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유문화와 달구벌] 과학적 연대측정…한반도 문화 대륙북상이론 전개
[신가유문화와 달구벌] 과학적 연대측정…한반도 문화 대륙북상이론 전개
  • 김종현
  • 승인 2022.03.2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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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동명성왕 “하늘의 아들이다”
새들의 지혜, 나라 다스리는데 사용
새 깃털을 관모로 사용 ‘조우관’ 제작
탄생, 새가 혼령을 물어 지상에 전달
죽음, 인간의 혼령을 거둬들이는 것
도구 재질 따라 석기·청동기 등 나눠
자연석 연마 상태로 중기-후기석기
한민족 ‘한’…크다-하나-같다는 의미
태양의 후예가 태양마차를 끄는 형상
한민족의의미
‘태양마차를 타고 우주를 달린다(騎日車後, 縱橫宇宙).’는 기상이 한민족의 의미다. 그림 이대영

새들의 지혜를 가장 먼저 나라를 다스리는데 사용한 사례는 BC 3천년 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이다. 천자문에 ‘관직이름을 새 이름에서 따왔음(以鳥官名)’이란 사자성구가 있다. 동이족 소호 김천씨는 새 이름을 관직명으로 사용해 ‘새를 스승으로 모신다(鳥師)’라는 기록이 있다. 자치통감 및 춘추좌씨전에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새(닭)들처럼 지혜로운 사람이 되자는 의미에서 새 깃털(鳥羽)을 관모(冠模)로 사용해 조우관(鳥羽冠)을 만들어 썼다. 한 발 더 나간 사례로는 부패로 망하는 고려를 보고 이를 경계하고자 여말부터 조선 전기에 걸쳐 관리의 청렴을 생활화했다. 매미날개처럼 투명하고, 깨끗하게 처신하자(蟬翼淸廉)는 의미로 매미날개를 두 귀로 하는 익선관(翼蟬冠)을 만들어 착용했다. 익선관은 청나라, 베트남에까지 보급됐다.

심지어 선인들은 태양의 흑점을 ‘검정 까마귀’로 봤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단에 놓은 세발향로처럼 태양 속 검정까마귀를 삼족오로 표현했다. 따라서 탄생은 하늘의 새가 혼령을 물어다가 지상에 전달함이고, 죽음(別世)은 인간의 혼령을 하늘로 다시 거둬들이는 것이다(生則靈傳, 死則還其). 그래서 우리들은 새가 앉는 솟대(오뚝하게 솟은 곳)까지 신성시했다. 솟대(일본, 도리)는 행운을 불러 들이는 곳이었다(蘇塗招運處). 그래서 “한반도 옛 지역(震域古邦)에선 하늘(日)에 천제를 지냈으며, 해를 시조(始祖)로 삼았다.”

뿐만 아니라 동명성왕은 “자신이 하늘의 아들이다(我是天帝子)”라고 했으며, 백성들은 그렇게 믿었다. 광개토왕 비문에도 “천제가 모든 인간을 탄생시킬 때, 자신의 모습을 본떠 한 사람씩 균등하게 천부인권을 주었다(天神造萬人, 一像均賦三眞於). 이로서 사람들은 하늘을 대신하여 능히 세상을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비문에 새겨놓았다.

인간이 새 등 자연으로부터 지혜를 익힌 것이 예술분야에 가장 많다. 로마 시인이며 철학자였던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BC 99~BC 55)는 6권이나 되는 대서사시집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에서 “예술형식은 모두가 자연에서 유래했고, 자연이 예술의 모델을 제공했다. 왜냐 하면, 인간은 새들의 노래(소리)를 모방해 노래(시)를 창작했으며, 갈대를 울리는 바람을 보고서 피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달구벌에 살았던 선인들을 찾아서

오늘날 고분이나 고고학적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유물들은 : i) 수렵채취(생산경제)에 사용했던 도구, ii) 일생생활에 사용했던 식사 및 제사용 도구, iii) 그리고 부장품 속에서는 장신구가 발굴되었다. 로마 시인이며 철학자였던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BC 99~BC 55)는 사용하는 도구재질에 따라 석기, 청동기 그리고 철기로 구분했다. 오늘날에는 석기시대를 다시 세분해 전기 석기시대(Paleolithic, Old Stone Age), 중기 석기시대(Mesolithic, Middle Stone Age)와 후기(신) 석기시대(Neolithic, New Stone Age)로 세분하고 있다. 육안으로 봐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면 전기 석기시대로, 깨뜨려서 날카로운 날을 사용했다면 중기석기시대, 나아가서 날카롭게 연마해서 사용한 흔적이 있으면 후기석기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과거 일본식민지시대에도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적)이 출토되었지만 “조선역사는 청동기 이후만 있을 뿐이다.”라는 황국신민사관이 정해준 아웃라인 안에서 모든 게 결정되었다. 이로 인해, 고조선 이전엔 한반도에 인류가 살지 않았다는 암묵지를 가지게 됐다.

