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중요한 건 자의식 발현
우도봉·대나무·연꽃 자연 빌려
자아 폭발→주체 회복 과정 표현
4계절 내내 현장에서 작업
“육신이 한계에 다다를 때
섬세하고 대범한 운필 가능”
절제미와 부드러운 선 특징
위리안치(圍籬安置). 작가 이호억은 제주 우도에 스스로를 유배시켰다. 심지어 태평양이 보이는 타국의 작은 섬에 극단으로 가두기도 했다. 한 섬에 적어도 1년 이상 머물며 유일한 친구인 섬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섬이 제공하는 것들에 몸을 내맡겼다. 하루, 이틀, 사흘…호기심으로 시작한 유유자적한 섬 생활이 시간이 흐르면서 무료함으로 변질되어 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섬 생활이 쌓여갈수록 이번에는 또 다른 복병이 찾아왔다. 고독의 엄습이었다. 사실 범인(凡人)에게 고독은 끝없는 나락으로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그에게는 오히려 쾌재를 부를 호재였다. 스스로를 유배시킨 목적을 달성할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 그는 고독과 필연으로 묶여있는 사색의 바다에 드디어 몸을 던질 때가 되었다고 환호했다.
고독이 몸에 장착되자 내면과의 대화가 본격화됐다. 작은 섬을 뱅글 뱅글 돌면서 “이 세계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나라는 사람은 무엇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까?”, “행복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들을 쉼없이 쏟아내며 사색에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토록 갈망하던 자의식의 실체와 대면하게 됐다. 수면 아래 잠자고 있던 자의식이 붓끝을 타고 화선지 위에서 힘차게 퍼득였다.
“극단적인 고립의 상황에 내몰리기 위해 섬에 들어갔어요. 그런 정지된 상황에 놓여 졌을 때 비로소 내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죠.”
◇ 집단의식으로부터 문제의식 발화
이호억 개인전이 갤러리 오모크에서 시작됐다. 고립과 침전으로 길어 올린 자의식의 실체를 확인하는 작품 20여점이 걸렸다. 전시작 중 ‘바람의 뼈’는 제주 우도에서 나오기 직전에 그린 최신작이다. 물소가 머리를 내밀고 누워 있는 우도의 형상 중에서 머리에 해당하는 우도봉을 그린 작품이다. 밤이면 정상에 설치된 등대가 불을 밝힌다.
작품 ‘바람의 뼈’는 우도봉을 각기 다른 측면에서 그린 2점으로 구성된다. 바라본 위치에 따라 지형이나 섬의 표정이 완전히 다르게 표현됐다. 작가가 “관점(觀點)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라고 언급했다. “우도봉이 위치를 달리해서 바라보자 표정이 완전히 달라지듯이 우리의 관점 역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바람의 뼈’는 우도봉을 아주 느린 운필로 한 올 한 올 세밀한 선으로 형상화했다. 범접할 수 없는 절제미와 부드러운 선의 터치가 화면을 주도한다. 작가 자신을 극한으로 내몬 결과다. 그는 현장에서 대상을 직접 보고 그리는 스타일을 고수한다. 그리는 시점을 한여름 아니면 한겨울을 주로 활용한다. 무더위나 강추위에 육신을 내몬 후에 극강의 한계지점에 다다를 때 그림을 그린다.
그는 “그런 상태라야 극강의 섬세함이나 극강의 대범함을 구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하다. “아주 섬세하게 그리는 사람이 아주 대범하게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자유로운 운필은 극단의 상황이 준 결실이죠.”
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한 이 작가는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대학 재학 중인 2008, 2009, 그리고 전업작가로 활동하던 2013년 등 3년 연속 ‘ASYAAF 아시아 대학생 청년작가 미술제’에 선정되고, 2017년에는 ‘제1회 광주화루 10인의 작가 선정 및 대상을 수상(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했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질수록 회의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작가 개인보다 집단 속의 일원을 강요하는 한국화 화단의 문화에 불안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다. 당시 작가의 지상최대 과제는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의식을 발견하고 발현하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후손, 어느 집단의 일원 등의 외피로 저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는 없었어요. 저를 저답게 만드는 것은 오직 제 생각 밖에 없다고 믿었으니까요.”
