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드랍게', 18개의 이름에 담긴 그녀의 삶
영화 '보드랍게', 18개의 이름에 담긴 그녀의 삶
  • 김민주
  • 승인 2022.02.25 12:0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3일 개봉 다큐영화 '보드랍게', 김순악 할머니의 일생 조명
기존 위안부 영화와 달리 감내했던 개별의 삶에 초점
'미투' 피해자들이 할머니의 증언록을 낭독하며 아픔 '공감'

 

"보드랍게" 스틸 이미지 (주)인디플러그 제공
故 김순악 할머니(1928~2010) 의 모습 (주)인디플러그 제공

'김', '순', '악' 이름을 한 획씩 천천히 써내려가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과 "김순옥, 왈패, 데루쿄, 마마상, 식모, 깡패 할매, 순악씨…" 등 그의 인생이 담긴 수십 개의 호칭이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로 쏟아지며 영화는 시작된다. 어쩌다 할머니는 18개의 호칭을 가진 기구한 삶을 살게 된 걸까?

‘김순악’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다. ‘보드랍게’는 박문칠 감독이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에서 제공받은 생전 영상 자료, 애니메이션, ‘미투’ 운동에 참여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록 낭독을 통해 그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이다.

할머니의 삶은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 집성촌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딸이었고, 다른 성씨인 어린 ‘순악’은 마을 사람들의 차별을 받으며 자랐다. 출생신고를 위해 찾아간 곳에서 '김순옥'의 '옥(玉)' 은 양반집에서만 사용한다며 옥 대신 악으로 바꾸라는 말에 할머니의 이름은 '김순악'이 되었다.

할머니의 증언 중 일부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그 시대를 견딘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주)인디플러그 제공
할머니의 증언 중 일부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 그 시대를 견딘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주)인디플러그 제공

16살 때 대구의 실 푸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난생처음 기차를 탔지만 그 길로 만주에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 주말에는 길게 늘어선 일본군들이 변소 문 두드리듯 노크를 하고 들어왔고 하루에 30-40명이 넘는 사람을 받았다. 당하고 있는 중에 누워서 주먹밥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어깨와 허리에 찬 소총과 무기들에 그대로 부딪혀 생긴 피멍은 없어질 시간조차 없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에 돌아와 생계를 위해 여러 일을 했지만 훗날 그가 ‘위안부’ 피해자임을 인정받기 전까지 암묵적으로 침묵되었다. 영화는 수십 년간 폭력에 노출되었지만 침묵될 수밖에 없었던, 해방 후 그가 감내했던 개별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만주에서 서울로 돌아와 노숙생활을 하던 순악씨는 소개소를 통해 ‘유곽’으로 갔다. 유곽에서의 일은 몸이 팔려가는 것임을 인지했지만 그에게 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당시 여성에게만 강요된 순결 이데올로기 탓에 그는 스스로를 이미 ‘버린 몸’이라고 단정 지었던 것이다.

유곽의 일을 관두고 고향에 가고 싶었지만 그를 향한 따가운 시선과 소문에 대한 상처로 경상도가 아닌 전라도 여수로 내려가 술집에서 일을 했다. 그곳에서 기마대 순경을 만났고 첫째 아이가 생겼다. 그 길로 고향 경산으로 홀로 돌아와 아들을 낳고 생계를 위해 또다시 서울에 올라갔다.

서울로 상경한 순악씨는 미군 부대가 있는 동두천 ‘기지촌’에 터를 잡게 된다. 동두천 기지촌은 주둔 미군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각종 특수 유흥업소가 자리했는데 외화를 벌기 위해 우리 정부가 암암리에 운영을 허가했다. 그곳에서 색시 장사와 물건 장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둘째 아들도 태어났다. 이후 순악씨는 두 아들만 생각하면서 15년간의 식모생활도 꿋꿋이 버텼다.

인생의 절반 동안 수많은 상처를 안고 아등바등 살았지만 한글을 몰라 본인의 이름을 직접 적을 수 없었다. 하루에 10가지가 넘는 반찬을 매끼 식탁에 올리고 깔끔히 집을 정리했지만 집으로 전화를 걸어온 사람을 메모지에 기록하라는 업무를 하지 못해 결국 해고 통지를 받았다.

할머니는 미군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둘째 아들을 ‘아픈 손가락’이라고 지칭하며 “가(걔) 마음속엔 ‘가시’가 있는 것 같어”라고 했다. 초반 할머니의 첫인상을 ‘세상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 탓에 강퍅한 할머니’라고 표현한 시민모임 구성원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자신의 삶에 기저하고 있는 상처로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뻗어 있는 ‘가시’인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아들에 빗대 표현했을 수도 있겠다. 

(주)인디플러그 제공
동지들과 여행을 떠난 김순악(왼쪽에서 두번째) 할머니 (주)인디플러그 제공

“내 이야기하면 ‘하이고, 참 애먹었다’ 이렇게 보드랍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어.” 할머니의 생전 증언의 한 구절처럼 그는 외로움 가득한 세상에서도 꿋꿋이 살아갔다. 힘겹게 인생을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결국 그의 곁엔 동지가 생겼다. TV에 나온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이 세상을 향해 역사를 알리고 소리치는 모습에 용기를 얻어 함께 응답했다. 그 덕인지 할머니의 삶에는 웃음이 더 많아지고 건강해지는 변화가 찾아왔다.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간 인권 운동을 하며 할머니 마음의 상처도 ‘꽃’을 통해 서서히 치유됐다. 손이 야무진 그는 원예치료 수업을 통해 좋아하던 ‘꽃’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가시밭길 같던 인생 굴곡을 겪었지만 수업을 할 때마다 꽃을 하나씩 붙이며 ‘평화’에 대한 염원을 자주 얘기했고 그 마음을 담은 압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평화'를 염원하며 김순악 씨가 압화작업을 하고 있다 (주)인디플러그 제공
'평화'를 염원하며 김순악 씨가 압화작업을 하고 있다 (주)인디플러그 제공

영화는 진정한 사죄를 하지 않았음에도 세상을 용서하고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고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함께 첫 장면처럼 그의 삶을 관통한 18개의 호칭이 불리며 끝이 난다. 호칭을 낭독하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느낄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마주한다는 것을. 사실 그들도 할머니처럼 '고생했다, 애먹었다'는 사회의 보드라운 말이 필요했던 사람들이라는걸.

이 영화는 다각도로 바라보는 역사 속 쓰라린 삶을 보드랍게 어루만져 주고 있다. 또한 관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제 우리는 피해자들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더 나아가 거기에 응답할 자세를 갖추고 있냐고.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 남아 있는 성차별과 성폭력, 거칠고 모난 삶을 살아낸 김순악이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평화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길을 위해 보드라운 말 한마디를 건넨다… “하이고, 참 애묵었다.” 

대구에서는 롯데시네마 동성로, 메가박스 대구(칠성로), 오오극장 등에서 3월 2일까지 만날 수 있다.  

김민주 기자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94(신천 3동 283-8)
  • 대표전화 : 053-424-0004
  • 팩스 : 053-426-6644
  • 제호 : 대구신문
  • 등록번호 : 대구 가 00003호 (일간)
  • 등록일 : 1996-09-06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대구, 아00442
  • 발행·편집인 : 김상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배수경
  • 대구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대구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icbae@idaegu.co.kr
ND소프트
많이 본 기사
영상뉴스
SNS에서도 대구신문의
뉴스를 받아보세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