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 읽기]명리로 본 태종 이방원의 천기와 권력의지
[류동학의 세상 읽기]명리로 본 태종 이방원의 천기와 권력의지
  • 승인 2022.02.21 21: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성군의 아버지이자 조선왕조를 만드는 데 가장 기여한 인물이 이방원이다. 이방원은 권력을 위하여 온건개혁파의 거두인 정몽주와 조선왕조의 설계자인 삼봉 정도전을 제거하고, 계모인 신덕왕후 강씨의 묘소를 옮기고 이복동생인 방번과 방석을 제거했다. 이방원은 심지어 부친인 이성계와 조사의 난으로 전쟁을 할 만큼 권력의지의 화신이었다.

또한 강력한 중앙집권강화와 왕권확립을 위하여 처남인 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회의 4형제를 제거하고 부인인 원경왕후와 원수가 되었다. 또한 사돈이자 세종의 장인인 심온을 처형하고 세종의 장모와 처제를 노비로 만든 인물이 태종 이방원이다. 태종은 권력의 비정함을 그의 인생을 통해서 몸소실천한 냉정한 현실정치가였다. 그의 타고난 천기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갔을까?

태종 이방원은 1367년 6월13일(음력 5월 16일) 공민왕 16년에 함흥부 귀주(歸州)에서 이성계와 부인 한씨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1422년 음력 5월 10일(56세)에 붕어했다.

그의 타고난 천기는 다음과 같다. 

 

중국 송대(960∼1279)에 발생한 자평명리학은 보통 사주팔자라 부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타고난 명과 10년마다 나타나는 인생길인 대운의 흐름을 같이 분석해야 하므로 5주10자로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한 적중률을 높인다.
아무리 타고난 명이 좋아도 대운의 흐름이 불리하면 명차를 비포장도로에서 몰거나 폭풍우를 달리는 차와 같아 성공이 힘들다.

이방원의 태어난 시는 임진시로 추정했다. 신금일주의 가장 좋은 간지조합은 신금과 임수의 조합이다. 소위 신임(辛壬)조합의 도세주옥(淘洗珠玉)의 구조는 사계절을 불문하고 가장 좋은 격국의 모양새이다. 도세주옥(淘洗珠玉)은 보석이나 조약돌같은 신금을 임수로 세척하여 깨끗함을 유지하고 보석을 더욱 빛나게 하는 모양새이다.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금수쌍청이 신금과 임수의 조합이다. 이방원의 사주는 종살격(從殺格)의 특수사주가 아니면 이방원의 사주는 더운 열기를 식히는 임수와 습토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보통 경금(庚金)은 정화(丁火)의 정관(正官)이 중요하다. 이런 경금과 정화의 조합은 열매가 열려 숙성되어 과실을 거두거나, 불로 원석인 경금을 녹여 사회적인 용도의 물건으로 만드는 화련진금(火煉眞金)을 가장 상급사주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방원 사주와 같이 오월(午月)의 정화(丁火)가 투출한 편관격의 신금이면 화소주옥(火燒珠玉)으로 완성품의 보석을 용광로에 태우는 것과 같아서 매우 힘든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신금은 임수를 만나야 보석인 신금이 더욱 빛나게 되고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인물이 된다,

이방원의 천기는 망종이 지난 여름에 더운 열기로 가득찬 오월의 신금이 정화((丁火)와 병화(丙火)가 쌍투하여 소위 관살혼잡격(官殺混雜格)의 사주이다. 사주팔자에 이렇게 화기가 강한 신금은 임수(壬水)와 계수(癸水) 및 습한 진흙인 기토(己土)와 지지는 바다나 호수 및 큰 저수지를 상징하는 해수(亥水,돼지)와 옹달샘 물인 자수(子水) 및 습한 대지인 진토(辰土,용)와 축토(丑土)는 필수적이다.

이방원은 정재와 정인대운인 갑진대운 기간인 임술년(壬戌年) 상관운인 1382년(우왕 9년)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였고 1383년 계해운(癸亥運) 식신운에 문과에 병과 7등으로 급제할 만큼 총명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의 과거급제는 총명함을 드러내는 한 여름의 소나기와 옹달샘물을 만난것과 같은 임수의 상관운과 계수의 식신운이었다.

이방원의 인생에서 임신년(壬申年)의 상관운과 겁재운은 매우 중요한 한해였다. 그의 역량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도새주옥의 한해였다. 그해 정몽주와 하여가(何如歌)와 단심가(丹心歌)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의사를 타진했으나 결국 선죽교에서 이방원은 정몽주를 타살하고 이색과 그 아들과 이숭인,길재 등을 축출했다.

그러나 이후 이방원은 정몽주(정축년 계축월 무자일생)를 충절(忠節)의 상징으로 현창시켜 익양부원군에 추증하고 영의정부사를 추서했다. 또한 둘째 형인 방과의 4번째 서자인 선성군 이무생(宣城君 李茂生, 1392-1460)이 정몽주의 손녀이자 정종성의 딸과 결혼하여 인척관계가 되기도 하는 등 복권이 이루어졌다. 이방원은 26살 되던 해인 1392년 임신년에 수창궁에서 이성계가 태조로 즉위하는데 그의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

이후 1398년 무인년에 1차 왕자의 난으로 이복동생인 방번과 방석 및 개국공신인 정도전과 남은을 제거하고 1400년 경진년에 방간과 박포가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을 통하여 1400년에 조선의 제3대 왕(재위 기간 1400년11월 13일~1418년 8월 10일)으로 즉위하였다. 그의 이러한 권력의지는 편관격의 특징으로 권력의지와 지혜의 상징은 명리학에서 편관(偏官)이라는 십성과 금수상관(金水傷官)이다. 그의 최대의 업적은 세자인 양녕대군을 페세자시키고 3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왕위계승자로 교체한 사실이다. 그의 집요한 권력의지는 세종을 성군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역사적 평가는 아들인 세종에 의해서 더욱 높이 평가된다. 그의 능은 헌릉(獻陵)이며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해있다.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