그가 인지한 우리사회의 모순은 공동체 중심의 가치관이었다. 세상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적 태도는 집단의식을 낳았고, 그것은 결국 민족주의, 인종차별, 종교갈등 등 수많은 문제를 양산했다. 작가는 이 문제에 대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런 습성 속에 살고 있고, 그런 습성이야말로 착각이라고 생각했다”며 “그것으로부터 의문이 출발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집단 속에 개인을 옭아매는 현상은 개별성과 주체성을 저해하는 요인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관성층위(慣性層位)’에 사유의 정수 담아내
전시 제목 ‘관성층위(慣性層位)’에 이분법적 관점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견해가 압축되어 있다. 지구공전이라는 관성으로 자전과 낮과 밤이 생성되고 바람이 불었으며, 이로 인해 탄생한 이분법적 관점은 작가가 작업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다가왔다. 그에게는 선과 악, 신과 인간, 음과 양, 주류와 비주류라는 보편 관점은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 본연의 관점에 틀을 씌운 형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가 “지구와 태양 사이에 일어나는 이 ‘관성’의 ‘습’을 해결하고 극복해야할 문제로 보았다”면서도 “이는 우주질서를 역행하고자하는 반자연주의론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저의 작업은 우주의 주체인 제가 당연한 질서로 여기던 관성에 반하여 생성되는 어쩔 수 없는 중력과 층위를 발췌하는 것으로 이 관성을 의식하고 있음을 밝혀보는 일입니다.”
◇ 파괴와 폭발로 자의식 회복
문제의식은 필연적으로 문제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하도록 이끈다. 작가는 집단 속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개념을 정립해갔다. ‘폭발’이었다. 당면 과제가 자의식의 회복이었고, 방법론으로 상정한 것이 ‘폭발’이었다. 그에게 폭발이란 축적된 고정관념이나 습을 파괴하여 제로상태로 세팅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상태에서 자의식은 자유를 획득한다.
하지만 그의 폭발은 긍정의 요소가 강해서 소멸이 아닌 ‘탄생’을 위한 세리머니에 해당된다. “앞으로의 세계는 1인 1계정의 가상의 시대인데, 그 세계에서는 인종, 남녀, 종교는 의미가 없어지죠. 그런 세상에서 나의 미술적 경험과 관점이 중요할 것이라 믿어요.”
전시작 ‘무진(無盡)’ 연작에서는 폭발이 일어나고 있는 작가의 내면상태가 오롯이 드러난다. 특히 전시장 중앙 벽면에 나란히 걸린 세 개의 작품은 작가 내면의 변화를 적나라하게 포착한다. 화면은 분재 형식의 뿌리 없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비틀어진 가지들로 얽혀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심지어 소나무는 목줄에 매달려 있는 개와 같이 줄에 매어져 있다. 무력하게 발버둥치는 작가의 절망적 상황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노력의 결실이 엿보이는 대목도 목도된다. 첫 번째 작품에서 횡단보도 위에 대나무와 소나무가 그려졌다면 두 번째 작품에서는 소나무에 매어있던 줄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 작품에서는 위태로운 횡단보도가 사라졌다. 불안한 장치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 것.
이런 변화에는 속절없이 흔들렸던 작가의 자아가 파괴와 폭발의 과정을 거치면서 주체성을 회복해가는 상황이 은유되어 있다. 그렇더라도 완전한 자유의 상태는 여전히 요원하다. 작가는 여전히 존재하는 ‘관성의 습’을 고백한다. 그 증거로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남겨둔 줄과 끈의 일부로 스스로를 묶고 있다.
“우리 삶은 이런 길바닥 위에 있는 벌거벗은 상태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고백했어요. 과연 우리가 집단이라고 느끼고 있는 보호 장치가 진짜 나를 보호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죠.”
작업방식은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다. 길을 가다 감각의 그물에 걸리는 대상이 있으면 얼마 후 다시 찾는다. 그리고는 먹과 종이를 펼쳐놓고 길에서 그림을 그린다. 이후 다시 어딘가에서 새로운 대상을 만나면 이전의 형상 옆에 이어서 그림을 그린다. 이른바 ‘이형접합(異形接合)’이다.
작가는 서로 다른 시점에 발견된 두 대상을 이어 그리는 방식을 “채집”이라고 소개했다. 채집 대상은 길가에 버려진 식물이나 하늘의 구름, 연밭 풍경 등이다. “나의 생각을 절제된 필선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채집과 드로잉을 거쳤어요. 채집하다보면 나의 문제들이 마음에서 조립되면서 내 입장이라는 것이 생겼죠. ‘아! 이렇게 살아야겠다’라고요.”
작업은 한국화의 기반 위에 있다. 종이와 먹을 재료로 한국화의 표현법을 수용한다. 하지만 한국화는 그에게 도달해야 하는 최종의 귀결점은 아니다. 그에게 한국화는 내면을 표현하는 하나의 조형언어로만 인식된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제가 공부했던 매체와 조형언어가 한국화였기 때문에 그런 매체로 표현하는 것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겠습니까?” 전시는 3월 10일까지.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