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사도 도마, 오늘날 달성에 머물다가 ‘토성축조’ 건의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사도 도마, 오늘날 달성에 머물다가 ‘토성축조’ 건의
  • 김종현
  • 승인 2022.03.0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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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어릴때부터 외우던 28수 별자리
신가유문화-28수성도
천자문을 배우고 따라 외웠던 28수성도. 그림 이대영

 

신석기 농경시대부터 별 관찰

파동·모내기·추수 적기 알아내

한반도서 남두육성이 ‘농업 신’

풍년·길흉 인생사 관장한다 믿어

무덤방 덮개돌에 남쪽 별자리 새겨

사실 이렇게까지 천기(天機)를 알고했던 건, 신석기 농경시대부터 별을 보고 파동, 모내기, 김매기 혹은 추수의 적기를 알아내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선 5월부터 8월(모내기와 추수시기)에 남쪽하늘 궁수자리에 있는 남두육성(南斗六星)을 ‘농업의 신(農業之神)’으로 믿었다. 풍년, 질병치유, 길흉(吉凶)인생사를 남두육성이 관장한다고 믿었다.

AD 360년 경 간보(干寶)가 쓴 ‘수신기(搜神記)’에선 “남두육성은 인간의 삶을 주관하고, 북두칠성은 죽음을 관할한다(南斗注生, 北斗注死).”고 기록했다. 우리나라도 400~500년대를 살았던, 함안 말이산 제13호(사적 제515호) 고분을 발굴해 보니 아라가야(阿羅伽倻) 사람들이 무덤방 덮개돌에다가 125개의 남쪽하늘 별자리(서양의 전갈자리, 동양의 靑龍星)를 새겨 놓았던 것을 발견했다.

다시 시골서당 이야기로 돌아가면, 천자문을 다 암송하고 뜻을 알아서 책거리행사를 마친 뒤에는 계몽편(擊蒙要訣)에 들어간다. 첫날부터 하늘알기(天編)에 도전한다. 오늘날 말하면 천문학기초를 배운다.

즉 “해는 동쪽에 떠 서쪽에 진다. 해가 뜨면 낮이고, 해가 넘어가면 밤이 되며, 밤하늘엔 달과 별들이 또렷하게 보인다. 하늘엔 돌아가는 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도 금성, 목성, 수성, 화성, 토성 5성이란 별이 뚜렷하게 보인다. 또한 동서남북 4방위에는 28수(별자리)가 있는데 : 동쪽하늘(東靑龍)에 있는 7개 별자리(七宿)로는 각·항·저·방·심·미·기 순이고, 북 현무(北玄武) 7수는 두·우·여·허·위·실·벽, 서 백호(西白虎)엔 규·루·위·묘·필·자·삼, 남 주작(南朱雀)엔 정·귀·유·성·장·익·진.”을 배운다. 이를 밤낮으로 외웠다.

소리 내어 암기하는 걸 할아버지께서 듣고, 이상한 표정을 지어 물어봤더니,“‘각항저방심미기...’ 하는 28수를 바르게 외면 귀신을 불러 들이는 초신경(招神經)이 되고, 거꾸로 ‘진익장성유귀정...’으로 외치면 귀신을 쫓는 축귀경(逐鬼經)이 된다.”고 하셨다. 어릴 적 밤에 공동묘지를 지날 때는 반드시 “진익장성유귀정 ~ 기미심방저항각” 28수 축귀경(逐鬼經)을 몇 번이고 외우면서 겁 없이 다녔다.

 

시골 서당서 천문학 기초 배워

동서남북 4방위에 28수 존재

각 방위별로 7개 별자리 자리해

28수 빠르게 외면 귀신 불러내

거꾸로 하면 귀신 쫓는 ‘축귀경’

◇사도 도마가 다녀간 대구경북

첨단과학으로 최고조의 문명을 꽃피우고 있는 오늘날도 별은 꿈(dream)이고 미래(future)이며 연인(sweetheart)이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들은 밤 같은 까만 눈동자...창가에 지는 별들의 미소를 잊을 수 없어요. 아침 이슬 내릴 때까지.” 혹은 “밤하늘의 별을 따서 너에게 줄래, 너는 내가 사랑하니까 더 소중하니까.”라는 꿈속의 연인을 그리면서 별을 찾아 어디든지 조상님들도 떠났고, 찾아다녔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백성들의 꿈을 혜성(彗星)에 투사한 역사적 사례로는 예수탄생과 동방박사의 이야기에 서려있다. 당시 메시아(救世主) 탄생예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로마의 헤로드 왕(King Herod)은 동방박사들에게 혜성을 쫓아가서 아기 메시아의 탄생을 축복하고, 그 첩보를 곧바로 내게 와서 보고하라고 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람은 그게 아니라, “국왕 헤로드(King Herod)에게 돌아가서 절대 알리지 말고, 아예 다른 길로 귀국하라.”는 꿈의 힘이 경고하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온 길이 아닌 비밀리 다른 길로 귀국했다.

