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치
내 눈치
  • 승인 2022.02.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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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지난 칼럼에서는 타인을 향한 눈치, 즉 '남 눈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내 눈치'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금까지 난 남의 눈치는 많이 보고 산 것 같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눈치를 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타인이 무얼 좋아하는지는 잘 알아서 생일날, 혹은 기념일 등에 상대방이 기뻐할 선물은 잘도 고르면서 막상 누군가 나에게 어떤 걸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막상 시원하게 대답을 잘하지 못했던 것 같다. 또한 상대방이 싫어하는 행동이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어서 타인의 심기를 건드릴 행동은 아예 하지 않으면서, 내가 싫어할 행동은 상대방이 하도록 허용하거나, 심지어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평생 눈치를 보며 살았던 것 같다. 눈치 보는 습관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7남매와 부모님 두 분을 합쳐 총 9명이 내가 자랄 때 나의 식구다. 형제가 많고 엄하신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난, 남들보다 눈치를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어떠한 행동을 하기 전 이런 행동을 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어떻게 볼까?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았다. 가정에서는 부모님께 눈치를 보며 살았고, 나보다 나이 많은 형제들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그리고 마을 안에서, 나의 생활 터전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나는 눈치를 보며 살았다.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에 맞추기 위해 살았고, 욕을 얻어먹지 않기 위해 눈치 보며 살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치가 빨라졌다. 언제나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는 것에는 누구보다 빨라져 갔다. 그 결과 사회생활은 대체로 잘했던 것 같다. 별로 크게 타인들과 문제도 발생시키지 않았던 것 같고, 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물론 내가 기억하는 상황이니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을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나의 기억으로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사회생활 잘한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한 번은 동영상에 담긴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의 진짜 모습과 직면하는 순간이었다. 화면 속에 나온 내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나의 눈동자는 잠시도 가만히 쉬지 않고 주위를 의식하며 스캔을 하고 있었다. 부끄럽기도 했고, 왜 그렇게 남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눈치 이야기를 하니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친척 집에 잔치가 있었다. 친척 형님이 장가를 가셨기 때문이다. 흩어져 살던 친척들이 모두 모여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당시에 사람이 모이면 가장 관심사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먹는 것이었다. 평상시 먹어보지 못하던 음식을 그날은 맘껏 먹을 수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잔칫날은 그야말로 입이 즐거운 날이었다. 모두가 즐거운 그 잔치 자리에 나는 눈치를 보느라 쉽게 들어가지를 못하고 대문 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한 친척 어른과 눈이 마주쳤고 안에 들어와서 밥을 먹으라는 말씀을 내게 하셨다. 나는 그때 속마음과 다르게 "괜찮습니다"라고 말을 해버렸다. 친척 어른은 한 번 더 내게 "순호야 안에 들어와서 뭐 좀 먹어라."라고 하셨지만 나는 또 그만 "아뇨, 괜찮습니다."라는 평생 후회될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속으로는 한 번만 더 불러주면 그땐 들어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나를 불러주는 친척 어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난 그날 대문 밖에서 내 속에서 들려오는 "야 이 바보야. 배고프다고. 배가 고파. 나도 맛있는 음식 먹고 싶다고, 어서 들어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응답해주지 못했다. 가엾게도 난, 안에서 풍겨오는 맛있는 음식 냄새만 맡아야 했다. 남 눈치는 살피면서, 내 눈치는 살피지 못했던 내 모습이 글을 쓰는 이 순간 떠오른다.
우리는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나를 살피지 못한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은 고민도 하지 못했고,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애쓰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신경 쓰지 않았고, 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내 눈치를 보고 살지 않았다. 괜히 미안해진다. 나 자신에게.
눈치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가 분명 맞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 눈치를 좀 더 살피고 살아야겠다. 내 소리에 더 귀 기울이고 나에게 더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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