으로 학부모와 학생들의 항의를 받는 신세다.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야간근무가 잦은 아내와는 제대로 얼굴 볼 시간도 없다. 음악, 체육, 심리학 교사인 다른 친구들의 삶도 별다를 게 없다. 일상이 지루하고 무기력해진 중년의 친구들은 ‘0.05%’의 가설을 검증한다는 이름 아래 실험을 시작한다.

실험의 첫 단계는 혈중 알코올 농도 0.05% 유지하기. 그들은 수업 시작 전에 술을 마시고 음주측정기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재가면서 진지하게 실험에 임한다. 나름 저녁 8시 이후와 주말에는 금주한다는 원칙도 있다. 실험 초기, 그들의 삶은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 의외의 결과에 탄력을 받은 그들은 두 번째, 세 번째 실험에 돌입한다.

두 번째 실험은 자기에게 적합한 알코올 농도를 찾아보는 것. 음주량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실험이 계속되면서 수업시간은 더욱 활기차고 아슬아슬하던 부부관계도 해결의 실마리가 생기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문제는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없다는 것. 그들은 또다시 한 단계 더 나아간 실험을 시작한다. 일명 점화단계.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는 무모한 도전이다. 이전까지 블랙 코미디인가 했던 영화는 술이 술을 먹는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면서 누군가의 희생이라는 쓰라린 비극으로 치닫는다.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 불교 최대 경전 중 하나인 법화경의 경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자유의지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그들의 삶은 ‘술 덕분에’가 아닌 ‘술 때문에’로 변하게 된다.

사실 처음부터 그들에게 ‘0.05%’의 가설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술의 힘을 빌어서라도 용기를 내고 열정을 불러 일으켜 일상에 작은 변화라도 불러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의 첫 장면에 나타나는 “젊음이란 무엇인가? 하나의 꿈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꿈의 내용이다”라는 키에르케고르의 시 구절은 꿈을 잃어버리는 순간 젊음도 사라진다는, 다시 생각해보면 꿈이 있는 한 젊음은 계속된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자칫 비극으로 끝맺을 뻔한 영화는 마르틴이 항구에서 열린 졸업생들의 축제에서 날듯이 자유롭게 춤을 추는 장면을 통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답다’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듯 밝게 끝맺는다.

지난해 열린 제9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작·주연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를 확정지었다.

배수경기자 micbae@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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