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달구벌은 물을 얻으면 하늘로 승천하려는 용의 형국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달구벌은 물을 얻으면 하늘로 승천하려는 용의 형국
  • 김종현
  • 승인 2022.03.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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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달구벌호, 한반도에서 최대 하늘거울
삼한이전부터 대구는 동트는 달구벌이었다. 그림 이대영

 

중생대 백악기 약 1억4천450만 년전
달구벌의 암반 형성 때 분지 만들어져
단군국조 개국할 당시 ‘아침신시’ 열어
수성교-동신교 사이 공룡발자국 존재
금호 옆에 누워있는 공룡 형상 ‘와룡산’

생명수(vital water)란 의미는 지구촌의 생명체를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물이다. BC 300년경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가장 복되게 하는 건 물 같다(上善若水)”라고 했으며, BC 3천 년 경 동북아시아 최초 국가였던 고조선에 한반도 선인들의 생각을 담았던 ‘천부경(天符經)’에서도 “태초에 물 한 방울이 있었나니, 그것이 없었다면 하나의 생명체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一始無始一).”고 적고 있다.

스웨덴 시인 군나르 로알드크반(Gunnar Roaldkvam, 1951년생)의 ‘마지막 물방울(The Last Drop)’의 첫 구절인 “옛날 옛적에 두 방울의 물이 있었나니. 하나는 첫 번째, 다른 하나는 마지막인데. 첫 번째 물방울은 용감했다. 마지막 물방울은 모든 것을 다 만드는데…. 그러나 누가 첫 번째 물방울이 되고자 하겠는가?”라고 노래했다.

중생대 백악기(Cretaceous period) 대략 1억4천450만 년 전부터 1억3천만 년 전까지 달구벌의 기초암반이 형성될 때에 산으로 둘러 싸인 분지가 만들어졌다. 이로 인하여 한반도에서 가장 거대한 달구벌(琴湖)이 형성되었으며, 백두산(총면적 8천㎢) 천지연(天地淵, 9.165㎢)에 비교하면 13(120.145㎢)배나 되는 거대한 호수였다. 하늘의 삼원(三垣)이 다 비쳐지는 거대한 거울(天三垣鑑)이었다. 가장 먼저 동트는 곳이라고 믿었으며, 단군국조가 개국할 당시에 바다와 산이 만나는 끝자락이라고 ‘아침신시(朝市)’를 이곳에서 열었다.

아침신시에 올리는 생선을 특별히 ‘조선(朝鮮)’이라고 했다. 즉 하늘이 준 음식이고 앞날을 기약하는 증표로 사용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신라 박제상(朴堤上, 363~419)의 밀봉사서(密封史書) ‘징심록(澄心錄)’에다 감춰놓았던 ‘부도지(符都志)’에 적혀 있다.

한반도의 새벽은 “닭이 울어야 동튼다(鷄鳴明黎).”는 믿음에서 이곳을 닭벌(達丘伐, 鷄野)이라고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유교인습에 젖어든 건, 경상감영이 이곳으로 이전됨에 따라 관존민비(官尊民卑)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유교사상인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하는 법이다(牝鷄之晨, 惟家之索).”라는 인식이 이곳에 뿌리깊이 내렸기 때문이다.

거대한 금호천감(琴湖天鑑)에선 수천 마리의 공룡들이 우글거렸다. 하늘을 나는 익용(翼龍 혹은 鳥龍), 교용(蛟龍 혹은 蛇龍) 등이 중생대 백악기 땐 이곳에서 살았다.

지금도 수성교와 동신교 사이 신천바닥에 30여 군데 공룡발자국을 볼 수 있다. 앞산(大德山) 고산골 공룡공원(恐龍公園)과 실개천 수십여 군데의 공용발자국을 볼 수 있다. 노곡동 금호강 섶에서도 공룡발자국 여러 곳이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사라졌으나, 대략 1억 년 전 욱수동 거량(旭水川)에도 초식공룡의 발자국 8개를 육안으로 볼 수 있게끔 2014년에 유리관까지 설치했다.

‘금호잠용(琴湖潛龍)’이란 표현은 금호강으로 모여드는 신천, 동화천, 달서천과 팔거천이 마치 공룡의 4 다리를 닮았다는 의미에서 거대한 금호강(호수)을 하나의 거대한 용으로 봤다. 장마철 금호강물이 꿈틀거리면서 흘려가는 모습을 함지산 등에서 내려다 본다면, 이는 승천하고자 몸부림치는 용이다. 그래서 달구벌은 “물을 얻으면 하늘로 승천하려는 용의 형국(得水昇天之形)”이라고 해왔다. 현재까지도 금호 옆에 누워있는 공룡의 형상을 한 와룡산(臥龍山, 295m)이 있고, 지명(역명)으로 용산(龍山)이 있다. 1970년대 제2 침산공단과 제3 노원공단을 배치할 때에 “공단의 검정연기(흑용)는 금호강물을 얻어서 승천하네(黑龍琴湖得水昇天)”이라는 장밋빛 구호를 외쳤다.