당시 혜성출현은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에 기록되어 있다. 혁거세 54(BC 4)년으로 ‘3월에 견우성(牽牛星, 오늘날 물병자리)에 혜성이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기록을 기반으로 기원후 2세기경에 쓰여 진 ‘시리아 사본 성경(Syriac manuscript)’이나 오늘날 바티칸 교황청 도서관에 소장 중인 8세기경에 작성된 시리아사본 ‘동방박사의 묵시(Revelation of the Magi)’에서도 동방박사의 고향을 신라(新羅, Sila)로 기록하고 있다.

사실 극동에서 중동으로 왕래한 기록은 BC 139년 ‘은하수 별들이 쏟아지는(窮河源) 저 먼 곳까지 찾아가서도 흉노족을 토벌하기 위한 서역을 개척하기위해 장수 장건(張騫, 출생미상~ BC 114)을 파견했다.’고 한서에 기록이 있다.

기원전에 중동과 왕래가 한반도에서도 빈번했다는 증거가 있다. 일제식민지 때 평양 대동강유역을 발굴했다. 고조선시대 직경 16.1cm, 태토(胎土)가 협사홍도(夾砂紅陶)인 막새부분 와당(瓦當) 2점에 고대히브리어(Proto-Hebrew)로 ‘오엽화(五葉花)와 단결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다(Enter the Kingdom of God in cooperation with the five-leaves flower).’와 ‘잠언을 지휘하는 자가 통치하리라(The judge who directs Proverbs governs)’라는 금석문이 새겨져 있었다.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를 봐서 지금부터 3,200(BC 1,200∼1,000)년 전쯤 사사시대(the period of Judges) 12지파 가운데 블레셋 민족과 단지파가 전쟁을 했는데, 장수 삼손(Samson)이 사망하자 그들은 최초 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해서 고조선시대 대동강 유역까지 찾아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상님들, 별 찾아 어디로든 떠나

한반도서도 중동과 왕래 빈번

영주에 사도 도마 지나간 흔적

토성축조 건의 200년 후 완성

도마 음·뜻 살리고자 ‘달성’ 표기

뿐만 아니라, 대구경북에서도 십이사도(十二使徒, Apostles) 가운데 사도 도마(Thomas)가 지나간 곳(영주군 영풍면 왕유동 분처암)을 기념하고자 분처암(分處巖) 하단에 ‘하느님(천왕)을 인도하시는 분, 이름값을 다하고자 가노라(耶蘇花王引導資, 名全行)’라고 호태왕 영락19(409, 己酉)년에 새겼다.

암각되어 있는 히브리어는 타우멤(Tau Mem)이란 두 글자로 지금까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 1361년 고려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난을 피해서 이곳에 머물었던 기록이란 반론도 있다. 이를 도마박물관(Thomas Musium)에선 도마 사도(Apostle Thomas)가 배신자 유다(Judah, Judas Iscariot)라는 악명을 세탁하고자 개명한 걸로 보고 있다. 그는 고국을 떠나 인도 아유타국(阿踰陀國, Ayodhya)을 거쳐 AD 48년경 금관가야 김수로왕(金首露王)의 부인이 될 허황옥(許黃玉, AD 23~189)과 오빠 장유화상(長遊和尙)을 데리고 가야에 왔고, 신라국왕을 만났다는 주장이다.

또한 그(도마 사도)는 오늘날 달성(達城, 토마스)에 머물다가, 신라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을 알현하고 그곳에다가 달성 토성축조를 건의했다. 그의 건의는 200년이 지난 뒤 첨해왕(沾解王) 15(261)년 2월에 달성(토성)을 축조하고 나마극종(奈麻克宗)을 성주로 임명했다. 그해 국왕은 12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따라서 토마스(Thomas)는 오늘날 우리가 ‘도마복음(多馬福音)’, 또는 ‘사도도마(使徒多馬)’라고 하는 그분이다. 안중근(安重根, 1879~1910)의 세례명 토마스를 ‘다묵(多默)’으로 표기했듯이 당시 신라인(新羅人)들은 도마(多默)의 음과 뜻을 살리고자 ‘달성(達城)’으로 표기했다.

이후 신라 비단장수들이 중동보다 더 먼 곳인 로마(Roma) 대월국(大月國)까지 통상을 했다는 증거가 있다. 1973년 신라고분 천마총(보물 628호분)을 비롯한 황남대총, 금관총, 서봉총 및 금령총 등에서 로마유리잔이 출토됐다. 2013년 3월 김해 대성동 91호분 금관가야고분(金官伽倻古墳)에서도 로마유리제품(Roman Glass)이 출토되었다.

당시 로만글라스에 광분했는지 “사람들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반사시키는 돌 꽃(石英)을 녹여 유리제품을 만들었다(Homines vitrei fiunt, vicus liquescens, qui sidera nocturno caelo micantia reddit).”라고 노래했다. 유리제품에 자신의 꿈을 담았고, 미래의 염원까지 녹였던 것이다. 5~ 6세기에 한반도 끝자락에서 로만글라스 길(Roman Glass Road)을 일본까지 연장했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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