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의 멋
후진의 멋
  • 승인 2022.02.2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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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현숙 시인
살아가며 우린 수많은 일을 만나고 겪게 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단 하루도 아무런 일 없이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는 듯하다. 그럴 때마다 우린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또 내일이 좀 더 나아지리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다음에 이다음에’로 미룰 때가 간혹 없진 않지만 매일 매일의 삶이 처음 그대로 여전히 오늘인 것처럼 내일이란 죽음 그 이후의 또 다른 오늘이 아닐까.

어쩌면 우린 오늘만을 살다가 오늘 죽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꿈, 오늘의 상처, 오늘의 질문 등 제아무리 풀리지 않는 삶의 문제라 해도 오늘 안에 매듭지어질 일이라 여기고 저만치 툭 던져두고 보면 해답은 생각보다 한결 더 수월하게 풀리곤 한다. 앞만 보고 달릴 수 없고 때론 후진도 하면서 갓길에 앉아 따사로운 봄볕에 젖은 몸 쉬엄쉬엄 말려가며 살아내야 할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태두인 비로봉에 올랐을 때의 감흥을 ‘위대는 평범이외다’라고 적었다는 춘원 이광수 선생의 말을 빌려 ‘어제와 별다른 일 없으면 좋은 것’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나는 오늘, 사고가 났다.

여자들이 호감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후진 주차를 잘하는 남자가 멋있어 보인다’는 우스개가 있다. 셔츠 단추를 두어 개 푼 후 주차권을 입에 물고 몸을 뒤로 반쯤 튼다.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남은 한 손은 옆자리에 앉은 그녀의 귓불에 운전자의 입으로부터 터져 나온 뜨거운 입김이 닿을락 말락 보조석에 기댄다. 머뭇거림 없이 단 한 번에 폭풍 후진을 하는 영화 속 장면은 스릴 넘치고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실에서는 너무나 위험한 행위다.

후진할 땐 속도를 크게 내지 않고 주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큰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라 여기지만, 후진 사고로 인해 부상자와 사망자가 해마다 늘어난다고 한다. ‘멋 부리다 얼어 죽는다’는 말처럼 운전은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는데 제아무리 베테랑 운전자라 해도 후진은 어려운 법이다. 후방카메라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반복된 연습만이 살길이리라. 없을 땐 몰랐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도 하지만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에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없는 것보단 있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굳이 없어도 아쉬운 건 없었다. 그런 내 생각과 달리 내 차를 타게 되는 사람이면 누구든 한 소리씩 거들었다. 몸을 뒤로 반 이상 틀어 후진하는 나를 보면 안타까운 맘이 든다며 ‘후방카메라 하나 달지, 막상 있으면 진즉에 달걸’ 후회할 거라며 단언하기에 이른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오른쪽 귀로 들어오면 왼쪽 귀를 열어 흘려보내고 뒤통수로 날아오면 앞만 보고 달리며 시야를 넓혔다. 접촉사고가 크게 나서 내차가 차병원으로 옮겨지기 이전까진 그랬다. 붉은 신호등 앞에 정차하려던 그 몇 초의 짧은 순간, 룸미러를 통해 뒤따라오던 차의 낌새를 미리 알아차리고 클랙슨을 세차게 눌렀다. 졸음에 취해 있었던 건지 아니면 이어폰을 끼고 있었는지 듣지 못한 것 같아 두 번째 클랙슨을 누르려던 순간 이미 박은 후였다.

사고 이후, 후방카메라가 장착된 차로 렌털 서비스를 받았다. 처음 며칠은 있어도 관심을 주지 않고 예전에 하던 내 방식 그대로 밀고 나갔다. 그러다 점점 오랜 시간 지켜온 방식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자미처럼 뜬 눈 사이를 비집고 후방카메라가 점점 내 눈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러기를 어느 날, 옛 방식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전히 후방카메라에 몰두해 후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질 즈음 렌털은 끝이 나고 다시 말끔히 고쳐진 내 차로 돌아왔을 땐 후방카메라에 익숙해진 몸동작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몸소 체험하고 경험해 본 후 알게 된, 불필요하다고만 여겼던 후방카메라의 필요가 절실해졌다. 더 편리하고 좋은 것들을 알고 난 뒤의 아득함이란, 한동안 후진이 버겁고 두려워졌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어디 한둘뿐이랴. 어떠한 방식으로든 후방카메라가 없는 차에서 출발하여 잠깐 있는 차를 빌려 탔다가 결국 다시, 없는 내 차로 귀결되는 이야기처럼 삶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빈손으로 태어났다가 잠깐 빌려 세상을 살다가 다시 빈손으로 떠나야 하는 일처럼. 뜻하지 않게 찾아온 사고로 인해 모르고 살아도 좋았을 일을 알아버린 후 찾아오는 공허감을 감당할 재간이 없다. 주변을 돌아본다. 곳곳에 이야기가 널려 있다. 그들 속에서 나의 오늘을 찾아 완성하듯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작은 감동과 기쁨을 오래도록 많이 느낄 수 있게 늘 깨어있기를, 있고 없고를 떠나 마음을 다해 심장이 뛰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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