 

생명체가 존재하는 곳엔 꼭 물이 있어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성패·위상 영향
한반도, 삼면이 바다여서 ‘풍부한 물’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아침햇살 받는 곳
달구벌 호수가 하늘을 그대로 비춰줘

지구촌으로 눈을 돌리면,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었는 곳엔 반드시 물이 있었다. 진나라 곽박(郭璞,276~324)은 풍수지리서인 금랑경(錦囊經)에서 삶의 터전을 잡음(擇里)에 있어 “가장 먼저 물이었고, 다음으로 추위와 바람 등의 천재지변으로 안전성(得水爲上, 藏風次之)을 고려했다.” 서양에서도 삶의 터전을 잡는데 물이 첫 번째인 ‘3W(water, way and will)’로 판단했다.

실학자 이중환(李重煥, 1690~ 1752)은 오랜 유랑생활에서 얻은 ‘삶의 터전 비결(擇里志)’로 생명유지(生利)에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2016년 8월 BBC 기자 팀 마샬(Tim Marshall, 1959년생)은 세계적 인문지리를 섭렵하여 정리한 지리의 힘(Prisoners of Geography)을 출판했다. 제목이 말하고자 함은 인간이란 자연환경(감옥)의 죄수라는 말이다. 즉 지리적 위치가 국가의 성패, 세계적 권력과 위상에 극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인류가 지구촌에 출현한 이후 농경시대에는 농업용수, 도시집중화시대에는 생활용수, 공업지역에는 산업용수가 명줄(生命線)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소시대(水素時代)가 온다고 해도 물의 전기분해로 수소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한반도에서 터전을 잡았던 이유론 삼면이 바다인 관계로 풍부한 물이 있었고, 다음으로 아침 햇살을 가장 먼저 받는 곳(朝光先受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상식으로는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 뜨는 곳은 독도이거나 동해안이어야 하나, 부도지에서 왜 삼한이전에 달구벌이 ‘아침에 천제를 지내는 곳(朝天祭市)’이 되었는지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 달구벌 호수가 하늘을 그대로 비춰주었고, 가장 먼저 동트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새들로부터 삶의 터전과 치국(治國)을 배우다

오늘날까지 필리핀 팔라완 밀림지역에서 원시생활을 하는 200여 명의 타우바투(Taw-Batu)족은 아직도 동굴생활을 고집하고 있는데, 그들이 동굴을 터전으로 선별하는 덴 참으로 신중하다.

동굴(삶의 터전)을 선택할 때는 : i) 기운(氣運, will), ii) 먹거리(water and food), iii) 맹수 혹은 적으로부터 방어(way) 등을 고려한다. 여기서 기운(氣運, will)이란 오늘날 우리말로는 미래(future), 의지(will), 자손번성(well-being), 잠재력(growth) 등인데 이들 모두를 “별이 점지한다.”고 믿고 있다.

유대민족을 상징했던 다윗별(Star of David)은 유대인 주체성을 악(惡)으로부터 지켜주는 방패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때 나치독일에서는 이를 악용하여 주시도가 가장 높은 노란색별을 가슴에 달도록 해서 유대인 격리 및 감금 수단으로 사용했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다윗별(David’s Star)을 국기에 사용하고 있다.

지구촌의 대부분 민족지도자들처럼, 우리 민족을 이끌고 보금자리를 찾아 이곳까지 올 때 많은 지혜를 동물로부터 배웠다. 지구촌에 수백만 년 전부터 살아온 동물로부터 지혜를 벤치마킹(따라 배우기)했다. 인간이 터전을 찾는데 가장 많이 배운 동물은 새다(良禽相木而棲). 즉 i) 둥지나무 고르고(擇皐), ii) 보금자리 만들기(作巢), iii) 그리고 안전한 삶 지킴(守生)에 새들의 행동에 착안했다.

까치가 둥지나무를 고르는데, i) 평소 맹금류 독수리 등이 드나드는 방향 및 장소 등을 유심히 봤다가, ii) 폭풍우 몰아치는 날에도 꿋꿋한 나무를 눈여겨 봐놓았다가 다음에 폭풍우가 치면 점찍어 놓았던 그 나무 가운데 가장 튼실한 가지에다가 둥지를 짓기 시작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맹금류로부터 안전하고, 후손들의 복락을 지킬 보금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주변에 먹거리가 많은 곳을 잊지 않고 고려한다.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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