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명리로 본 이성계의 배우자와 자녀들
[류동학의 세상읽기] 명리로 본 이성계의 배우자와 자녀들
  • 승인 2022.02.0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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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이 지났다. 세속인들은 누구나 입춘대길을 원한다. 누구나 좋은 배우자와 자손이 번창하기를 기원한다. 명리학에서 부귀(富貴)는 재성(財星)과 관살(官殺)로 주로 표현한다, 재성은 고정재물형인 정재(正財)와 일확천금형의 일시적 재물인 편재(偏財)로 분류하며, 재물의 보급로 역할을 하는 식신(食神)과 상관(傷官)을 겸하고 재물을 위협하는 겁재(劫財)로부터 정재를 보호하는 정관(正官)과 상속재산인 정인(正印)이 있으면 더욱 좋다. 귀는 정관을 말하며 정관을 재성(財星)과 정인(正印)이 보필하면 상급의 사주이다.

한 나라를 창업할 정도의 기상이면 이런 부귀의 조건을 갖추고 태어나야 한다. 이 성계의 경우를 통해서 부귀와 배우자와 자녀를 알아 보고자 한다. 이성계의 사주는 다음과 같다,

 

이성계는 17세 무렵인 1351년, 신의왕후 한씨〔1337년(충숙 6)~1391년(공양 3)〕와 결혼하여 방우(진안대군,1354년∼1393년),조선의 제2대 왕인 정종(방과,1357년∼1419년),방의(익안대군,1360년∼1404년),방간(회안대군,1364년∼1421년),방원(정안대군,태종,1367년-1422년),방연(덕안대군),경신공주,경선공주 등 6남 2녀를 두었다. 한편 신덕왕후 강씨(? ~ 1396.8.13.)에게 방번(무안대군),방석(의안대군),경순공주 등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이성계는 다른 후궁인 찬덕 주씨로부터 의령옹주와 김해의 관기 출신인 화의옹주 김씨(和義翁主 金氏,?~1428)로부터 숙신옹주등 2녀를 두었다. 총 3명의 부인(명리에서 재성)과 8남5녀의 자녀(명리에서 정관과 편관)를 두었다.

이성계의 사주에서 배우자를 나타내는 십성은 년지의 ④해수(亥水)정재와 시지의 ⑧자수(子水) 편재가 있다. 이 가운데 ④해수(亥水)정재가 신의왕후로 볼 수 있다. 황해도 개풍군에 있는 제릉(齊陵)은 신의왕후의 무덤이다.

이성계 사주에서 시지의 ⑧자수(子水) 편재가 신덕왕후와 후궁인 찬덕 주씨와 화의 옹주 김씨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사주상 정재는 정처인 아내에 해당하고 편재는 다른 여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최초의 왕비 신덕왕후 강씨(1356∼1396)는 세도가 집안 출신이다. 그녀는 충혜왕·공민왕 때 재상권문가인 아버지 강윤성과 작은아버지 강윤충·강윤휘 등의 배경으로 이성계와 정략적인 혼인을 하게 된다. 신덕왕후 강씨(병신년 을미월 계해일생)는 태조의 집권 거사에도 참여하였고 조선 개국 이후에도 배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녀의 소생이였던 방석을 세자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신덕왕후가 승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 방석(의안대군)을 포함한 신덕왕후의 아들들은 모두 제거되었고, 사위도 살해당하여 딸인 경순공주는 여승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신덕왕후의 방석(의안대군)의 왕세자 책봉은 훗날 태종이 서얼 금고령과 적서 차별을 제도적으로 만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녀의 묘소는 성북구에 있는 정릉(貞陵)이다.

이성계 사주에서 자식은 연간의 ⑤을목(乙木)편관과 연지의 ④해수(亥水)의 지장간 갑목 및 일지의 ③미토(未土)의 지장간 정을기(丁乙己)가운데 을목과 생시의 ⑦갑목(甲木) 정관이다.

이 가운데 연간의 ⑤을목(乙木)편관과 연지의 ④해수(亥水)의 지장간 갑목 및 일지의 ③미토(未土)의 을목이 한씨의 소생으로 볼 수 있다. 장남인 진안대군 방우 (1354~1393)는 일찍 사망한다. 이런 연유로 둘째 방과가 조선의 제2대 왕인 정종(방과,1357년-1419년)이 된다. 정종은 우왕 3년 (1377년) 부터 21년 동안 전쟁터를 누빈 군인 출신이다. 그의 재위 기간은 1차 왕자의 난 이후부터 제 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시기인 1398년부터 1400년까지이다. 그의 사주명조는 정유년 정미월 갑술일이다. 배우자는 정안왕후 김씨였으나 후사가 없고 10명의 부인과 슬하에 17남 8녀를 둔 자식복이 많은 왕이었다.

이성계의 삼남 익안대군 방의(?~1404)는 왕자의 난때 이방원을 도왔다. 회안대군 방간 (1364~1421)은 1400년 박포와 함께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방원과 대립하게 된다. 방연(덕안대군)은 결혼도 하기 전에 죽었다. 무안대군 방번 (1381~1398)은 1차 왕자의 난때 피살당했다. 의안대군 방석(1382~1398)은 태조의 8번째 아들로 왕세자로 책봉되나 1차 왕자의 난때 정도전, 남은과 같이 피살당한다.

백전무패의 장군이었던 이성계를 패하게 했던 태종 이방원은 결국 조선의 3대왕으로 즉위하여 외척인 원경왕후의 형제들과 인척인 사돈인 청송심씨 집안을 제거하고 3째인 세종에게 왕위를 잇게 하면서 조선왕조의 기틀을 다져나간 인물이 된다. 인생사에서 권력과 부는 부모형제간의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갈수 있음을 태조 이성계와 그 아들들의 삶에서도 읽을 수가 있다. 태조는 1408년(태종 8) 5월 24일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무덤은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의 건원릉이다.

이번 대선도 예외없이 적자생존의 현장으로 여야가 피말리는 전쟁이 시작되어 이제 한달 후면 승패가 판가름난다. 말로가 대체적으로 불우했던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흑역사는 이번에는 어떻게 마무리 될지도 관심사이다, 비정한 세계가 정치판임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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