그러나 1990년 이후 탄소연대측정, 방사선연대측정 등 과학적 연대측정 결과 신석기, 구석기시대는 물론이고 한반도문화의 대륙북상이론까지 전개되고 있다.

◇조선(朝鮮)과 한민족(韓民族)의 진정한 어원을 찾아서

먼저 한민족에서 ‘한’이란 우리의 순수한 고유어로 i) 크다(大), ii) 하나(一), iii) 같다(同)는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다. 韓民族은 우리말 ‘한민족’을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 한글(韓契)이란 말은 고조선시대부터 우리의 고유문자인 가림토자(加臨吐)를 한자로 음역했던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고자 허신(許愼, AD 58~148)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빌려서 한(韓)자를 풀이하면, ‘우물을 둘러싸고 있는 담이며, 주변을 두르는 것의 음(한)이고 또한 국가명칭이다(井垣也. 幹聲又國名).”라고 해설하고 있다. 여기서 한나라 한(韓)을 파자하면 높을 탁자(卓)와 가죽 위(韋)로 2개로 분리된다. 높다는 곳을 형상화한 탁(卓)자는 해와 달 같이 높다(卓如日月) 혹은 ‘높은 곳에 있다는 건 반드시 흔들어 떨어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동물의 가죽을 벗긴 것을 피(皮)라고 하고, 털을 제거한 가죽은 혁(革)이며, 무두질한 가죽을 위(韋)라고 했다. 여기서 높을 탁(卓)자는, 새벽 조(早), 아침 단(旦), 수레 거(車)자, 가뭄 한(旱)자와도 흡사하다. 모두가 하나같이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는 태양(車像日行)을 기반으로 했다. 따라서 아침 조(朝)는 태양수레바퀴를 뒤에서 달이 독촉하고 걷어차는 형상(日車先行, 後月追走)이었다. 여기서 韓이란 글자는 태양마차를 타고 말에게 채찍질하는 모습이다(騎太陽車, 以鞭可馬). 따라서 한이란 ‘태양의 후예가 채찍을 들고 태양마차를 몰고 가는 형상(太陽後裔, 以鞭御車)’이며, 부여된 철학은 ‘태양마차를 타고 우주를 달린다(騎日車後, 縱橫宇宙).’는 기상이다.

작다고 얕잡아봤다가 매운 맛을 당하는 경우를 겨자씨(mustard seed)에 비유한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나니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라는 성경 구절처럼 선사시대의 국가도 그렇게 태어나 성장했다. “만일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을 향하여 ‘옮겨지라’고 하여도 옮겨질 것이다. 그런 믿음만 있다면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겨자 마인드’였다. 동양에서 겨자(芥子)란 갓나물씨앗이다. 갓나물은 고대극동아시아에서는 한민족(동이족)만이 먹었던 음식이었다. 달구벌 대구에서 갓나물은 지금도 강섶엔 지천이다.

송나라 야부(冶父) 스님이 쓴 ‘금강경야부송(金剛經冶父頌)’엔 “겨자 속에 수미산이 들어있다니(須彌納芥子偈)”라는 구절이 있다. “터럭 한 가락으로 큰 바닷물을 다 들이키고도, 겨자씨앗 속에다가 수미산을 집어넣는다니. 하늘 가득이 한 개의 수레바퀴가 다 덮었구먼...”라는 의미로 한민족의 야심을 노래했다.

BC 194년 고조선 왕위쟁탈전에서 패색이 짙어진 준왕(準王)이 한국(韓國) 혹은 진국(辰國)을 건설해 삼한이 태동했다. 결국 극동최초 대제국 고조선은 150여개 소국으로 산산조각이 나 마한, 진한, 변한이란 삼한이 건국되었다. 마한 54 소제후국, 진한 13 소국, 변한 12 소국을 통칭해서 삼한이라고 했다. 삼한갑족이란 삼한시대에 지도자급이 속했던 부족들을 칭했으며, 신라 선덕여왕이 외쳤던 ‘일통삼한(一通三韓)’은 바로 삼한고토를 모두 다 신라에 복속시키겠다는 야심찬 청사진이었다. 마한은 백제국으로 병합, 변한은 가야국(伽倻國)으로 진한은 신라로 발전했다. 겨자마인드를 가졌던 신라는 삼한일통의 꿈을 결국 성취했다.

사실 신라는 진한지역에서도, 울진 우중국(優中國), 영덕 우시산국(于尸山國), 포항 근기국(勤耆國), 안강 읍즙벌국(音汁伐國), 삼척 실직곡국(悉直谷國) 틈새에 낀 경주 사로국으로 한 낱 겨자씨처럼 초라했다. 그러나 신라는 BC 220년 최초로 중원통일을 완수했던 진나라 이사(李斯)의 간축객서(諫逐客書)에서 “한줌의 흙이 쌓여서 태산이 되었으며, 황해 바다물도 가는 개울물들이 모여서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착안해 ‘적소성대(積小成大)’전략을 세웠다. 작은 누에가 큰 뽕잎을 먹듯이(少蠶食桑) 경상도 일대, 나아가 충청도와 강원도를 신라영역으로 확장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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