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학의 세상읽기] 태종 이방원의 부인과 자녀들
[류동학의 세상읽기] 태종 이방원의 부인과 자녀들
  • 승인 2022.03.2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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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학 혜명학술원 원장

자평명리에서 십성(十星,육신)은 생일의 일간과 같은 오행인 비견(比肩)과 겁재(劫財), 일간이 생하는 내향적인 식신(食神)과 외향적인 상관(傷官), 생명을 길러주는 근원인 고정재물인 정재(正財)와 나를 길러주는 일시적 재물인 편재(偏財), 사회의 환경적응력을 키우는 협력을 수단으로 하는 이성적인 정관(正官)과 경쟁을 수단으로 하는 감각적인 편관(偏官), 내가 태어나도록 도와주는 자연계의 혜택인 외향적인 정인(正印)과 내향적인 편인(偏印,효신)등이 있다.

자평명리(子平明理)의 십성론(十星論)에서 가장 중요하게 정하는 원칙은 정재(正財)와 정관(正官)이다. 명리에서 정재는 아내이자 고정재물이며, 정관은 남자 사주에서 씨를 전하는 자식이자 녹봉이다. 태종 이방원은 10명의 부인에게서 12남17녀의 두어서 다복한 인생을 살았다. 그 외에도 그는 여러 후궁을 두어서 세속인들의 인생에서 원하는 부귀영화를 누린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방원은 인간의 길흉화복의 중요한 원칙인 재성과 관살(官殺, 정관과 편관의 합칭어)을 모두 소유한 인물이 된다.

먼저 이방원은 성종과 더불어 배우자를 가장 많이 둔 조선왕에 해당한다. 그는'조선의 힐러리 클린턴'같은 원경왕후 민씨(1365 ~ 1420)를 정비로 두었다. 원경왕후는 고려 멸망 27년 전인 1365년에 명문가인 여흥 민씨 가문에서 민제의 딸로 출생했다. 숙종의 부인인 인현왕후와 고종의 부인인 명성왕후도 원경왕후와 같은 집안이었다. 장래에 원경왕후의 남편이 될 이방원은 2년 후인 1367년에 출생했다. 원경왕후는 제1차 왕자의 난과 제 2차 왕자의 난을 결정적으로 도왔다. 원경왕후는 딸 둘을 낳은 뒤인 스물네 살(1388년) 때부터 세 번 연속으로 아들을 낳았지만 모두 일찍 잃고 말았다. 그런 뒤에 태어난 장남이 서른두 살 때인 1394년(조선 건국 2년 뒤)에 낳은 양녕대군이었다.

이방원과 원경왕후 소생에 정순공주(1385~1460), 경정공주(1387~1455), 경안공주(1393 ~1415), 양녕대군 이제(1394~1462), 효령대군(1396~1486), 충녕대군 이도(세종대왕,1397 ~1450), 정선공주(1404~1424), 성녕대군 이종(1405~1418)의 4녀4남을 두었다.

양녕대군은 본부인 수성부부인 김씨에게서 3남 5녀, 첩실에게서 7남 12녀 등 총 10남 17녀를 두었다. 후손 중에는 임진왜란 발발 당시, 전라좌수사 충무공 이순신 수하로 이순신이 생전 가장 아끼고 믿던 장수로 알려진 무의공 이순신이 있었다. 초대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 양녕대군의 16대손이다.

효령대군은 성종조까지 아홉 조정을 내리 섬기면서 왕실의 어른으로서 대접을 받았다. 그는 1396년(태조 5)에 태어나 91세의 천수를 누리고 1486년(성종 17) 5월 11일에 별세하여 서초구 방배동에 예장되었다. 7남3녀을 두었으며 여섯째 아들 원천군을 아우 성녕대군에게 출계시켰으며 손자 33명, 손녀 24명, 증손자 109명으로 후손이 크게 번성하였다. 효령대군파는 현재 전주 이씨 내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자유당의 이기붕과 인천시장에 도전하는 이학재 전의원이 20세손이다.

정선공주의 친손자가 유명한 남이장군이다. 명리에서 정비는 정재라 부른다. 정비외의 여자는 편재라 부른다. 이방원은 외척발호를 막기 위하여 처남들인 원경왕후의 남동생들인 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회 4형제를 제거하여 원경왕후와는 견원지간(犬猿之間)으로 생을 마감했다. 살아서는 글자 그대로 애증의 부부관계였지만 죽어서는 함께 헌릉에 묻혔다.

효빈 김씨(? ~ 1454) 소생에 경녕군 이비(1395 ~ 1458,임오년 계축월 임술일 갑진시생)를 두었고 경녕군은 10남2녀를 두었다. 경녕군은 학문에도 뛰어나 효령대군과 충녕대군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는 태종, 세종, 문종, 단종, 세조의 5조에 걸쳐 왕실과 국정에 충성심을 다해 도움을 주었다. 신빈 신씨(? ~ 1435년) 소생에 2남(함녕군,온녕군)7녀를 두었다. 선빈 안씨 소생에 2남(혜령군,익령군)2녀(경신옹주,숙안옹주)를 두었다. 의빈 권씨 소생에 정혜옹주를 두었다. 소빈노씨 소생에 숙혜옹주를 두었다. 후궁 김씨 소생에 숙안옹주를 두었다. 정빈 고씨 소생에 근녕군 이농을 두었다. 숙의 최씨 소생에 희령군 이타를 두었다. 덕숙옹주 소생에 후령군 이간을 두었다.

이방원은 이외에도 숙공궁주 김씨. 의정 궁주 조씨, 혜순 궁주 이씨, 신순 궁주 이씨, 혜선 옹주 홍씨, 순혜 옹주 장씨, 서경 옹주,명진 김씨 김씨등의 후궁을 두어 수많은 여성과의 염문을 만들었다. 남자 사주에서 여성은 정재와 편재라 부르며 그의 사주에서 ④미토(未土) 편인의 지장간 정을기 가운데 을목과 ③묘목(卯木)편재, 진토의 지장간 을목이 편재에 해당하게 된다.

이방원의 사주는 자식에 해당하는 정관과 편관이 매우 강하다. ②오화(午火)편관,⑤정화(丁火) 편관,⑥병화(丙火)정관등이 매우 강하고 그의 격국 자체가 관살혼잡격으로 자식이 매우 강하다. 생명을 낳아주는 것은 정인과 편인의 인성(印星)이며 인성보다 생명을 길러주는 재성이 더 중요하고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을 낳아 이어지는 생생지도인 정관과 편관은 더욱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관살과 재성이 강한 이방원의 팔자와 삶은 부귀영화를 나타내는 재성과 관살을 모두 소유한 인물로 좋은 팔자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조선왕실의 부흥을 위하여 크게 노력한 덕으로 역사상 최고의 성군인 세종이 탄생하였다. 이제 조만간 윤석열정부가 출범한다. 윤석열정부는 5년 두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윤정부의 성공이 곧 대한민국의 번영으로 그의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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